“인공지능(AI)이 일자리를 줄일 것이란 우려가 크지만, 제조 현장의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사람을 못 구해서 업무가 버거운 곳이 훨씬 많습니다.”배재인 다쏘시스템코리아 고객 경험 부문(CRE) 본부장(사진)은 이달 초 미국 휴스턴에서 열린 ‘3D익스피리언스월드 2026’ 행사에서 “AI는 사람을 대체하는 기술이 아니라 부족한 인력을 보완하는 ‘컴패니언(동반자)’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쏘시스템은 컴퓨터지원설계(CAD)와 시뮬레이션, 제조 솔루션을 하나의 플랫폼으로 묶어 버추얼 트윈 기반의 제품 개발·생산 체계를 구축해온 엔지니어링 소프트웨어 기업이다.
다쏘시스템은 이번 행사에서 설계·검증 단계를 지원하는 AI 컴패니언 ‘레오’와 과학적 분석을 담당하는 ‘마리’를 공개했다. 배 본부장은 “지난해 아이디어를 빠르게 시험해 볼 수 있는 AI 도구인 ‘아우라’를 발표하며 시장 반응을 확인했다”며 “이를 통해 제조 현장에서 AI가 실제로 쓰이려면 단순한 보조 기능을 넘어 설계와 검증 과정에 직접 관여해야 한다는 점이 분명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AI의 역할 변화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산업으로 반도체·전기전자 분야를 꼽았다. 개발 주기가 짧고 업그레이드가 잦아 설계와 생산 사이의 간극이 곧 비용으로 이어지는 산업군이어서다. 배 본부장은 “설계가 생산 요구사항을 제때 따라가지 못하면서 반복 설계와 생산 단계 수정이 누적되는 사례가 많다”며 “설계 초기 단계에서 시뮬레이션과 검증을 충분히 수행해 생산 이후에 발생할 수 있는 오류와 재작업을 미리 줄이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설계·검증 중심’ 접근이 성립하기 위한 핵심 전제로 그는 데이터를 꼽았다. 배 본부장은 “디지털 전환(DX)과 AI 전환(AX)의 출발점은 설계 단계에서 만들어지는 3차원(3D) 설계 데이터”라며 “다쏘시스템은 이 데이터가 축적·활용되는 핵심 플랫폼을 맡고 있다”고 말했다. AI 역시 설계 맥락과 물리적 제약이 반영된 고품질 데이터가 있어야 현장에 적용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배 본부장은 한국 시장에 대해 “반도체·배터리·자동차·조선 등 핵심 제조 산업이 한 나라 안에 집약돼 있는 데다 한 번 방향이 정해지면 실행 속도까지 빠른 곳”이라며 “신기술과 신 솔루션의 적용 가능성을 빠르게 검증할 수 있는 시장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한국의 중견·중소 제조기업은 DX와 AI 활용이 아직 초기 단계인 곳이 많다”며 “대규모 시스템을 한 번에 도입하기보다 클라우드 기반으로 작은 AI 경험부터 쌓는 것이 현실적인 접근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휴스턴=안정훈 기자 ajh632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