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행 공간의 존치인가, 열린 회복 도시로의 전환인가과천 경마장 이전 논쟁은 단순한 지역 개발 문제가 아니다. 이 문제는 “공간을 누구를 위해 쓸 것인가”, “공기업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도시는 무엇을 회복시켜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전 반대의 목소리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정책적 관점에서 보면 논거는 충분히 검증되어야 한다.
이전 반대 논거, 무엇이 빠져 있는가
가장 많이 제기되는 주장은 “시민 레저 공간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경마 부지가 과연 과천 시민의 레저 공간으로 효율적으로 활용되고 있는지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주말 관람객 다수는 외지인이다. 평일에는 광대한 부지가 사실상 닫힌 공간으로 남는다. 면적 대비 시민 이용 밀도는 높다고 보기 어렵다.
‘경마공원’이라는 명칭과 달리 운영 구조는 배팅 중심이다. 가족형 자연 레저 공간이라기보다 사행 활동 중심 공간에 가깝다. 그렇다면 질문은 바뀌어야 한다.
지금의 구조가 과천 시민의 삶을 가장 잘 돕는 방식인가? 도시 과밀화 우려 역시 이전 그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설계의 문제다. 저밀도 녹지 기반 주거, 세대융합형 주거, 직주근접형 업무지구, 반나절 회복 공간이 결합된 모델이라면 과밀이 아니라 균형 발전이 될 수 있다.
결국 핵심은 존치냐 이전이냐가 아니라, 어떻게 설계하느냐다.
과천 부지의 새로운 쓰임
도시민의 회복 공간은 이용 시간과 이동 거리로 구분할 수 있다. 도심형은 15분 이내, 짧은 휴식, 교외형은 30분 이내, 반나절 체류, 지방형은 1시간 이상, 하루 체류다. 과천 경마장은 입지 가격과 도시 밀도를 고려하면 체류형 레저 단지로 쓰기에는 비효율적이다. 그러나 현재 시설 구조는 체류형도 아니고, 반나절형 회복 공간으로도 충분히 기능하지 못한다.
해법은 명확하다. 반나절형 교외 회복 공간 중심 재설계, 일부 부지는 세대융합형 주거와 직주근접 업무지구로 전환, 녹지와 주거가 결합된 저밀도 구조 설계다 이 방식은 서울 주거 부담 완화와 과천·인접 지역 주민의 삶의 질 향상을 동시에 가능하게 한다. 과거의 트랙은 도시 숲과 수변 산책로, 가족 체험 공간으로 전환될 수 있다. 닫힌 배팅 공간은 열린 시민 회복 공간으로 바뀔 수 있다.
경마에게도 이전이 필요한 이유
경마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입지는 달라진다. 도박 중심 구조라면 도심 접근성이 중요하다. 그러나 레저 중심 경마라면 체류형 자연 공간과 결합되어야 한다. 경주 시간은 길지 않다.
진정한 레저가 되려면 숲길, 수변 공간, 캠핑, 가족 체험 시설 등이 함께 구성되어야 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과천 입지는 오히려 레저 경마 발전에 제약이 될 수 있다. 지방형 복합 회복 단지 안으로 이전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합리적일 수 있다. 한국마사회 역시 사행 산업 중심 공기업에서 국민 레저 회복 기관으로 전환해야 할 시점이다.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행성 강화에 의존하는 재정 구조는 한계가 분명하다.
열린 도시라는 선택
과천 경마 부지는 ‘닫힌 기능 공간’이 아니라 ‘열린 도시’로 재구성할 수 있다. 리처드 세넷이 말한 것처럼, 도시는 경계가 단단한 구조가 아니라 다양성이 공존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청년·고령자 혼합형 주거, 공유 공간 중심 커뮤니티 설계, 직주근접형 마이크로 업무지구, 보행 중심 녹지 네트워크 등의 구조는 장시간 출퇴근 피로를 줄이고, 세대 갈등을 완화하며, 도시의 회복 기능을 강화한다.
경마장 이전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공간 효율과 도시의 장기 전략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선택일 수 있다. 지금 과천이 마주한 질문은 단순하다. 시설을 남길 것인가 옮길 것인가가 아니다.
우리는 어떤 도시를 만들 것인가. 사행 구조를 유지하는 공간으로 남을 것인가, 시민의 회복과 세대 공존을 설계하는 열린 도시로 전환할 것인가.
과천은 이미 충분히 성숙한 도시다. 이제 필요한 것은 과거의 익숙함을 지키는 용기가 아니라, 미래를 설계하는 결단이다. 공간은 중립적이지 않다. 그 공간이 무엇을 허용하느냐가 도시의 품격을 결정한다. 지금은 과천이 두려움이 아니라 설계 능력으로 답해야 할 시간이다.
글 - 양재원 레저진흥원 설립추진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