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14일 서명한 핵심광물·파생제품 수입 조정 문서에 요약된 미국의 현실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문서에서 중국에 대한 의존을 단기간에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고 인정하며 “외국 무역 파트너와의 협정”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상무장관과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에게 “(무역 파트너와의) 협상 과정에서 핵심광물 무역 가격하한제와 기타 무역 제한 조치를 고려하라”고 지시했다.

美 “협력이 필수” 판단
미국이 핵심광물 분야에서 공급망 독립을 위한 전략을 구체화하고 있다. 목표는 두 가지다. 중국에 휘둘리지 않는 공급망을 구축하고, 이 과정에서 미국의 제조업 경쟁력을 회복하는 것이다. 지난해 각종 관세정책으로 동맹을 압박해온 미국은 이제 광물 분야에서 ‘대중 공동전선’에 참여하라는 요구를 추가했다. 나아가 중국 등과 일정 부분 거리를 둘 수 있는 ‘미국 중심 경제 블록’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트럼프 정부가 작년 말부터 내놓고 있는 각종 프로젝트는 이 같은 목표와 관련돼 있다. 이달 초 55개국과 함께 출범시킨 ‘포지(FORGE) 이니셔티브’가 대표적이다. 유럽연합(EU)과 한국, 일본 등 주요 동맹국은 물론 DR콩고, 잠비아, 우즈베키스탄 등 주요 광물 생산국이 참여하는 게 특징이다.
미국은 앞서 핵심광물 60종을 60일 치 비축하는 ‘프로젝트 볼트(Vault)’도 시작했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동맹국이 다각화된 공급망을 개발하는 동안 잠재적인 공급 차질에 대비할 수 있게 하는 완충장치”라고 평가했다. 미 국무부가 작년 12월 발표한 인공지능(AI) 및 반도체 분야 공급망 협력 체제인 ‘팍스 실리카(Pax Silica)’도 같은 맥락이다.
中, 덤핑 전략으로 광물 시장 장악
중국은 장기간에 걸쳐 광물 분야 시장 경쟁을 무력화했다. 통제하기 어려운 채굴 단계보다 ‘미드스트림’(중간 단계)인 정제·가공 부문 장악에 주력해왔다. 반도체·태양광 패널에 사용되는 저순도 갈륨은 99%, 마그네슘은 95%, 텅스텐은 83%, 흑연은 79%가 중국에서 생산·가공된다. 미 지질조사국은 지난해 보고서에서 “중국은 데이터로 확인 가능한 44개 핵심광물 중 30개 품목에서 세계 1위 생산국”이라고 분석했다.이는 중국이 단지 저가 생산을 잘해서가 아니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은 지난달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이 주최한 세미나에서 “중국이 시장 가격에 기반하지 않은 결정을 내리고 수십 년에 걸쳐 그 계획을 일관되게 실행한 결과, 한국 일본 유럽 미국 등 대부분 국가의 구리 제련시설이 사라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재 구리 제련 이익은 1.5% 정도인데 이는 (민간 기업이) 새로운 제련시설 건설을 결정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이 시장 논리와 무관하게 ‘가격 후려치기’ 등으로 핵심광물 시장을 장악했다는 것이다. 개별 기업이나 국가 차원의 대응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예컨대 미국의 갈륨 수요량은 전 세계 생산량의 2.5%(2024년)에 불과하다. 미국이 다른 나라와 협력해야만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고 판단하는 배경이다.
‘시장 분리’로 대응하는 美
미국은 중국의 덤핑 전략에 대응하기 위해 핵심광물과 관련해 ‘시장 분리’를 시도하고 있다. 작년 말 국무부는 ‘기관전략계획’(ASP)에서 동맹과 함께 미국 중심 경제 블록을 구축하겠다고 선언했다. 포지 이니셔티브, 프로젝트 볼트, 팍스 실리카 모두 그런 구상의 일환이다. 중국을 뺀 동맹국 중심의 별도 시장을 만들어 해결하겠다는 게 미국의 전략이다. 비싸더라도 서로 물건을 사주기로 약속하는 체제다. 지난 4일 핵심광물 장관급 회의에서 JD 밴스 부통령은 “강제 가격 하한을 통해 외부 교란에서 보호되는 주요 광물 무역지대”를 구축하겠다고 했다. 그는 “관세를 통해 최저 가격을 유지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 아이디어에 동조한 것은 현재까지 일본, 멕시코, EU다. 가공 단계 독점 깨긴 어려워
미국은 핵심 동맹인 한국의 참여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아직 무역 블록 참여는 결정하지 않았다”며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변화에 따른 비용이다. 중국산 저가 광물은 국내 기업의 공급사슬에도 깊이 엮여 있다. 중국 저가 광물을 쓰지 않으면 자동차, 배터리, 반도체 등 각 분야에서 국내 제조업체 생산비가 급등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생산보다는 소비 위주인 미국, 유럽, 호주 등과는 사정이 다르다.또 가격하한제를 도입하더라도 미드스트림과 다운스트림(제품 생산) 부문에서 중국의 독점적 지위를 깨기는 상당히 어렵다. 광산을 확보하더라도 정제나 가공 단계에선 역시 중국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 이어질 수 있다. 중국이 아예 거래하지 말자고 하면 방법이 없다.
실행도 까다롭다. 컬른 헨드릭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선임연구원은 수백 종의 원자재, 가공품, 파생제품에 가격 목표를 설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꼬집었다. 이런 체제가 오랫동안 유지될 것이라는 믿음도 필요하다. PIIE는 “트럼프 정부에 대한 신뢰 부족이 근본적인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