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터통신은 19일(현지시간) 익명을 요구한 유럽 정보기관 수장 5명의 발언을 인용해 이들이 올해 미국 중재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평화 협정이 체결될 가능성을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들 중 4명은 러시아가 미국과의 평화 협상을 제재 완화와 관련 사업 확대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 유럽 정보기관 수장은 “러시아는 평화 협정을 추구하는 게 아니다”며 “자신들의 전략적 목표를 추구하고 있고, 목표는 바뀌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른 유럽 정보기관 수장도 “최근 제네바 회담은 연극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미국 중재로 지난 17~18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세 번째 종전 협상을 했다. 하지만 돈바스 지역 등 영토 문제로 견해차를 좁히지 못했다. 러시아는 돈바스 전역을 차지하겠다고 주장한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군이 장악하지 못한 돈바스 지역을 포기할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한 정보기관 수장은 “러시아는 조속한 평화를 원하지도, 평화가 필요하지도 않다”며 “러시아 경제는 붕괴 직전 상황이 아니다”고 말했다. 또 “우크라이나가 돈바스 지역을 양보하면 곧바로 평화 합의로 이어질 것이라는 믿음은 잘못된 것”이라며 “러시아가 이런 양보를 얻으면 추가적인 요구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애나 켈리 백악관 대변인은 로이터통신의 논평 요청에 “익명의 비판론자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그의 팀은 살상을 멈추고 평화 협정을 끌어내기 위해 누구보다 많은 일을 해왔다”고 반박했다.
유럽 정보기관 수장 2명은 러시아 정부가 협상을 두 가지 트랙으로 분리하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한쪽에서 전쟁을 지속하고, 다른 쪽에선 대러 제재 완화 등 미국과의 양자 거래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달 7일 자국 정보기관으로부터 미국과 러시아 협상가들이 키릴 드미트리예프 러시아 특사가 제안한 최대 12조달러 규모의 양자 협력 방안을 논의해 왔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밝혔다.
미국이 협상 전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자 우크라이나에 불리한 이른바 ‘더티 딜(dirty deal)’ 우려도 나온다. 미국은 이달 초 두 번째 3자 협상이 끝난 뒤 협상 마감 시점을 6월로 못 박으며 종전 논의를 사실상 미국이 설정한 일정에 맞추도록 했다. 미국은 11월 중간선거를 치른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14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안보 회의에서 “미국은 종종 양보라는 주제를 꺼내 드는데 러시아가 아니라 오로지 우크라이나의 양보라는 맥락에서만 이뤄진다”고 우려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