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방산의 경쟁국인 독일이 한국 방위력 개선사업의 4배가 넘는 돈을 무기 조달에 배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K-2전차와 K-9 자주포, 천무 등 K방산 수출 효자 품목의 경쟁제품인 레오파르트2, PzH2000 자주포 등이 수백대씩 수주 잔고가 쌓여 있다. 내년 대량양산체제가 갖춰지면 K방산의 강점인 납기와 가격경쟁력에서도 독일의 거센 압박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17일 독일 연방정부의 '2026년 국방 예산안(Einzelplan 14)'에 따르면 독일은 총 1080억 유로(약 156조원)를 국방 예산으로 배정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역대 최대 규모다. 그러면서 지난해 헌법에 명시된 부채 제한 규정(GDP의 0.35% 이내로 재정적자 제한)에서 국방비를 제외한 덕에 국방비에 한해 대규모 차입이 가능해졌다. 빚을 내서라도 2029년까지 5000억 유로 이상의 국방 펀드를 조성해 군대를 재건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일반 국방 예산에서 무기 조달에만 약 381억3300만 유로(약 55조2000억원)를 편성했다. 전년 대비 72% 이상 늘어난 규모다. 레오파르트2A8과 탄약, 212CD급 잠수함 등 대형 프로젝트의 양산이 올해부터 내년 사이에 몰려 있어서다.
여기에 독일이 헌법을 개정해가며 군사력 증강을 위해 조성한 특별자산 계정에서 약 255억1000만 유로(약 37조원)가 추가 투입된다. 무기 구매와 개발에 투입되는 실질적인 방위력 개선비 총액은 약 640억 유로(약92조 원)에 달한다. 이는 한국의 2026년 방위력 개선비(약 20조 원)보다 4.6배나 많은 규모다.
독일은 유럽 동맹국에도 군비 증강을 요구하고 있다. 13~15일 열렸던 뮌헨안보회의 개막 연설에서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미국에 의존하던 시대는 끝났다"며 프랑스의 국방비 증액을 요구했다. 업계 관계자는 "(독일의 국방비 증액은) 단순한 노후 무기 교체가 아니라 유럽 내 가장 강력한 재래식 군대를 보유하는 동시에 방위산업의 주도권을 되찾으려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독일 뮌헨 북서부 알라흐 지구에 위치한 KNDS의 레오파르트2 생산 라인. 지난해 11월19일 이곳에선 독일이 30여년 만에 내놓은 신형 전차 레오파르트2A8의 초도 물량 롤아웃 행사가 열렸다. 월 1~2대, 연간 20~30대를 겨우 생산하며 ‘수공업 매장’이라 조롱받던 곳이다. 독일은 약 10억 유로를 투입해 이 곳을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공장으로 개선하고 있다. 생산량을 10배 이상인 월 20대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게 독일의 목표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180도 달라진 독일의 국방기조는 그 결실이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돌아올 전망이다. 내년 독일 방위산업의 쌍두마차인 KNDS와 라인메탈은 신규 생산 없이 개량 사업으로만 돌아가던 뮌헨 알라흐와 북부 운터뤼스 공장에 기존 생산 능력 대비 4배에서 10배에 달하는 대량양산 체제를 갖출 예정이다.
K방산은 1년이 안 되는 빠른 납기와 가격경쟁력을 앞세워 EU 회원국에 K-2 전차·K-9 자주포·천무를 수출하며 프랑스와 대등한 방산 수주 성과를 내고 있다. 하지만 독일의 대대적인 예산 투입으로 레오파르트2·PzH2000 등 경쟁 품목이 대량생산에 들어가면서 현대로템·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수주 승전보가 지금 같진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시대전환’ 외친 독일, '방산'에 韓의 5배 예산 투입
숄츠 총리가 2022년 천명한 '시대 전환'은 "압도적인 군사력을 통해 전쟁억제를 하겠다"는 선언이었다. 독일은 이같은 명분으로 1000억 유로(약 145조원) 규모의 특별자산을 조성했다. 올해 독일 국방부의 무기 조달 부문 지출액은 전년 대비 72% 폭증한 약 381억3300만 유로(약 55조2000억원)가 편성됐다. 주목할 점은 특별자산의 본격적인 집행이다. 내년 한 해 특별자산에서만 약 255억1000만 유로(약 37조 원)가 투입된다. 일반 조달 예산과 합친 독일의 실질적인 무기 확보 및 연구개발 비용이 약 92조 원에 육박한다는 얘기다.

이같은 군비 증강은 K방산의 주력 품목을 정확히 겨냥하고 있다. 독일은 K-2 전차의 라이벌인 레오파르트2 유지 보수에만 12억1300만 유로(약 1조7600억원)로 전년 대비 43% 늘어난 예산을 배정했다. 구매에 5억4068만 유로(약 7850억원)를 투입한다. K-2 전차 양산 및 개량에 총 3549억원을 배정한 한국보다 7배 많은 규모다. 지출 권한 규모는 약 597억 유로에 달해 대규모 양산 계약을 위한 법적 근거는 역대 최대 규모로 늘려놓은 상태다.
한화 레드백의 라이벌인 푸마(PUMA) 장갑차 획득에도 전년 대비 67% 증액된 약 2조1600억 원(14억9201만 유로)을 쏟아붓는다. 이는 한국의 내년 K21 양산·장갑차 사업 합계금액(약 1180억원)의 20배에 가까운 수치다.
한국의 KF-21과 경쟁할 차세대 전투기(FCAS) 연구개발비 역시 전년 대비 98%나 늘어난 약 12억1441만 유로(1조7600억 원)로 편성됐다. 유로파이터 구매·개량 사업에도 12억2672만 유로(약 1조8000억원)를 투입키로 했다. 한국의 KF-21 양산 및 R&D 예산(2조2579억 원)을 추격 중이다.

해군 전력에서도 212CD급 잠수함 확보를 위해 약 1조8600억 원 규모의 지출 권한을 신규 설정하며 한국의 장보고-III 예산(3736억 원)을 압도했다. 독일이 내년부터 생산 라인을 풀가동하며 대량 양산 체제를 완성하면, K방산이 가졌던 납기 및 가격 우위마저 잠식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올 수 밖에 없는 이유다.
2030년대 주력전차 시장에서 K-3와 맞붙게 될 MGCS(차세대 지상전투체계) 예산으론 1억3996만 유로(약 2030억원)를 투입키로 했다. MGCS는 독일과 프랑스가 2030년대 후반 배치를 목표로 공동 개발 중인 차세대 주력전차다. 전년 대비 80% 증액한 규모로, 추가 예산 투입을 위해 4억6000만 유로(약 6670억원) 규모 지출 권한을 미리 부여하는 조치까지 취해뒀다.
독일은 한화의 다연장로켓 '천무'를 겨냥해 GMARS(라인메탈)를 전면에 내세울 예정이다. GMARS는 미국의 록히드 마틴과 협력해 하이마스(HIMARS) 탄약을 공유하는 전략으로 내년 대량 양산에 돌입한다. K-9 자주포 역시 주행 중 사격이 가능한 독일의 RCH 155가 영국 시장을 선점하며 한국을 위협하고 있다.
좀더 장기적인 구매계획인 독일 연방군 재조직안과 장기조달 계획에 따르면 독일은 수송용 장갑차 파트리아 6×6 약 3500대, 박서 장갑차 약 3000대, 푸마 보병전투차 687대, 유로파이터 타이푼 40~50대, 레오파르트2A8 최소 123대(현재 계약 진행 중), 박서 장갑차 차체 기반 저고도 방공망인 스카이레인저 30 최대 561대, 차륜형 자주포 RCH 155 약 160문, F126 호위함 4~6척 등을 향후 5~10년간 구매할 예정이다.

레오파르트2, 내년부터 K-2의 2배 양산
독일은 '수공업'에 가까운 레오파르트2 생산공장을 스마트팩토리로 뜯어고치고 있다. KNDS 뮌헨 알라흐 공장은 약 10억 유로(약 1조5000억원)를 투입해 자동화 용접 로봇과 AI 기반 품질 검사 시스템을 도입했다. KNDS는 이를 통해 과거 월 1.6대 수준이던 레오파르트 2A8의 생산 능력을 2027년까지 월 20대 이상(연간 240대)으로 10배 이상 끌어올릴 계획이다. 한국 K-2 전차의 연간 생산량(약 120대)을 압도하는 규모다.KNDS는 레오파르트 시리즈로 유명한 크라우스 마파이 베그만과 르클레르 시리즈로 알려진 프랑스 넥스터가 합병한 회사다. KNDS는 두 회사의 전차 기술을 결합해 차세대 지상전투체계(MGCS)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라인메탈은 유럽 최대 방산 기지인 운터뤼스 복합단지를 대폭 증설키로 했다. 이 곳은 155mm 포탄 생산량을 현재의 4배인 연간 24만 발로 늘리는 작업을 내년까지 완료할 예정이다. 연초부턴 헝가리 바르팔로타에 진행 중이던 공장 증설을 마무리하고 155㎜ 포탄과 레오파르트2용 120㎜ 탄약 생산에 들어갔다.
리투아니아엔 각각 바이소가라와 카우나스에 연간 10만발 포탄생산체계와 41대 전차 조립라인을 내년 설치할 예정이다. K-9 자주포의 강점인 '탄약 공급망'을 현지 생산체제로 압도하겠다는 전략이다.

독일 ‘빅3’인 라인메탈, KNDS, TKMS(티센크루프 마린시스템즈)는 시대전환의 최대 수혜를 입으며 기록적인 재무 성과를 거두고 있다. 독일 방산 3사의 수주잔고 합계는 약 1237억 유로(약 179조 원)에 달한다.
독일 최대 방산기업 라인메탈은 2022년 매출 64억1000만 유로(약 9조3000억원), 영업이익 7억5000만 유로에서 2024년 매출 97억5000만 유로(약 14조1000억원), 영업이익 14억8000만 유로로 수직 상승했다. 지난해 잠정 실적은 매출 127억 유로(약 18조4000억원), 영업이익 20억 유로에 달할 전망이다. 특히 수주잔고는 2022년 266억 유로에서 지난해말 800억 유로(약 116조 원)로 3년 만에 3배가량 폭증하며 무려 8년치 일감을 쌓아두고 있다.
연내 프랑크푸르트와 파리 증시 상장이 유력한 KNDS는 2022년 매출 31억7000만 유로(약 4조6000억원), 영업이익 3억9000만 유로에서 2024년 매출 38억 유로(약 5조5000억원), 영업이익 5억 유로를 달성했다. 지난해 매출은 45억 유로, 영업이익은 5억 유로를 웃돌 것으로 보인다. 레오파르트 2A8 등 유럽 공동 조달 물량이 쏟아지면서 수주잔고는 2022년 151억 유로에서 2025년 250억 유로(약 36조 원)를 넘겼다.
212급 잠수함을 내세워 캐나다에서 한화오션과 경쟁 중인 TKMS도 부활에 성공했다. 2022년 매출 18억 유로, 영업이익 6000만 유로에 그쳤던 TKMS는 2024년 매출 22억 유로(약 3조2000억원), 영업이익 1억3000만 유로를 기록하며 체질 개선에 성공했다. 잠수함 수주가 잇따르며 수주잔고가 2023년 116억 유로에서 2025년 187억 유로(약 27조 원)로 60% 이상 급증했다. 이같은 실적을 기반으로 지난해 10월 프랑크푸르트 증시에 상장했다.
한 방산 대기업 관계자는 "지금처럼 K방산이 수주 잔고를 쌓아올릴 수 있는 기간을 최대 3년 정도로 보고 있다"며 "유럽 방산 공급망을 자국 중심으로 재편 중인 독일이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물량을 쏟아내기 시작하면 유럽 뿐 아니라 다른 시장에서도 한국의 납기 경쟁력이 희석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