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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가 어때서"…붓으로 다시 피어난 인생, 연극 '노인의 꿈'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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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가 어때서"…붓으로 다시 피어난 인생, 연극 '노인의 꿈'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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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마곡동 LG아트센터 U+스테이지. 무대 위 캔버스에는 아직 채워지지 않은 여백이 가득하다. 그 여백을 채우는 것은 물감이 아니라 10대부터 노년까지 각기 다른 시차를 살아가는 우리네 삶의 이야기다. 연극 '노인의 꿈'은 '꿈'이라는 단어가 청춘의 전유물이 아님을, 그리고 상처 입은 관계를 봉합하는 가장 따뜻한 치유제임을 묵직한 감동으로 증명해 낸다.


    극은 경영난과 갱년기, 가족 갈등이라는 삼중고에 시달리는 미술학원 원장 '봄희'의 팍팍한 일상으로 문을 연다. 삶의 무게에 눌려 정작 자신의 색깔은 잃어버린 채 무채색으로 살아가던 봄희 앞에 어느 날 불청객이 찾아든다. "내 영정사진을 직접 그리고 싶다"는 엉뚱하고 당돌한 선언을 날리며 등장한 70대 할머니 '춘애'다.

    작품의 백미는 단연 전설의 배우들이 빚어내는 압도적인 연기 앙상블이다. 자신의 영정사진을 '꿈의 완성'이라 부르는 '힙(Hip)'한 할머니 춘애 역에는 김영옥, 김용림, 손숙이 트리플 캐스팅됐다. 이들은 죽음을 앞둔 노인의 처연함 대신, "내 나이가 어때서"를 외치며 주체적으로 삶을 마무리지으려는 당당함을 연기한다. 툭 던지는 농담 속에 삶의 깊은 연륜을 담아내는 대배우들의 내공은 객석을 쥐락펴락한다.


    이들과 호흡을 맞추며 극의 중심을 잡는 봄희 역에는 하희라, 이일화, 신은정이 이름을 올렸다. 세 배우는 누군가의 딸이자 아내, 엄마로 사느라 '나'를 지운 'K-중년' 여성의 초상을 각기 다른 결로 섬세하게 그려낸다.





    현실에 치여 붓을 놓았던 봄희가 춘애의 도발적인 제안을 수락하며 다시 캔버스 앞에 서는 과정은, 잊고 지냈던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이기도 하다. 하희라의 깊은 감성, 이일화의 따뜻한 공감 능력, 신은정의 섬세한 표현력은 관객들로 하여금 "저건 바로 내 이야기"라는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극이 중반을 넘어서며 작품은 단순한 휴먼 드라마를 넘어선다. 미술학원이라는 공간에서 티격태격하던 춘애와 봄희 사이에 숨겨져 있던 인연의 실타래가 하나둘 풀리기 시작하면서다. 전혀 접점이 없을 것 같던 두 여인의 관계가 드러나는 순간, 인물들이 가슴 속에 꾹꾹 눌러 담았던 진심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온다. 오해와 편견이 걷힌 자리에 비로소 서로를 향한 이해와 연민이 싹트고, 이는 객석에 뜨거운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여기에 다른 가족들의 사연도 극의 밀도를 높인다.


    봄희의 남편이자 현실적인 가장 '채운' 역에는 강성진, 이필모, 윤희석이, 봄희의 친정아버지 '상길' 역에는 남경읍, 박지일, 김승욱이 출연해 중후한 존재감을 과시한다. 이들은 때로는 갈등도 있지만, 결국은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지탱하는 버팀목이었음을 보여준다. 특히 꼬장꼬장한 듯 보이지만 자식 걱정에 여념이 없는 상길과 현실의 벽 앞에서 고뇌하는 채운의 모습은 이 시대 아버지들의 자화상을 대변하며 공감을 이끌어낸다.

    또한, 할머니와 엄마, 아빠 사이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손녀 '꽃님(진지희·윤봄·최서윤 분)'의 성장통은 세대 간 소통의 가능성을 시사하며 극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노인의 꿈'은 묻는다. 나이가 들어서, 현실이 바빠서 꿈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냐고. 극 중 춘애는 온몸으로 답한다. 꿈을 꾸는 데 늦은 나이란 없으며, 그 꿈을 향해 서로의 손을 맞잡는 순간 비로소 진정한 치유가 시작된다고.

    베테랑 배우들의 명품 연기와 반전을 거듭하며 드러나는 인물들의 진심 어린 서사가 어우러진 '노인의 꿈'. 아직은 이른 봄, 바람에 마음까지 시려오는 시기지만, 굳어버린 감성을 말랑하게 녹여줄 따뜻한 난로 같은 작품이다. 공연은 LG아트센터 서울 U+스테이지에서 3월 22일까지 계속된 후 전국 공연이 이어진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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