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경제포럼(WEF)이 지난 1월 발표한 ‘2026 글로벌 리스크 보고서’에 따르면 향후 10년간 세계가 직면할 10대 리스크 가운데 절반이 환경 부문이다. 극한 기후가 가장 심각한 장기 위협 1위로 선정됐고, 생물다양성 손실 및 생태계 붕괴가 2위를 차지했다. 이처럼 생태계를 훼손하거나 파괴하는 일은 단순한 환경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경제와 사회 전반에 막대한 비용을 초래할 뿐 아니라 미래세대가 누려야 할 기회를 앞당겨 소비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이제 글로벌 자본 시장의 시선은 탄소중립을 넘어 자연생태계 전반으로 확장되고 있다. 환경에 ‘덜 나쁜’ 영향을 주는 수준을 넘어 자연을 플러스(+) 상태로 회복시키는 ‘네이처 포지티브(Nature Positive)’를 증명하지 못하는 기업은 글로벌 자산운용사와 투자자의 선택지에서 제외되는 시대가 됐다. ‘자연 관련 재무정보공개 협의체(TNFD)’의 본격적인 도입은 바로 이러한 금융 질서의 변화를 상징한다.
‘장소’가 곧 재무 리스크다
TNFD가 기업에 요구하는 것은 명확하다. 기업 활동이 자연에 미치는 영향과 자연에 대한 의존도를 파악해 이를 재무 리스크로 공시하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기후변화 관련 재무정보공개 협의체(TCFD)와 구별되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는데 바로 ‘장소(location)’ 개념이다.
TNFD 핵심 방법론인 LEAP 프로세스의 첫 단계가 L(locate), 즉 기업 활동이 ‘어디에서’ 일어나는지 파악하는 것이다. 탄소는 지구 어디에서 감축하든 대기 중 농도에 일정하게 기여하지만, 생물다양성은 철저히 ‘장소 기반’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같은 식품 제조 공장이라도 수도권에 공단이 위치하는지, 낙동강 유역에 있는지, 제주 지하수 보호구역에 위치해 있는지에 따라 생태계 의존도와 영향은 완전히 달라진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지난해 12월 개정한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이하 K-택소노미)다. K-택소노미는 어떤 경제활동이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녹색’인지를 정부가 정의한 국가 지침서로, 이번에 개정한 가이드라인은 생물다양성 보전 활동을 녹색경제활동의 핵심 요소로 구체화했다. 즉 지역을 이해하지 못하고 현장의 생태적 특성을 파악하지 못하는 기업은 TNFD 기준은 물론 정부가 정한 녹색채권이나 녹색여신 등 실질적인 자금 조달의 기회마저 불리해질 수 있다.
서류 밖의 생물다양성, 데이터는 ‘현장’에 있다
TNFD 대응 과정에서 한국 기업들이 마주하는 난관은 ‘정량적 데이터의 부재’다. 2026년 현재 여전히 많은 기업이 자발적 공시 단계에 머물러 있는 이유도 특정 사업장 인근의 생태적 영향을 데이터화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데이터의 공백을 메우는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는 전문가와 임직원이 함께 참여하는 ‘현장 기반 데이터 구축’이다. 최근 에코나우가 기업과 협력해 진행 중인 지역 기반 생태 모니터링 사업은 전문가의 과학적 분석에 임직원의 생생한 현장 활동 기록을 더한 좋은 사례다.
전문가는 하천 모니터링의 틀을 설계하고 데이터를 검증한다. 임직원은 유해 식물을 제거하고 직접 생물을 관찰하며 현장의 변화를 기록으로 남긴다. 전문가의 과학적 분석과 임직원의 생생한 현장 기록이 결합되는 방식이다.
이렇게 축적된 데이터는 강한 설득력을 가진다. 기업이 자기 사업장 인근의 환경을 얼마나 면밀히 관리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신뢰도 높은 자산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현장 데이터화 역시 사람의 이해와 참여 없이는 불가능하다.
‘현장을 읽어내는 역량’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기업이 관심 지역 학교와 지역아동센터 등 미래세대를 직접 만나며 생물다양성 보전에 대한 ‘체험 중심 교육’을 이어가는 것도 좋은 사례가 된다. 이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자연을 단순한 대상이 아닌 ‘관계’로 인식하는 생태감수성을 기르게 된다. 현장 데이터를 이해하는 힘은 자연을 향한 관심과 생태감수성에서 시작되며, 이것이 에코나우가 지난 17년간 연간 3만 명씩 현장 중심 교육에 집중해 온 이유기도 하다.
환경교육, 이제는 전략적 역량이다.
우리는 경제 지식을 합리적인 선택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필수 조건으로 여긴다. 이는 불확실한 시장에서 더 나은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다. 그러나 모든 경제 활동은 자연이라는 기반 위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종종 간과한다.
지금 시장의 문법은 빠르게 바뀌고 있다. TCFD와 TNFD 같은 글로벌 공시 기준은 물론 K-택소노미와 같은 정책 기준까지 환경은 이미 재무의 언어로 해석되고 있다. 기업에 던져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자연을 비용으로 관리할 것인가, 전략 자산으로 이해할 것인가. 이 인식의 차이가 대응의 깊이를 가르고, 전략의 방향을 결정한다.
이제 이에 대한 지식을 축적하기 위한 교육은 ESG팀만의 업무도, 미래세대만을 위한 투자도 아니다. 기업 전체가 환경을 이해하는 언어를 갖추고, 각자의 자리에서 환경을 고려한 선택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과정이다. 더 나아가 미래세대를 교육함으로써 기업의 정책을 이해하고 지지할 소비자와 인재를 키울 수 있다.
지속가능성은 현재 세대의 선택이 미래세대의 기회를 빼앗지 않도록 하는 최소한의 원칙이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힘은 결국 사람에게서 나온다. 탄소를 넘어 자연으로 확장된 이 시대, 기업의 미래를 가르는 것은 보고서가 아닌 환경을 이해하는 조직의 깊이다. 결국 ESG는 현장에서 사람을 통해 완성된다.

하지원 에코나우 대표, 국가기후위기대응위원회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