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점수 900점대인 30대 직장인 A씨는 최근 카드론을 받아 주식 투자 자금을 마련했다. 은행 신용대출이 막혀 고민하던 차에 ‘중도 상환 수수료 없이 즉시 대출 가능’이라는 안내 문구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A씨는 “신용점수가 일시적으로 떨어질 수 있지만 단기 수익 실현 후 바로 갚을 계획”이라며 “주식 수익률을 고려하면 이자 부담도 크지 않다”고 말했다.
서민의 ‘최후의 보루’로 불리는 카드론이 고신용자의 급전 창구로 떠올랐다. 역대급 증시 불장에 올라탄 고신용자가 투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카드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카드회사 역시 건전성 관리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상환 능력이 우수한 고신용자 고객 유치에 주력하는 분위기다. 자금 사정이 여의찮은 저신용자의 카드론 이용 문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고신용자 비중 30% 돌파
19일 금융감독원이 이헌승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고신용자 카드론 쏠림’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8개 전업카드사(신한·삼성·KB국민·현대·롯데·하나·우리·비씨카드)의 지난해 4분기 카드론 신규 취급액 중 신용점수 900점 초과 고신용자 비중은 8.2%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7.5%) 대비 0.7%포인트 높아졌다. 800점 초과 900점 이하 차주 비중은 같은 기간 19.4%에서 22.8%로 상승했다.반면 중·저신용자 비중은 쪼그라들었다. 같은 기간 신용점수 700점 초과 800점 이하 중신용자 비중은 42.1%에서 39.3%로 낮아졌다. 700점 이하 저신용자 비중은 31.0%에서 29.7%로 동반 하락했다. 카드론 주력 이용층이 중·저신용자에서 고신용자로 뒤바뀌는 기현상이 가속화하는 양상이다.
‘단타 매매’를 노리는 고신용 개미(개인투자자)의 급전 수요와 카드사의 이해관계가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 시중은행이 가계대출 총량 규제로 신용대출 빗장을 걸어 잠그면서 고신용자가 연 10% 안팎의 고금리와 신용점수 하락을 감수한 채 카드론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복잡한 심사 없이 모바일로 즉시 대출이 가능하고 중도 상환 수수료가 없다는 점도 ‘빚투’(빚내서 투자) 수요를 자극했다는 분석이다.
카드사도 이례적인 고신용자 카드론 확대를 반기고 있다. 가맹점 수수료율 인하와 조달 금리 상승으로 수익성과 건전성 관리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연체 위험이 낮고 대출 규모가 큰 고신용자가 주요 고객층으로 떠오르면서다. 그동안 저신용자 카드론은 대손충당금 적립 부담이 커 수익성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꼽혀 왔다.
◇카드론 금리도 ‘양극화’
카드론 금리도 양극화하고 있다. 카드사들이 고신용자 위주로 조정금리(우대금리) 혜택을 주면서다. 지난해 말 기준 900점 초과 고신용자의 카드론 평균 금리는 연 10.6%로, 상반기 말(연 11.3%) 대비 0.7%포인트 내려갔다. 반면 같은 기간 700점 이하 저신용자의 카드론 금리는 연 17.4%로 0.1%포인트 하락하는 데 그쳤다.획일적인 가계대출 규제가 역설적으로 저신용자의 대출 숨통을 조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카드론을 포함한 신용대출 한도를 ‘연소득 내’로 묶은 6·27 대책이 대표적이다. 상대적으로 연소득이 높은 고신용자는 카드론을 추가로 받을 여력이 있지만 저신용자는 소액 대출만으로 한도가 잠겨버렸기 때문이다.
올해 역시 정부의 가계대출 규제 기조가 이어지는 것도 악재다. 한정된 카드론 공급 한도를 고신용자가 선점하면 저신용자 대출이 위축되는 현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돈줄이 막힌 서민이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한 카드사 임원은 “흔들리는 카드사 수익성·건전성을 고려하면 고신용자 위주 카드론 마케팅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취약계층을 보호하기 위해선 생계형 자금의 한도 규제를 한시적으로 완화하는 등 정교한 ‘핀셋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장현주 기자 blackse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