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금융정보분석원(FIU)에 보고된 마약, 불법도박, 보이스피싱 등 범죄 수익의 ‘자금세탁 의심 거래’는 130만 건이다. 1년 전에 비해 30만 건이 늘었다. 지난 5년간 적발된 ‘환치기’ 범죄 규모도 11조5000억원으로 83%(약 9조5000억원)가 가상자산을 활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텔레그램을 통한 온라인 마약 밀매부터 중고차 수출 등 무역거래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으로 불법 자금세탁이 급증하고 있음이 확인된 것이다.조세회피처로 자금을 빼돌리는 국외 재산 도피도 문제다. 2020년부터 5년간 주요 조세회피처 15곳으로 송금된 금액은 총 39조341억원인데 러시아 2조1799억원, 케이맨제도 1조6964억원, 버뮤다 1131억원, 파나마 881억원 순이다. 이 중 상당수가 탈세, 불법자금 세탁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금융범죄는 부패, 탈세, 마약조직범죄 등과 긴밀히 연결돼 있고 피해 규모도 엄청나서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국가와 사회의 존립 기반까지 위태롭게 할 수 있다. 폭증하는 자금세탁 의심 거래는 이전 수단과 방법이 고도화하고 있고 중계무역 등 특수무역 거래, 가상자산 거래와 같이 당국의 추적이 쉽지 않은 첨단 기법 사용이 일반화하고 있다. 합법적 사업 구조로 위장해 단속을 회피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어 더 늦기 전에 근본적인 대응 방안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선진국들은 수십 년 전부터 빠르게 진화하는 금융범죄의 도전에 맞서 중앙집중화·전문화를 추진 전략으로 인력과 예산 확보, 수사력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
프랑스는 1999년 파리지방검찰청 금융범죄 거점수사부(pole financier)를 시작으로 2004년 금융경제범죄 수사권 강화와 특별광역검찰청 신설을 거쳐 2014년에는 전국을 관할하는 국가금융검찰청(PNF)으로 발전시켰다. 프랑스 국가금융검찰청은 사법경찰을 지휘해 자금세탁, 탈세, 주가조작, 정치부패 등 수사를 총괄하고 국세청, 관세청, 프랑스은행 등 관련 기관의 전문인력도 함께 근무하는 범정부 컨트롤 타워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독일도 2024년 재무부 산하에 연방금융범죄수사청(BBF)을 신설해 흩어져 있던 자금세탁 감시 및 수사 기능을 통합해 ‘금융수사 허브’로 만들었다.
올해 1월부터 개정된 테러자금금지법이 시행되고 작년 12월 말 금융위원회 주관으로 금융감독원과 은행연합회 등이 참여해 자금세탁방지제도 선진화를 위한 특정금융정보법 개정 태스크포스를 출범시킨 것은 진일보한 것이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자금세탁방지기구만 해도 미국의 FinCEN에 550명, 독일 FIU에도 754명이 근무하고 있는데 25년 전 50명으로 출범한 금융정보분석원은 70명이 130만 건을 조사하고 있는 실정이다. 첨단화하고 있는 금융범죄에 제대로 대응하려면 금융위에 맡겨 놓을 것이 아니라 청와대 주관으로 관련 인력과 조직, 기관 간 역할 분담, 수사권을 포함한 제도 전반에 걸쳐 정밀하게 현상을 분석하고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올해 10월 검찰청 폐지 이후 생길 수 있는 금융범죄 수사 체계의 혼선과 비효율이다. 검찰이 맡아 온 금융범죄 수사를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경찰(국가수사본부) 중 어느 기관이 주도적으로 맡을 것인지 정리돼야 한다. 전문화·중앙집중화 전략, 금융정보분석원과의 연계, 국제형사사법공조 컨택트 포인트 일원화 문제와 관련 있기 때문이다. 중수청 수사 대상에서 공직자범죄와 선거범죄를 제외하기로 한 방침도 문제다. 공직부패와 정치부패는 자금세탁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기 때문에 자칫 부패범죄를 조장하는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
금감원 특별사법경찰(특사경)에 자본시장법 인지수사권을 부여하는 방안은 민간인 신분인 금감원 직원에게 준사법권인 수사권을 주는 것이 적절한지 여부도 문제지만 특사경은 검사 지휘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정부의 검사 수사권 배제 원칙과의 조화가 과제다. 형사사법제도는 그 시대를 반영해야 하고, 목적 달성을 위해 적절한 수단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첨단 금융범죄 대응에 실패한 형사사법은 존재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