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한테 뭐라고 카톡을 보내야 할까?" 직장인 이모 씨(25)는 가족, 연인 등 가까운 이들과 사소한 갈등이 생겼을 때마다 챗GPT를 이용하곤 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개인 사정을 구구절절 말하기보다 챗GPT에게 묻는 게 편해서다. 이 씨는 "연애 고민처럼 사적인 이야기는 주변 친구에게 공유하기 망설여진다"며 "챗GPT는 익명이라 부담이 적고 곧바로 해법을 주니까 자주 이용하게 된다"고 말했다.
AI 챗봇, '검색 도구' 넘어 '심리 상담사'로
인공지능(AI)을 적극 활용하는 젊은 세대 사이에서 이 씨처럼 '정서적 대화'를 나누는 이들이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7월 채용 플랫폼 진학사 캐치가 젠지(Gen-Z·Z세대) 구직자 1592명을 대상으로 'AI 활용 경험'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73%가 '실제 사람 대신 AI에만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고민을 나눌 때 AI가 더 편하다는 응답자(32%)가 사람이 더 편하다는 응답자(33%)와 비슷한 수준이었다.이처럼 AI는 검색 도구를 넘어 '심리 상담사'로 변모한 분위기다. 지난해 3월 한국리서치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전문 상담사와 AI 상담사 이용 경험'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의 40%가 심리적 어려움을 겪게 되면 AI 심리 상담 서비스를 이용할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전문 상담사를 통한 심리 상담 서비스를 이용하겠다는 응답자가 전체의 56%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수치다.
실제 의료 현장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채정호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심리 상담 자체를 AI로 시작하는 환자가 많다"면서 "상담 과정에서 'AI는 그렇게 얘기하지 않았다'고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AI 챗봇이 심리 상담사로 떠오른 이유에 대해 김 교수는 "병원에서의 전문 상담은 비용 등을 고려할 때 진입장벽이 높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국리서치 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AI를 통한 심리상담 경험이 있는 응답자는 '비용과 편리성'을 AI 상담사의 강점으로 들었다. 반면 전문 상담사를 통한 심리상담 경험이 있는 응답자는 '전문성'을 인간 상담사의 장점으로 꼽았다. 김 교수도 "AI 챗봇이 의료적으로 정확한 진단을 내리기는 어렵다. 최후의 위기 순간에는 전문 상담사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로움 해소냐, 사회적 고립이냐
AI 챗봇과의 정서적 교류가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두고는 평가가 엇갈린다. 하버드 경영대학원 연구팀은 AI 챗봇과의 대화가 '외로움 완화에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피실험자를 총 5개 집단(상호작용 없음·사람·AI 챗봇·사람으로 소개한 AI 챗봇·유튜브)으로 분류했다. 그 결과 상호작용이 없는 집단을 제외한 나머지 집단에서 모두 외로움 지수가 감소했다.
피실험자에게 사람으로 소개한 AI 챗봇과의 상호작용(9.87점 감소)은 실제 사람과의 상호작용(7.11점 감소)보다 외로움 감소에 더 효과적이었다. AI 챗봇과 상호작용한 집단에서는 외로움 지수가 6.76점 감소하며 그 뒤를 이었다. 유튜브와의 상호작용한 집단에서는 외로움 지수가 3.07점 감소했다.
반면 AI 챗봇과의 정서적 교류가 정신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오픈AI와 메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 미디어랩 연구팀은 AI 챗봇과의 대화와 정신 건강 사이의 연관성을 연구했다. 한 달 동안 피실험자는 최소 5분 이상 텍스트 혹은 음성 기반의 AI 챗봇과 소통했다. 이때 피실험자 중 절반은 AI 챗봇과 업무 등 공적인 대화를 나눴고, 나머지 절반은 사적인 대화를 나눴다.
연구 결과를 보면 사용 방식이나 대화 내용에 상관없이 AI 챗봇을 오래 사용할수록 외로움을 더 느낀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AI 챗봇과 대화할수록 사회성이 떨어졌고 AI 챗봇에 대한 심리적 의존도가 높아지며 '문제의 소지'가 있는 사용이 증가했다. AI 챗봇과의 교류가 늘어날수록 실제 사람과의 교류가 줄어든 탓이다.
전문가들은 AI 챗봇과의 대화에서 '균형'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채 교수는 "주식도 한 종목에 '올인'하면 문제가 생기지 않느냐. AI 챗봇과의 대화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는 "대인관계를 활발히 하는 사람이 AI 챗봇과 대화를 나누는 건 괜찮다"며 "문제는 오프라인 교류 없이 AI 챗봇과 같은 온라인 소통에만 의존하는 경우"라고 강조했다.
전창배 국제인공지능윤리협회 이사장도 "AI 챗봇에 과몰입하지 않기 위해서는 장기간 사용을 피해야 한다"며 "AI 챗봇과의 대화를 주기적으로 되돌아보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AI 챗봇의 공감은 '정서적 판단'이 아니라 '계산된 결과'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동시에 AI가 여전히 불완전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수 한경닷컴 기자 2s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