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터리 효율을 끌어올리지 못하면 피지컬 인공지능(AI) 시대 주도권을 잡을 수 없습니다. 그 출발점은 배터리관리시스템(BMS) 반도체입니다.”
삼성 스마트폰의 두뇌를 만든 주역인 정세웅 아나배틱세미 대표(64)는 지난 13일 60대에 창업한 배경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서울대 전자공학과 출신인 정 대표는 미 콜로라도대에서 전자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1993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20년 넘게 삼성에서 일했다. 2002년 상무로 승진해 2014년까지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에서 일하며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인 엑시노스 개발을 주도하고 파운드리 사업을 총괄했다. 2014년엔 삼성SDI 부사장으로 옮겨 전기차 및 에너지 저장장치(ESS) 사업을 이끌었다.
2020년부터 3년간 글로벌 에너지 기업 솔라엣지의 한국 법인 대표로 재직하다가 2024년 반도체 설계회사인 아나배틱세미를 설립했다.
그가 창업에 관심을 기울인 계기는 코로나19였다. 정 대표는 “삼성SDI에서 일하다 보니 한국 배터리 기업이 양극재와 음극재 등 소재 분야에서는 강했지만 BMS칩은 외국산에 의존하고 있었다”며 “팬데믹 이후 BMS칩 공급 대란으로 업계가 휘청이는 걸 보며 이걸 국산화하는 게 우리 배터리산업에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BMS 반도체는 배터리의 전압, 전류, 온도를 정밀하게 측정하고 제어하는 역할을 한다. 충·방전 방식을 최적화해 배터리 수명과 효율을 높여 ‘배터리의 두뇌’로 불린다. BMS 반도체의 성능에 따라 배터리 효율은 5~10%까지 차이가 날 수 있다. 정밀 진단과 제어 알고리즘 구현이 가능할수록 수명이 늘고 안전성은 높아진다.
세계 BMS 반도체 시장은 아날로그디바이스, 텍사스인스트루먼트, ST마이크로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이 주도하고 있다. 정 대표는 “현재는 BMS를 구성하는 칩을 각각 다른 영역의 기업이 과점 공급해 가격은 비싸고 고객 맞춤 대응에 한계가 있다”며 “배터리 회사와 밀착해 모든 구성 요소에 대한 토털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이 우리의 차별점”이라고 강조했다.
아나배틱세미는 배터리 셀 전압을 정밀 측정하는 AFE 칩 개발을 마치고 올해 말 양산에 들어갈 계획이다. 창업 1년 만에 삼성 등 글로벌 반도체 업계의 베테랑 설계 인력 30여명을 확보해 연구개발에 집중한 결과다. 정 대표는 “국내 배터리 기업을 핵심 고객사로 확보했다”며 “초기 매출은 에너지저장장치(ESS)와 전기차에서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피지컬 AI와 휴머노이드 로봇 시대에는 에너지 밀도가 높은 배터리를 얼마나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쓰느냐가 경쟁력”이라며 “결국 배터리와 반도체의 결합이 산업 판도를 바꿀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 대표의 행보는 배터리 반도체 독립에 맞춰져 있다. 그는 “스마트폰 시대 때 받은 기회를 배터리 산업 경쟁력 강화로 돌려주고 싶다”며 “한국 배터리 기업들이 핵심 반도체까지 자립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 내 마지막 사명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성남=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