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면허 운전 사고가 났을 때 보험사가 피보험자에게 고액의 사고부담금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 보험약관 조항이 유효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중대한 교통법규 위반의 책임을 강화하려고 개정한 표준약관을 그대로 반영한 조항이라는 취지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지난달 8일 현대해상화재보험이 무면허 운전자 A씨를 상대로 낸 구상금 청구 소송에서 보험사 패소 판결을 내린 원심 판결을 파기환송했다고 18일 밝혔다.
A씨는 2022년 1월 밤 무면허로 운전하다 시동을 켜둔 채 잠들었다. 음주운전 의심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들이 A씨를 깨우려고 운전석 창문을 세게 두드리자, A씨는 잠에서 깨자마자 차량 앞에 있던 경찰관을 앞 범퍼로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경찰관은 다리뼈가 골절되는 등 전치 6주의 상해를 입었다. 보험사는 피해 경찰관에게 약 2280만원의 보험금을 지급한 뒤 약관에 따라 A씨에게 대인배상 사고부담금을 청구했다.
A씨가 가입한 보험약관에는 무면허 운전 사고로 보험금이 지급될 경우 피보험자가 대인배상Ⅰ은 사고당 300만원, 대인배상Ⅱ는 사고당 1억원의 부담금을 내도록 규정돼 있었다. 하지만 A씨는 해당 약관이 고객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내용이라며 맞섰다.
1·2심은 A씨가 300만원만 부담하면 된다고 봤다. 재판부는 해당 약관이 고객에게 부당하게 불리해 공정성을 잃었다고 판단했다. 또 약관이 관련 법령인 구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시행규칙에 어긋나 무효라고 봤다.
하지만 대법원은 하급심 판단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사고부담금 상향은 중대한 법규 위반 사고를 낸 사람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에 따른 것”이라며 “개정된 표준약관을 그대로 반영한 약관 조항이 고객에게 부당하게 불리하거나 이례적이어서 예견 가능성이 없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판시했다. 시행규칙이 정한 한도(사고당 300만원)는 국가가 가입을 강제
하는 의무보험에만 적용되며, 개인이 선택해 가입하는 임의보험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봤다.
정희원 기자 top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