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5,507.01

  • 15.26
  • 0.28%
코스닥

1,106.08

  • 19.91
  • 1.77%

계약서 문구 하나, 한·영 해석은 둘… 동상이몽의 국제분쟁 [한민오의 국제중재 프리즘]

페이스북 노출 0

핀(구독)!


뉴스 듣기-

지금 보시는 뉴스를 읽어드립니다.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계약서 문구 하나, 한·영 해석은 둘… 동상이몽의 국제분쟁 [한민오의 국제중재 프리즘]

주요 기사

    글자 크기 설정

    번역-

    G언어 선택

    • 한국어
    • 영어
    • 일본어
    • 중국어(간체)
    • 중국어(번체)
    • 베트남어
    한경 로앤비즈의 'Law Street' 칼럼은 기업과 개인에게 실용적인 법률 지식을 제공합니다. 전문 변호사들이 조세, 상속, 노동, 공정거래, M&A, 금융 등 다양한 분야의 법률 이슈를 다루며, 주요 판결 분석도 제공합니다.



    'Same Bed Different Dreams.'


    얼마 전에 서점가에서 본 책 제목이다. 재미교포가 쓴 소설이고, 무려 퓰리처상 최종 후보라는데 '이 제목은 뭐지?' 싶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동상이몽'을 영어로 표현한 것이다. 익숙한 사자성어를 영어로 보니, 원래 알던 표현과는 어감이 전혀 달랐다.
    '동상이몽'에서 분쟁으로
    국제분쟁의 대다수는 동상이몽에서 비롯된다. 같은 계약 문구를 놓고 나는 A, 상대방은 B라고 해석하면 언젠가는 세계관의 충돌이 생길 수밖에 없다. 계약서는 양측이 원하는 바를 분명히 담는 문서 같지만,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나와 네 마음이 다른 경우가 있다. 상대방이 한국 기업이 아니고, 계약서가 영어로 된 경우 특히 빈번하게 발생한다. 다른 문화권에서 자주 쓰는 말과 표현을 한 영문 계약서에 넣다보니 '진정한 마음'이 온전히 표현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최근 한국 기업과 외국 기업이 거래하면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조항을 두고 다툰 사건이 있었다. 문화적으로 한국인은 만사에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계약 이행 시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조항은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볼 여지도 있다. 해당 조항은 확인 차원일 뿐, 독자적인 의무 조항은 아니라고도 할 수 있다. '최선 노력 의무'가 독자적 계약상 의무가 아니라면, 의무 위반도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 한국 회사 관점이었다.


    반면 외국 회사의 입장은 달랐다. 계약서에 들어간 단어 하나하나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보는 게 영어권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Best(최선)'라는 단어가 계약에 들어갔다면 무언가 그에 걸맞는 계약상 의무가 있다는 입장이었다. 같은 계약 문구를 두고도 문화적 배경과 맥락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단 점이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이었다. 계약서 단어 하나를 둘러싼 관점 차이로 양측이 막대한 변호사 비용을 지출하게 된 셈이다.



    의역이냐, 직역이냐
    국제중재는 소송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설득력 있는 글과 말로 재판부와 같은 역할을 하는 중재판정부의 마음을 사야 한다. 국제중재 사건에서 공식 언어는 영어로 합의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영어는 국제중재 변호사의 무기다.



    국제중재에서는 영어 번역을 할 일이 많다. 한국어 문서나 자료를 번역해 중재판정부를 설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늘 딜레마가 따른다. 번역자가 적극 개입해 최대한 매끄럽게 옮기고 필요하면 의역까지 해야 할지, 아니면 다소 번역투가 남더라도 원문의 의미와 뉘앙스를 훼손하지 않도록 직역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몇 년 전 천명관 작가의 《고래》 영문 번역본을 선물로 받은 적이 있다. 영국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라 화제가 된 소설이었다. 읽어 보니 문장이 술술 읽혀 놀라웠다. 분명 원작은 한국어 소설인데도 거슬리는 부분 없이 마치 처음부터 영어로 쓰인 작품처럼 자연스럽게 번역돼 있었다. 영미권 독자들도 쉽게 빠져들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국제중재에서도 중재판정부를 고려해 번역자가 적극 개입해 매끄럽게 옮기는 것이 바람직할까.

    국제중재는 문학이 아니다. 중재인이 거슬림 없이 번역된 텍스트를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서증을 토대로 판단을 내려야 하는 만큼 원문을 생생하게 전달해야 할 부분도 분명히 있다. 그렇다고 직역만 지나치게 강조하면 중재인 입장에서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다. 결국 국제중재 변호사는 의역과 직역 사이 어딘가에서 타협을 하기 마련이다. 한국어와 영어 모두 감각이 뛰어나야 해서 쉬운 작업은 아니다.
    완벽한 번역은 불가능
    변호사의 고민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글과 말은 문화의 산물이다. 우리나라 회사에서 만든 회의록은 한국 문화와 한국어 뉘앙스가 강하게 묻어 있다. 특히 한국어 회의록에는 화자가 식별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가령 A가 어떤 제안을 했고 B가 반대 의견을 제기했는데, C가 A의 제안을 보완하는 의견을 내고, 최종 회의에서 D안으로 정리됐다고 하자. 한국어 회의록에는 이런 경위가 잘 드러나지 않곤 한다. 대개 "1안과 2안이 논의됐고, 최종 절충안으로 결정됐다"처럼 결론 위주로 정리된다. 집단의 결정이 중요하지, 누가 어떤 의견을 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인식이 반영된 결과다. 이 때문에 주어가 생략되는 경우도 많다.





    반면, 서양의 회의록은 사정이 다를 때가 있다. 누가 어떤 말을 했는지가 비교적 분명히 나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말을 하고 글을 쓴 사람 개개인의 책임을 중요시하는 문화권에서는 누가 어떤 발언을 했는지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국어로 된 회의록을 영어로 번역하더라도, 원문에 없는 주어를 새로 만들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즉, 번역을 아무리 잘 해도 해소되지 않는 문화적 틈(gap)이 있다. 이럴 때는 중재판정부에 문화적 맥락까지 잘 설명해야 한다. 회의록에 주어가 드러나지 않는 것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한국 문화와 한국어 특성에서 비롯된 것임을 말이다.
    언어는 문화의 거울이다
    국제중재는 한국 회사와 외국 회사 간 국제거래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제기된다. 그래서 모든 사건에는 '국제적' 요소가 있고, 문화의 충돌이 일어나곤 한다. 양측의 문화적 차이를 판정부에 정확히 설명하는 일은 국제중재 변호사의 중요한 덕목이다.

    한국어는 고맥락·저속력 언어라는 평가를 받는다. 우리말은 동사가 문장 맨 뒤에 온다. 누가 무엇을 했는지 파악하려면 기다려야 한다. 미괄식으로 말하는 경우도 많다. 에둘러 상황을 설명한 다음, 이런저런 설명 끝에 말의 요지를 담는 식이다. 질문을 받으면 '예·아니오'로 답하는 것도 익숙하지 않다. "오늘 차린 식사는 입맛에 맞으셨나요?"라는 질문에 "아니오"라고 하기보다, "저한테는 조금 슴슴하네요"라고 돌려서 답을 하곤 한다.



    국제중재 심리기일에서도 한국인 증인이 '예' 또는 '아니오'로 답해야 할 질문에 습관적으로 "그렇기는 한데요…"라고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국 문화에서는 단정적인 답변을 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를 모르는 중재인은 증인이 말을 피하거나 동문서답하고 있다고 오해할 수 있다. 우리 측 증인에게 이런 점을 사전에 숙지시키는 것도 국제중재 변호사의 일이다.

    바디랭귀지도 중요하다. 한국 문화에서는 윗사람의 눈을 쳐다보고 답변하는 것을 무례하다고 본다. "빤히 두 눈을 뜨고 말대답을 한다"며 꾸중 듣기 십상이다. 반면 영미 문화권에서는 눈을 마주치지 않으면 집중을 하지 않고 딴청을 피우는 것으로 인식되곤 한다. 눈길을 피하는 게 방어적이거나 무례하다고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이때 우리 측 증인에게 "중재인들의 인중을 보면서 답하세요"라고 조언해주곤 한다.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최대한 불편하지 않도록 중간선을 제시해주는 것이다. 국제적 소통에도 섬세한 '안무'가 필요하다.
    영어 원어민이 아니라 좋은 점
    국제중재에서 영어가 무기이니, 영어가 모국어인 영국 변호사나 미국 변호사와 대결할 때 어렵지 않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처음에는 영어 원어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얼마든지 일을 잘 할 수 있다고 답해야 하나 생각했다. 펜싱은 프랑스에서 시작된 스포츠지만 한국인도 잘하는 것처럼 "겨뤄봐야 안다"는 말과 비슷하다고 여겼다.

    다만 실제로 여러 사건에서 영어로 변론을 할수록 오히려 영어 원어민이 아니라서 좋은 점도 여럿 있다고 느꼈다. 우선 원어민이 아니다 보니 특유의 말 습관이 없다. 예컨대 말끝마다 'you know'를 자동으로 붙이는 식의 버릇이 없다. 본의 아니게 영어 원어민이 아닌 변호사의 영어는 정제되고 깔끔하게 들릴 때가 많다.

    둘째, 말을 할 때 문장이 대체로 짧다. 길고 복잡한 문장을 구사하는 게 우리에겐 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제중재에서는 메시지가 간명해야 한다. 문장이 간결하고 메시지가 선명한 것을 오히려 좋은 문장으로 평가한다. 옥스포드 같은 일류 대학 출신 영국 법정 변호사 중에서 셰익스피어 연극에나 나올 법한 긴 문장으로 변론하는 경우가 있는데, 중재인이 요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를 본 적이 있다. 겉모습은 그럴듯하지만 막상 효과가 떨어지는 변론이다. 문장이 짧으면 이런 위험이 없다.




    셋째, 원어민이 아니라서 말하는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지 않는다는 점도 있다. 사람이 당황하거나 수세에 몰리면 모국어의 경우 말이 빨라지는 경우가 많다. 외국어에서는 대체로 그렇지 않다. 잘 정돈된 짧은 문장과 듣기 좋은 속도로 메시지를 중재판정부에 전달할 수 있다.

    모든 일에는 양면이 있다. 키가 작은 한국 펜싱 선수가 키가 큰 서양 선수를 상대로 경기를 하기 어렵지 않냐는 질문에 "오히려 타격 면적이 적고, 신장이 작은 만큼 더 민첩해서 좋다"던 땅콩 검객의 답변이 떠오른다.



    실시간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