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5,507.01

  • 15.26
  • 0.28%
코스닥

1,106.08

  • 19.91
  • 1.77%
1/2

"양아치는 많은데 속수무책"…조폭 잡는 강력계 형사의 한탄

페이스북 노출 0

핀(구독)!


뉴스 듣기-

지금 보시는 뉴스를 읽어드립니다.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양아치는 많은데 속수무책"…조폭 잡는 강력계 형사의 한탄

주요 기사

    글자 크기 설정

    번역-

    G언어 선택

    • 한국어
    • 영어
    • 일본어
    • 중국어(간체)
    • 중국어(번체)
    • 베트남어

    “조폭 같은 양아치는 너무 많죠. 근데 실제 조폭은 없어요. 조폭 담당 강력계 형사들은 실적 기근에 시달려요.”

    수도권에서 근무하는 베테랑 강력계 형사 A씨는 조직폭력배 수사로 성과를 내기 점점 어려워졌다고 토로한다. 그는 20년 넘게 조폭 수사를 전담해온 형사다. 정보망에는 여전히 현직 조폭이 많지만, 지난 10년간 그가 신규 폭력조직으로 검거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A씨는 “과거엔 조폭을 검거하면 높은 실적 점수를 받을 만큼 강력계 형사의 대표적 먹거리는 조폭이었다”며 “하지만 최근 10년간 사실상 잡을 조직이 없어 고과를 받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최근 일선 형사들 사이에선 제대로 된 조폭 범죄 수사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살인, 강·절도, 피싱 사기 등 더욱 잔인하고 대형화된 범죄는 늘고 있지만, 집단 범죄의 상징이던 전통적 조폭은 갈수록 쇠퇴하고 있어서다. 현행 법 체계가 변화한 범죄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통계상 조폭이 줄어든 것처럼 보이는 ‘착시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신규 폭력조직 감소세
    15일 이달희 국민의힘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국 폭력조직 수는 2016년 214개파에서 지난해 209개파로 감소했다. 1990년대만 해도 지역 기반 신흥 조직이 잇따라 등장하며 세력 다툼이 빈번했지만, 현재는 기존 간판 조직만 남은 채 구조가 고착됐다. 조직 간 대규모 물리적 충돌도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통계와 달리 국민 체감은 다르다. 캄보디아 사태처럼 전통적 조폭을 뛰어넘는 대형 범죄가 확산되며 피해 규모는 오히려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조직 수는 줄어드는데 범죄는 더 조직적이고 지능화되는 역설이 나타나고 있다. 현장의 형사들은 법이 범죄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폭력조직이 위축된 것처럼 보이는 착시가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전통적으로 조폭을 다루는 법은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이른바 폭처법이다. 이 법은 단체성과 계속성을 엄격히 요구한다. 위계 질서와 역할 분담, 지속적 결속, 반복적 활동, 조직 존속 의사 등을 수사로 입증해야만 폭력조직으로 인정된다. ‘탈퇴 시 보복’과 같은 엄격한 내부 규율, 단체 합숙을 통한 상명하복 체계, 정기적 모임을 통한 결속 강화 등 전통적 조직 형태가 전제된다. 이런 요건을 충족해야만 비로소 법적 의미의 ‘조폭’으로 인정받는다.

    문제는 최근 범죄 구조가 이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온라인 도박, 자금세탁, 마약 유통 등은 사건 단위로 인력이 모였다가 해산하는 ‘프로젝트형’ 성격이 강하다. 특히 텔레그램 등 비대면 플랫폼을 통한 접촉과 지시가 일상화되면서 고정된 조직 틀 없이도 범죄가 가능해졌다. 합숙이나 상시 결속 없이도 범행이 이뤄지는 구조에서는 폭처법상 폭력조직으로 인정받기 쉽지 않다.



    결국 수사기관은 이들을 폭처법으로 묶기보다 사기·도박·마약 등 개별 혐의로 처리하게 된다. 실질적 범죄 네트워크는 존재하지만 법적으로는 조폭 단체로 포착되지 않는 사각지대가 생기는 것이다. 조직은 변형돼 확산되는데 통계상 조직 수는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나는 배경이 여기에 있다는 분석이다.
    ○1020들 "전통 조폭은 돈 안된다"
    이 같은 구조 변화는 조직 내부의 연령 분포에서도 확인된다. 경찰이 관리하는 조폭 인원은 2021년 5197명에서 지난해 5627명으로 430명 늘었다. 그러나 증가의 중심은 청년층이 아니다. 40대 이상 비중은 2021년 57.2%에서 2025년 64.1%로 상승했고, 50대 이상도 같은 기간 16.6%에서 21.9%로 뛰었다. 조직은 유지되지만 구성원은 빠르게 늙어가고 있다는 의미다.

    전통적으로 ‘조폭 후학’을 길러내던 문화도 사실상 사라졌다. 과거처럼 10~20대가 선배 조직원을 따라다니며 자연스럽게 편입되는 구조가 약해졌다는 분석이다. 젊은 층은 지역 기반 폭력조직보다 단기간에 큰돈을 벌 수 있는 해외 범죄조직이나 온라인 기반 범죄에 더 관심을 보인다. 캄보디아 등 해외 거점 조직이 고수익을 미끼로 인력을 끌어들이는 현실도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그 결과 전통 폭력단체로의 신규 유입은 줄고, 기존 조직원만 고령화되는 흐름이 이어졌다. 과거처럼 조직 차원에서 이권에 집단 개입하기보다 개인 단위 활동이 늘어난 것도 특징이다. 조직은 남아 있지만 결속은 약해지고, 외형은 유지되지만 내부 동력은 떨어지는 구조다. 익명의 한 조폭 담당 형사는 “범죄는 온라인과 해외로 확장되면서 폭력조직이라는 개념 자체가 변하고 있다”며 “그렇다고 조폭과 같은 범죄가 줄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조철오 기자 cheol@hankyung.com






    실시간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