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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칼럼] '두쫀쿠' 좀 안 먹어 봤으면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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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칼럼] '두쫀쿠' 좀 안 먹어 봤으면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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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쫀쿠’(두바이 쫀득 쿠키) 먹어 봤어요?”

    요즘 가장 뜨거운 ‘스몰 톡’ 주제 중 하나는 단연 두쫀쿠다. 잘 알려져 있듯 두바이에서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국내 한 제과업체가 피스타치오 스프레드와 카다이프를 섞어 동그랗게 만든 디저트가 순식간에 전국적 유행이 됐다. 애인을 위해 ‘오픈런’을 하고 두 시간을 기다렸다는 사례는 이제 미담 축에도 끼지 못한다. 헌혈의집은 헌혈의 보상으로, 식당은 국밥을 팔기 위한 미끼 상품으로 매일 아침 두쫀쿠를 만든다. SPC, 스타벅스 등 대형 유통사까지 이 거대한 파도에 뒤늦게 뛰어들었다.


    이쯤 되니 단순한 간식이 아니다. 먹어보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어느새 혼자 뒤처진 사람이 되는 기분이다. 관심이 없었든, 단것을 싫어하든 이유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경험’ 자체가 일종의 출석 체크가 됐기 때문이다. 주먹 절반만 한 쿠키 한 알이 1만원에 육박하지만, 그럼에도 ‘없어서’ 못 파는 기현상이 이어진다.

    이런 장면이 딱히 낯선 광경도 아니다. 한때는 ‘대만 카스텔라’와 ‘허니버터칩’이 있었고, 그 뒤론 ‘탕후루’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대상은 바뀌었지만 구조와 서사는 반복된다. SNS가 머지않아 잠잠해지고, 유행의 끝물에 올라탄 자영업자들이 피해를 봤다는 뉴스가 조만간 도배될 것이라는 점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또다시 줄을 선다. 한국인은 대체 왜 이토록 유행에 성실할까.


    그 기저에는 개인의 불안이 자리한다. 좋아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면 뒤처질 것 같아서 산다. 주식 시장 용어인 FOMO(fear of missing out)는 취향의 시장에서도 유효하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유행 참여는 집단에서 ‘탈락’하지 않기 위한 생존 감각에 가깝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현상이 개인주의 확산과 함께 나타난다는 점이다. 혼밥과 혼술이 일상화되고, 회식 자리의 떼창보다 독방에서 홀로 즐기는 코노(코인노래방)가 더 친숙한 세대가 소비 시장의 주류로 떠올랐다. 개인은 점점 혼자가 되는데, 취향만큼은 집단을 벗어나지 못한다. 수많은 알고리즘과 인플루언서의 ‘보증’ 속에서 취향은 어느새 발견되는 대신 ‘복제’된다. 최근 국내외 연구들도 SNS 사용 강도가 높을수록 타인의 선택을 기준으로 삼는 이른바 ‘동조 소비’가 강화된다는 결론을 내놨다. 인터넷 보급률과 인구 밀도가 높은 한국 사회 특성상 이런 ‘동조’의 압력이 높은 건 필연일지도 모른다.



    흥미로운 점은 해외에서 이런 흐름에 대한 반작용도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북유럽 국가들에서 종종 보이는 ‘슬로(slow) 트렌드 소비’가 대표적이다. 유행에 곧장 올라타는 것을 결코 성숙한 선택으로 보지 않는 관점이다. 오히려 트렌드가 한 차례 지나간 뒤 충분히 지켜보고 소비하는 태도를 훨씬 합리적인 행동으로 평가한다. 유행을 선점하는 속도보다 자신만의 안목으로 가치를 걸러내는 ‘축적의 시간’을 더 우위에 두는 셈이다. 실리콘밸리의 ‘테크 보이’들이 매일 같은 티셔츠에 운동화 차림을 하고 다니는 것도 개성을 포기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끊임없이 취향을 증명해야 하는 사회적 부담에서 벗어나 ‘나답게’ 살기 위한 장치에 가깝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는 사람일수록 유행이라는 파도에 몸을 실을 가능성이 높다. 취향은 판단의 축적이고, 그 과정에는 시간과 안정감이 필요하다. 여유가 없는 상태에서 자신만의 방향성이 만들어지긴 어렵다. 불안이 대신 이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만의 취향을 말하는 일은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하다. 그것은 남들과 같지 않아도 괜찮다는 감각을 회복하는 일이자,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내 주권을 찾아오는 일이다.


    “아름다운 것들은 관심을 바라지 않는다”(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명대사를 곱씹어 본다. 꼭 줄을 서지 않아도,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선택들이 있다. 타인이 보고 있는 인스타 화면에 올라가지 않아도 그 자체로 충분히 즐겁고 가치 있는 것들 말이다. 취향은 결국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당당하게 ‘선택하지 않을 자유’의 문제다. 그러니 조금은 더 당당하게 말해도 된다. ‘그놈의’ 두쫀쿠, 좀 안 먹어봤으면 어떠냐고. 그 시간에 투박한 단팥빵이 있는 허름한 동네 빵집으로 향할 거라고. 그곳에 내가 진짜 사랑하는, 소란스럽지 않은 나의 취향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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