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60대 남성 A씨가 안락사를 목적으로 스위스로 출국하려다 비행기 이륙이 늦춰지고 가족 설득으로 제지된 사건이 파장을 일으켰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 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과, 생명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안락사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초고령사회인 한국에서 해를 거듭할수록 안락사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뜨거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 안락사 위해 스위스 가려다 막힌 60대
지난 9일 인천국제공항경찰단에는 "아버지가 안락사를 목적으로 출국하려고 한다"는 112 신고가 접수됐다. 폐섬유증 진단을 받은 A씨는 10일 12시 5분 프랑스 파리행 항공기에 탑승할 예정이었다. 경찰은 A씨 가족이 '미안하다'는 말이 담긴 유서 형식의 A씨 편지를 발견했다고 알려오자 파리행 항공기 이륙을 늦췄다.경찰은 A씨를 항공기에서 내리도록 한 뒤 장시간 설득 끝에 그를 가족에 인계했다. A씨는 파리를 거쳐 외국인에게도 '조력 자살'이 허용되는 스위스로 가려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스위스에서는 의사가 환자에게 약물을 직접 투입하는 방식의 안락사는 불법이지만, 의사의 도움을 받아 환자가 스스로 약물을 투여하는 형태의 안락사인 조력 자살은 허용된다.
지난해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은중과 상연'에서는 말기 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주인공이 안락사를 위해 스위스로 향하는 이야기가 다뤄지면서 국내에서도 안락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누리꾼들은 갑론을박을 벌였다. 안락사를 지지하는 이들은 "스위스행을 막은 게 자랑인 줄 아냐. 저 환자는 죽을 때까지 엄청난 고통을 겪을 것이고 병원 배만 불리는 일이다", "다 늙어 기저귀 차면서 타인에게 의지해 생을 연장하는 게 당사자에겐 무슨 의미가 있냐. 자신이 좋은 모습으로 가고 싶다는 데 왜 안락사가 안 되는지 이해가 안 된다" 등 반응을 내놨다.
반면 일각에서는 "작별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가족들의 심정은 이해가 간다", "유언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지셨는데 가족 입장에서 서운한 건 당연한 것 아니냐" 등 반박도 나왔다.
◇ 늘어나는 안락사 찬성론
안락사 허용 여부를 두고서는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다수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연구팀이 2021년 실시한 연구 조사에 따르면 안락사 및 의사조력 자살 입법화에 대한 찬성 여론은 76.3%였다. 이는 50% 수준에 불과했던 2008년과 2016년 조사와 비교해 1.5배 상승한 수준이다.찬성론의 이유는 '남은 삶의 무의미'(30.8%), '좋은(존엄한) 죽음에 대한 권리'(26.0%), '고통의 경감'(20.6%), '가족 고통과 부담'(14.8%) 등 순이었다.
반대하는 이들은 '생명 존중'(44.3%), '자기결정권 침해'(15.6%), '악용과 남용의 위험'(13.1%) 등 순으로 지적했다.
현행 연명의료결정법은 환자와 보호자의 선택으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멈출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이를 넘어선 약물 처방과 투약은 허용하지 않는다. 이에 유일하게 외국인에게 조력사망을 허용하는 스위스행을 택한 이들도 동행인을 두고 마지막까지 고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력사망 과정에 단순히 동행한 것만으로 자살방조죄로 처벌받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 법조계의 대체적인 판단이다. 실제로 동행인이 기소돼 처벌된 사례는 현재까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처벌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함께 제기된다. 구체적인 상황과 행위 정도에 따라 법적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 2050년이면 노인이 40%
존엄사 관련 입법을 촉구하는 집단 행동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존엄사협회는 지난해 11월 1일 '세계 죽을 권리의 날'을 맞아 조력 존엄사 관련 입법 촉구 걷기대회를 연 바 있다.한국은 초고령사회(국민 5명 중 1명이 노인)에 진입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고령화 속도가 1위에 해당한다. 2050년이면 국민 40%가 노인이 될 수 있다는 전망에 따라 존엄사에 대한 사회적 요구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된다. 고령자가 많을수록 암, 치매 등으로 장기 입원하는 사례가 늘 수 있고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서 연명치료만 남아 죽음의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 남은 숙제인 경우가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장기 요양 및 중환자의 경우 치료 비용 부담도 심각한 문제다. 한국의 66세 이상 노인의 소득 빈곤율은 40%에 육박해 OECD 평균의 약 3배에 달하는 부동의 1위다. 과거 '가족 돌봄' 중심 사회에서 1인 가구 증가, 자녀 감소, 돌봄 인력 부족 등으로 돌봄 자체가 불가능한 현실도 있다.
◇ 의료윤리학계는 반발
다만 반론도 있다. 이러한 현실 때문에 존엄사를 허용하게 되면, 존엄사가 선택이 아니라 압력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초고령사회인 이웃국 일본에서도 안락사는 불법이다.의료윤리학계에서는 안락사에 대한 반대 입장이 꾸준히 나온다.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현 국방부 장관)이 2024년 연명의료결정법을 대표 발의하자 의료윤리연구회는 "의료윤리를 훼손하고, 국민의 존엄한 삶을 위협한다"고 반발했다. 당시 안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는 회복 불가능한 환자가 자신의 의사에 따라 담당의사의 도움으로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들은 지난해 11월에도 심포지엄을 열고 네덜란드와 캐나다 등 해외에서는 엄격한 제도 설계에도 불구하고 도입 이후 중증 치매환자나 소아, 정신질환자까지 적용 범위가 확대되는 부정적 결과가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고통 완화를 위한 제도적 보완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취약계층을 죽음으로 내모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놨다.
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greaterf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