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선령 5년 기준 중고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가격은 최근 1억2400만달러(약 1828억원)로 1년 전보다 8.6% 올랐다. 반면 같은 등급의 신조선 가격은 같은 기간 2.4% 하락한 1억2850만달러(약 1894억원) 수준으로, 중고와의 격차가 거의 사라졌다.
1만5000TEU(1TEU=20피트 컨테이너 1개)급 컨테이너선도 중고선가가 오르고 신조선가는 내리면서 중고 가격이 신조의 86%까지 올라왔다. 케이프사이즈 벌크선 역시 중고선가가 6700만달러(약 987억원)로 상승해 신조선가(7500만달러·약 1105억원)와의 차이가 10%로 좁혀졌다. 국내 조선사 관계자는 “3대 선종의 신조선가 대비 중고선가 비율이 최근 5년 평균 80%라는 점을 감안하면, 현재는 모두 예외적으로 높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중고선가는 보통 단기 해상 운임 전망이 개선될 때 먼저 반응한다. 중고 선박 가격은 운임으로 벌어들일 미래 현금흐름의 현재가치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신조선을 발주하면 인도까지 3~4년이 걸리지만, 중고선은 매입 즉시 투입할 수 있어 단기 시황이 좋을 땐 중고 가격이 새 배와 비슷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단기 업황에 확신이 있는 선주일수록 지금 당장 쓸 수 있는 선박에 프리미엄을 얹어 사는 구조다. 발틱익스체인지가 집계하는 사우디아라비아 라스타누라~중국 닝보 노선의 원유운반선 운임지수(WS)는 1년 전 WS47에서 이달 WS112로 두 배 이상 뛰었다.
중고선가 강세가 지속되면 신조선가도 동반 상승할 수밖에 없다. 선주들은 신조선을 주문할 때 ‘인도 후 중고로 되팔면 얼마를 회수할 수 있나’를 전제로 투자수익률을 계산한다. 중고선가가 오르면 신조선의 잔존가치가 높아지고, 같은 운임 가정하에서도 선주가 수용 가능한 신조선가 수준이 올라간다.
이런 흐름은 HD한국조선해양·한화오션·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 3사에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고선가가 높을수록 신조선가 인상에 대한 선주의 심리적 저항이 약해지고, 조선소가 가격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쉬워서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지금처럼 건조 슬롯이 향후 3년치 일감으로 꽉 찬 상황에선 조선사들이 가격을 낮춰가며 수주할 이유가 없다”며 “여기에 중고가까지 오르면 ‘지금 계약하지 않으면 더 비싸진다’는 심리도 붙는다”고 말했다.
김진원 기자 jin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