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오천피(코스피지수 5000)’ 시대입니다. 코스피는 병오년 한 달여 만에 30% 넘게 뛰어 5500선을 돌파했습니다. 기나긴 설 연휴를 앞두고 한경닷컴은 증권가 족집게 전문가들에게 5편에 걸쳐 가파르게 오른 K증시의 현재 상황 진단과 향후 대응전략을 물어봤습니다. [편집자주]
“미국 경기의 이상 징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미국 경기가 둔화로 반도체 시황이 급변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합니다. 인공지능(AI)에 대한 투자도 반도체 섹터에만 바라보지 말고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습니다.”서상영 미래에셋증권 상무는 한국 주식시장의 랠리가 이어지고 있는 최근 한경닷컴과 만나 이 같이 평가했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주식시장을 냉정하게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코스피, 저렴한 수준은 아냐…반도체 업황 급변 가능성 대비해야”
우선 코스피가 저렴하지는 않은 수준이라고 서 상무는 지적했다. 그는 “현재 코스피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이 장기적인 평균을 살짝 웃도는 수준까지 올라왔다”며 “크게 우려할 수준은 아니지만, 반도체 업황이 급변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조심할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코스피는 지난 12일 장중 5500선을 돌파할 정도로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작년 4월9일의 저점(2293.70)과 비교하면 10개월여만에 2.5배 가까이 치솟았다. 메모리반도체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시가총액 1·2위 종목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 추정치도 크게 상향됐고, 이에 따라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은 크게 부담스럽지 않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서 상무는 “주가가 여기서 더 상승하려면 D램 반도체 가격이 계속 올라가 줘야 하지만, 높아진 반도체 가격으로 인해 정보기술(IT) 하드웨어 업체들의 실적이 부진해지면 반도체 업황이 빠르게 변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 소비·고용 세부사항 뜯어보면 둔화 징후 뚜렷”
메모리반도체 가격 급등으로 인한 IT 하드웨어 업체의 비용 상승을 걱정하기 전에, IT 기기에 대한 수요 기반도 취약해졌다고도 서 상무는 지적했다. 아직까지 탄탄해 보이는 미국 경기지표도 세부사항까지 뜯어보면 우려할 만한 지점이 많다는 것이다. 서 상무는 우선 뉴욕 연방준비은행이 발표한 신용보고서의 연체율 지표를 첫 번째 이상징후로 지목했다. 전체적인 연체율은 4.8%에 그쳤지만, 저소득층만 떼어 놓고 사상 최고치라고 전했다.특히 미국의 ‘선구매 후지불 서비스’(BNPL·Buy Now Pay Later) 이용 현황을 두고 서 상무는 크게 우려했다. 그는 “당장 돈이 없는 저소득층이 1만~2만원짜리 음식료품까지 할부로 구매하고 있다”며 “BNPL 서비스의 경우 처음엔 무이자로 할부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연체 시 엄청난 연체이자를 물린다”고 설명했다.
저소득층이 카드대금을 갚기 위해선 일해야 하지만, 미국의 일자리 사정도 발표되는 지표와는 달리 녹록지 않은 상황이라고 서 상무는 분석했다. 그는 “미국의 실질적인 실업률은 6%를 넘은 것으로 본다”며 “취업 포기 등으로 경제활동인구가 줄어든 탓에 발표되는 실업률이 높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미국의 장기 실업자 수는 185만~193만명 정도로 경기침체기보다 많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지갑 사정이 어려워진 저소득층, 특히 젊은층을 중심으로 투기적인 금융상품 거래도 늘어나고 있다는 점도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꼽혔다. 서 상무는 “최근 미국 파생상품 시장에서의 거래가 급증하고 있다”며 “특히 만기가 하루짜리인 제로데이옵션 등 초단기 상품들의 거래 비중이 40%에 달한다”고 전했다. 옵션과 같이 레버리지가 큰 파생상품의 경우 기초자산의 가격이 일시적인 출렁임에도 큰 변동성을 일으킬 수 있다.
자산 가격 상승에 따른 양극화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저소득층의 큰 레버리지를 동원한 투자, 과도한 할부금융 서비스 등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일으킨 요인으로도 꼽힌다. 당시의 투자 대상은 부동산이었고, 문제가 된 할부금융서비스는 결제대금이월약정(리볼빙)이었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
다만 현재의 상황이 시스템 위기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서 상무는 내다봤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은행에 대한 규제가 강화됐고, 이로 인해 은행의 재무 건전성이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보다는 훨씬 건전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반도체는 AI의 일부분…생산성 혁신 나올 업종 찾아야”
주식 시장에서 수익을 낼 기회도 남아 있다고 서 상무는 진단했다. 특히 반도체 관련 종목들의 주가가 치솟은 뒤 잊을 만하면 ‘AI 버블론’이 제기되는 데 대해 “'AI 버블’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지금 당장은 AI 산업 확장이 인프라 구축을 위한 반도체 호황의 모습으로 나타났지만, AI를 활용한 혁신의 과실은 훨씬 더 광범위한 산업군에서 나타나게 된다는 말이다. 주식시장에서의 나타날 투자 기회도 지금까지 반도체 관련 종목들에서 나타난 것보다 훨씬 클 수 있다고 서 상무는 내다봤다.
이미 한국의 설 연휴가 시작되기 전, AI를 활용한 생산성 혁신 가능성이 미국 주식시장을 흔들기도 했다. 기업용 AI 강자로 꼽히는 앤스로픽이 ‘클로드 코위크’라는 AI 도구를 내놓은 뒤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주가가 폭락했고, 금융 AI 스타트업 알트루이스트가 AI 기반의 세금 감면 도구를 출시하자 금융주가 일제히 급락했다. AI가 일으킬 ‘파괴적 혁신’의 대상이 될 것이란 우려가 관련 종목들의 투자심리를 악화시킨 것이다.
파괴적 혁신의 대상으로 도태되지 않고, AI로 생산성을 혁신시켜 살아남는 기업을 가려낼 수 있다면 주식투자로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서 상무는 조언한다. 그런 기업이 많이 나올 업종으로는 소프트웨어, 헬스케어, 산업재를 꼽았다.
헬스케어 업종의 경우 AI를 활용해 신약 개발의 속도를 올릴 가능성이 기대됐다. 서 상무는 “신약 개발 과정에서 임상 개발 단계 진입 전 가장 긴 시간이 소요되는 게 물질을 찾아내는 과정”이라며 “수많은 화학물질 조합을 하나하나 계산해 물질을 도출하는 일을 사람이 하면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리기도 했지만, AI는 며칠 만에 완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산업재 업종에서 AI로 생산성 혁신을 일으킨 성공 사례로 서 상무는 세계 최대 농기계 업체인 존디어를 제시했다. 농기계가 잡초를 인식해 레이저로 태우거나, 수확물의 색깔과 크기를 분석해 품질 분류를 해주는 제품을 이미 판매하고 있다고 한다.
서 상무는 “모든 산업에서 생산성 향상이 나타나고 그것이 국가 경쟁력 향상으로 이어진다는 청사진이 그려질 때가 ‘AI 버블’의 시작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경우 한경닷컴 기자 ca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