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이 국민 건강 증진과 공공의료 재원 확보를 명분으로 가당 음료 등에 부담금을 부과하는 이른바 ‘설탕세’ 도입을 본격화하고 있다. ‘세금’이 아닌 ‘부담금’ 형태의 우회로를 통해 조세 저항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구상이다.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 간사인 정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2일 국회도서관에서 ‘설탕 과다사용부담금 국회 토론회’를 열고 입법 필요성을 강조했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SNS를 통해 “설탕부담금으로 지역·공공의료에 재투자하자”고 제안한 뒤 열린 토론회여서 정책 추진에 힘이 실리는 모양새다.
정 의원은 “우리나라 청소년 3명 중 1명이 세계보건기구(WHO) 권고치 이상의 당류를 섭취하는 ‘당류 공화국’에 살고 있다”며 “과도한 당 섭취로 인한 비만과 만성질환은 건강보험 재정에 막대한 부담을 주는 만큼 공적 개입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이날 발제에 나선 김명자 KAIST 이사장은 뇌과학적 관점을 제시하며 “설탕은 도파민 시스템을 자극해 습관성 소비를 유도하므로 개인의 선택에만 맡길 수 없는 건강 위협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설탕부담금 도입은 정치성향을 가리지 않고 필요하다는데 공감하는 의견이 높았다. 서울대 건강문화사업단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0.1%가 제도 도입에 찬성했다. 윤영호 서울대 의대 교수는 “보수 성향 응답자 중에서도 70% 이상이 찬성하는 등 진보와 보수 간 입장 차이가 거의 없었다”며 “이념을 넘어선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정치권은 ‘세금’이라는 표현 대신 ‘부담금’이라는 용어를 선택해 증세 논란을 피해가려 하고 있다. 이진수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법적 성격은 ‘부담금’에 해당하며, 명칭 역시 ‘당류과다사용부담금’이 적절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하지만 식품업계와 소비자 단체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원가 상승 압박을 받는 식품 대기업들이 부담금을 제품 가격에 반영하면 결국 서민 물가 부담으로 전가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이 제도가 세수 확대 수단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가격 변동에 대한 상시 모니터링이 선행돼야 한다”고 했다.
확보된 재원의 ‘꼬리표’를 어디에 달 것인가도 쟁점이다. 청와대와 보건복지부에서는 ‘공공의료 강화’를 주장하는 반면,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청소년 건강 증진을 명분으로 ‘교육세 전환’이나 ‘급식 질 향상’ 등 교육 예산 편입을 요구하고 있다. 김영호 국회 교육위원장은 “설탕부담금으로 확보된 재원은 미래세대 복지에 쓰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학교 급식 질 향상, 청소년 정신 건강 지원 등 사업을 언급했다.
최형창 기자 ca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