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2월 12일 14:46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SK하이닉스가 채권시장에 1조원 규모의 자금을 집행했다. 국내 대기업이 ‘조단위’ 규모의 자금을 채권시장에 집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해당 자금은 특히 1년 만기 여신전문금융회사채(여전채) 시장에 흘러들어 금리 안정 효과를 낼 전망이다.
12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1조원 규모의 자금을 증권사 채권형 랩어카운트 및 특정금전신탁(랩·신탁) 등에 투자하는 형태로 집행했다. 해당 자금은 미래에셋증권과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등 증권사별로 나눠 집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의 자금을 받은 증권사들이 1년 만기 여전채를 대거 매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 10일 1년 이하 여전채 금리는 민간채권평가회사 평균금리(민평금리) 대비 아래에서 거래됐다. 한국캐피탈(A) 1년물은 민평 대비 ?13.3bp(1bp=0.01%포인트)에 거래됐고, 신한카드(AA+) 1년물은 ?3.7bp, NH농협캐피탈 6개월물은 ?5.1bp 등으로 거래를 마쳤다.
증권사는 법인과 기관투자가의 자금을 랩어카운트와 특정금전신탁 등을 통해 운용한다. 투자자가 일정 자금을 맡기면 증권사가 운용을 담당해 자산을 배분하는 상품이다. 채권형 랩은 회사채와 여전채, 기업어음(CP) 등을 편입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은 반도체 공장 증설 등 대규모 시설투자가 수시로 발생하기 때문에 필요할 때 즉시 현금화할 수 있는 1년 이하 단기 상품 위주로 운용한다.
최근 채권시장은 기관들의 투자 수요 위축으로 금리 변동성이 높아진 상황이다. 올해 들어 금리 방향성에 대한 불확실성도 커지며 일부 자산운용사와 단기자금 운용사들이 채권 매도에 나서기도 했다. 특히 카드사와 캐피털사 등의 여전채는 수급이 어려워져 자금 조달 비용이 늘어나는 양상도 나타난다.
IB업계 관계자는 “‘조단위’ 대기업 자금이 회사채 시장에 들어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지원군이 등장했다는 사실이 증권가에 전해지면서 단기간에 여전채 금리가 안정화됐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가 1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채권시장에 집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막대한 영업이익에 있다. 인공지능(AI) 메모리(HBM) 수요 증가에 힘입어 지난해 SK하이닉스는 매출 97조1467억원, 영업이익 47조2063억원의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2024년과 비교해 매출은 47%, 영업이익은 101% 증가한 수치다.
실적이 개선되면서 현금 보유량도 늘었다. 2024년 말 14조600억원이던 SK하이닉스의 현금 보유액은 지난해 말 34조9400억원으로 늘었다. 총차입금을 총자산으로 나눈 차입금 비율은 같은 기간 31%에서 18%로 급감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설비투자 등에 12조2580억원을 지출했으나 영업 현금흐름이 개선됐고, 차입금도 1조1510억원 줄었다.
채권시장의 관심은 SK하이닉스가 향후 자금을 추가 집행할지 여부에 쏠리고 있다. 약 34조원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채권시장에 대규모 자금이 더 유입될 수 있다는 기대가 시장에 감돈다. 한 대형 증권사의 채권 운용담당자는 “증시 쏠림으로 자금이 빠져나가고 있는 채권시장에 SK하이닉스의 여유자금이 계속 유입된다면 단비와 같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