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반도체 소재가 기존 규소(Si·실리콘)에서 화합물(SiC·GaN) 기반으로 바뀌는 것은 에너지 효율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이다. 구상모 산업통상부 차세대전력반도체추진단장(광운대 전자재료공학과 교수·사진)은 이를 ‘비포장도로에서 고속도로로의 전환’에 비유했다.구 단장은 “화합물 반도체는 에너지 장벽인 밴드갭(band-gap)이 실리콘보다 세 배 넓어 고압과 고온을 견디는 힘이 압도적”이라며 “전력 변환 손실을 최대 90%까지 낮출 수 있어 전기차 주행거리를 10% 이상 늘리고 냉각 장치 부피는 10분의 1로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환은 이미 시작됐다. 2018년 테슬라가 모델3에 탄화규소(SiC) 전력반도체를 도입하며 실리콘의 물성적 한계를 넘어선 것이 첫 번째 티핑 포인트였다면, 지금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와 에너지 그리드(전력망)를 중심으로 두 번째 티핑 포인트가 오고 있다는 분석이다.
반도체 강국인 한국은 화합물 전력반도체에서 후발주자다. 한국 반도체 생태계는 소품종 대량 생산인 메모리에 최적화한 구조인 반면 전력반도체는 다품종 소량 생산이며 필요한 공정 기술도 다르기 때문이다. 구 단장은 “메모리 반도체라는 ‘두뇌’에 집중하느라 이를 뛰게 할 ‘심장’인 전력반도체 육성에 소홀했다”고 했다.
한국의 승부처는 ‘8인치(200㎜) 전환을 통한 골든타임 확보’에 있다. 현재 글로벌 시장의 화두인 8인치 웨이퍼는 기존 6인치보다 칩 생산량이 약 1.9배 많아 원가를 30% 이상 낮출 수 있다. 구 단장은 “감가상각이 끝난 기존 8인치 실리콘 팹(Fab) 장비를 SiC 공정에 빠르게 이식해 생산 속도를 높이는 것이 승패를 가를 핵심 열쇠”라며 “중국이 보조금을 앞세워 ‘물량’으로 밀어붙인다면, 우리는 8인치에서도 결함이 없는 ‘고수율 공정 기술’로 초격차를 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 단장은 “에너지를 만드는 것만큼이나 잃어버리지 않고 쓰는 게 중요하다”며 “전력반도체는 단순한 산업재를 넘어 미래 에너지 인프라의 통제권을 결정짓는 국가 안보 자산인 만큼 이번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고 반드시 자립 생태계를 구축해 기술 주권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