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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쿠 성지' 등극하더니…"이젠 월세 주세요" 무슨 일이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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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쿠 성지' 등극하더니…"이젠 월세 주세요" 무슨 일이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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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저 임대 원래 비어있던 곳 아니에요. 있던 사람이 나간 거예요."


    지난 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국제전자센터 8층. 8층에서 10년째 PC 수리 상점을 운영하고 있는 50대 A씨는 매장 맞은편 '임대' 표시가 붙어 있는 빈 사업장을 눈짓하면서 이 같이 말했다. PC 전문 매장인 8층에는 조립 컴퓨터, 프린터기, PC 수리 등 매장뿐만 아니라 가챠(캡슐토이)숍, 애니메이션(애니) 굿즈숍 등이 즐비했다. 유동 인구가 많아 명당으로 꼽히는 에스컬레이터 앞은 애니 굿즈숍이 차지하고 있었다.

    A씨는 "(원래 애니 굿즈숍이 들어왔던) 9층이 포화 상태가 되면서 컴퓨터 전문 매장 층인 6, 7, 8층 그 아래까지 다 애니 굿즈숍이 들어왔다. 결국 이도 저도 아닌 매장 층이 됐다. 손님이 컴퓨터 AS 할 수 있는 곳인가 해서 찾아와도 이런 매장들 보고 돌아갈 것 아니냐. 나는 반갑지 않다"고 토로했다.
    "관리비만 냈는데 이젠 월세까지"…전자상가 포기하는 상인들



    국제전자센터에서 전자기기 상점을 운영했던 임차인들이 매장 운영을 포기하고 나가고 있다. 국제전자센터가 1020 사이에서 '오타쿠 투어 성지'로 떠오르면서 애니메이션 관련 매장이 건물 공실 전반을 채운 영향이다. 층별 업종 구분이 뚜렷했던 국제전자센터는 지난해부터 4층을 제외하고 2층부터 9층까지 층별마다 애니 관련 매장이 들어섰다.

    매장 임대료도 올랐다. 지난 2024년까지만 해도 관리비만 냈던 상인들은 현재 월세 60~70만원을 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애니 굿즈 사업자들이 국제전자센터에 들어오기 위해 월세 지급 경쟁을 치르고 있어서다. 국제전자센터에서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운영하는 도모(67)씨는 "굿즈 하시는 분들이 너무 경쟁한다"며 "관리비만 냈던 곳들도 지금 60만원, 70만원 줄게요 하면서 들어오려고 한다"고 전했다.



    이후 국제전자센터에서 관리비만 받았던 임대인들도 전자 상점 상인들에게 월세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A씨는 "전문 매장 특성이 층별마다 지워졌는데 임대료까지 올랐다"며 "상권은 어지러워졌지 임대료는 올랐지 원래 있던 사장님들이 그 정도까지 내고 있고 싶지 않다면서 나간다. 지금 보이는 공실은 모두 원래 있던 사람들이 나간 장소"라고 이야기했다.
    공실률 회복했으나…젠트리피케이션과 '비슷한' 메커니즘


    현재 국제전자센터에서 보이는 현상은 지역적 차원에서 일어나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둥지 내몰림)'과 유사하다. 젠트리피케이션에서 볼 수 있는 '저렴한 임대료 → 예술·문화·콘텐츠 관련 업종 유입 → 지역 특성 재정의 →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기 → 임대료 상승 → 기존 상인 퇴거 → 임대료 폭증' 사이클과 비슷한 흐름을 따라가고 있다.


    국제전자센터는 IMF 외환위기 이후 공실률이 급격히 늘었다. 2008년에는 재건축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지역 부동산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국제전자센터 공실률은 팬데믹 이후에도 30% 이상을 유지했다. 상가 3곳 중 1곳 이상이 비어있던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애니 굿즈 관련 상점이 들어오면서 공실률 약 0%를 달성했다.

    공인중개사 도씨는 "공실을 막았다는 측면에서는 대성공"이라며 "30년 동안 여기에 있었지만 예전에는 관리비만 내고 사용하라고 해도 아무도 안 왔다. 9층에 애니 매장이 채워지고 나서도 층별마다 입점 브레이크를 거니까 공실이 안 채워졌다"고 시사했다. 층별 업종 구분을 없앤 것이 건물 공실률을 줄이고 활성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의미다.


    반대로 층별 업종 구분이 뚜렷한 서울 광진구 구의동의 테크노마트 강변점은 공실인 곳이 많았다. 9일 오전 10시경 테크노마트 강변점 지하 1층은 부지 절반이 공실이었다. 빈 공간이 많아 전등을 꺼놓았을 정도다. 테크노마트 강변점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50대 B씨는 "우리도 업종을 풀자는 이야기가 나온다. 특히 식당가 업종 구분을 풀어 프랜차이즈를 입점시키자는 얘기를 하고 있다"며 "25년 전에 묶어 놓은 걸 아직도 적용하는 건 말이 안 된다. 다 잘되려면 업종 구분을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가관리단 내에서 관리규약을 변경하거나 정할 경우 층별 업종 구분 무력화는 법적으로도 문제없다.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집합건물법) 제42조는 관리규약의 요건과 효력을 규정하고 있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상가건물은 관리규약을 통해 업종을 제한하는 취지의 규정을 둘 수 있고 관리규약을 우선한다는 것이 대법 판례"라며 "상인회 등이 합의를 통해 관리규약을 바꾸면 문제없다. 국제전자센터의 경우도 별문제가 없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건물 생태계 변화 귀한 자원…○○단길처럼 되면 안 돼"

    전문가는 공실률이 높았던 전자상가가 새롭게 재정의되고 활력을 얻는 건 긍정적이라면서 지금이 '상생'을 통해 건물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만들 수 있는 적기라고 강조했다.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국제전자센터 사례는 넓은 의미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하는 원리랑 비슷하다. ○○단길 같은 사례를 보면 유행이 지나가면 한번 폭삭 주저앉는 경우가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손 놓고 두면 원래 있던 상인, 새롭게 들어온 상인 모두 다 나가게 된다"고 피력했다.

    이어 마 교수는 "단일 건물 차원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굉장히 귀한 자원"이라며 "지역 내 역사를 다른 방식으로 재해석하고 이어간다는 점에서 살릴 수 있는 노력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지역에서 일어나는 젠트리피케이션처럼 한번 확 떴다 무너지지 않도록 이해관계자뿐만 아니라 지자체 차원에서도 관심을 기울이고 더욱 활성화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상생 방법으로 마 교수는 "규제가 아닌 임차인, 건물주 등 이해관계자들끼리 합의에 기반한 활성화의 노력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함께 네트워킹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거나 기존 건물에서 생태계를 유지해왔던 상인들이 쫓겨나지 않을 수 있도록 합의해야 한다. 특정 이해관계가 아닌 건물 전체 생태계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제안했다.

    실제로 ○○단길 열풍의 시작점인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 위치한 '경리단길'은 젠트리피케이션으로 형성된 상권이었으나 임대료가 고공행진 하면서 폐업하는 식당이 줄을 이었다. 경리단길 공실률은 팬데믹이 오기도 전인 지난 2019년 당시 26.5%를 찍어 서울 지역 1위를 달성하기도 했다.

    박수빈 한경닷컴 기자 waterbe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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