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룬 기쁨도 잠시, 많은 이들이 곧바로 현실적인 고민에 빠진다. 바로 인테리어다. "평당 300만 원은 기본이다", "창호만 바꿔도 수천만 원이다" 하는 견적서 앞에서 누구나 멈칫한다. 어렵게 마련한 집에 입주하기 전, 소위 올수리를 위해 수천만 원, 많게는 억 단위의 예산을 배정하는 것이 하나의 통과의례가 되었다.
공간 비즈니스를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으로서, 냉정하게 묻곤 한다. "그 1억 원의 공사비, 나중에 온전히 돌려받을 수 있습니까?"
경제적 관점에서 주거 공간에 투입된 과도한 마감 공사비는 회수하기 어려운 매몰 비용(Sunk Cost)에 가깝다. 최고급 타일로 욕실을 마감하고 거실 벽에 값비싼 아트월을 시공해도, 몇년 뒤 집을 팔 때 그 비용만큼 집값을 더 인정받기는 어렵다. 다음 매수자는 내 취향이 아니라며 공들인 마감재를 철거하고 다시 공사를 시작할지도 모른다.

친한 건축가 친구는 늘 현장에서 마주하는 예산의 불균형에 대해 깊은 아쉬움을 토로하곤 했다. 좋은 집이 완성되려면 [땅 ? 건물 ? 인테리어 ? 가구] 네 가지 요소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한국 부동산 시장 구조상, 건축주들은 땅을 매입하는 데 전체 예산의 대부분을 소진한다. 건물을 올리는 건축비에 남은 자금을 맞추다 보니, 공간 내부를 완성하는 단계에서는 예산 절벽을 마주한다.
"최선을 다해 공간을 설계하고 지었지. 예산이 부족하니까 마지막에 공간의 결과 맞지 않는 가구를 급하게 채워 넣더라고. 우리가 공들여 만든 공간의 미학이 100% 발휘되지 못하고 멈추는 느낌이야."
건축가나 인테리어 디자이너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하드웨어인 건물은 훌륭하게 완성되었으나, 그곳에 놓이는 소프트웨어인 가구가 받쳐주지 못해 공간의 잠재력이 만개하지 못한 것이다. 무엇보다 그곳에서 매일 생활해야 하는 거주자의 삶의 질이, 공들여 지은 공간의 수준만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최근 하이엔드 시장의 흐름은 바뀌고 있다. 건축 설계나 인테리어 기획 단계부터 가구 예산을 별도로 확보하고 논의를 시작하는 올인원(All-in-one) 방식이다. 건물을 다 짓고 나서 남는 돈으로 가구를 사자는 식의 접근이 아니다. 초기 단계부터 "이 거실의 뷰를 완성하려면 어떤 라운지체어가 필요한가", "이 공간의 톤앤매너에는 어떤 조명이 어울리는가"를 건축가, 인테리어 디자이너와 함께 고민하고 전체 예산을 균형 있게 배분한다.
필자 역시 현장에서 이러한 협업을 돕고 있다. 건축가가 빚어놓은 아름다운 공간과 클라이언트의 취향을 고려한 최적의 가구를 제안함으로써, 공간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마침표를 찍는다.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 아니라, 완벽한 공간을 위해 각 분야 전문가들이 시너지를 내는 과정이다.

사람들에게 인테리어 마감에 과도한 힘을 쏟기보다 잘 정돈된 바탕을 만드는 데 집중하자고 제안하는 이유다. 집은 상업 공간과 다르다. 대중의 시선을 끌기 위한 과감한 장식보다는, 거주자의 삶을 편안하게 담아내는 배경이 되어야 한다. 벽과 바닥은 유행을 타지 않게 깔끔히 정리하고, 아껴둔 예산으로 이동 가능한 자산(Movable Assets)인 가구와 조명에 투자하는 것이 현명하다.
2,000만 원을 들여 벽을 꾸몄다면 그 돈은 집에 귀속된다. 이사 갈 때 뜯어갈 수 없다. 그 돈으로 명작이라 불리는 라운지체어나 조명을 샀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이 물건들은 내가 이사를 가도, 심지어 해외로 떠나도 가져갈 수 있다. 좋은 의자 하나는 낯선 공간에 가져다 놓아도 그곳을 순식간에 나만의 공간으로 바꿔주는 힘이 있다.

대부분의 자동차나 가전제품은 구매 순간부터 가격이 떨어진다. 반면 오리지널 디자인 가구는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가 오르는 경우도 많다. 10년, 20년 손때가 묻은 가구는 빈티지라는 이름으로 구매가보다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기도 한다.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자산을 지키고 불리는 투자다.
물론 무조건 비싼 브랜드의 가구를 사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핵심은 가격표가 아니라 안목이다. 나와 내 공간에 진정으로 어울리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것을 알아보는 눈을 키우는 과정이 중요하다. 나의 취향을 다듬고 안목을 높이는 데 들이는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 꽤 괜찮은 투자다.

과거에는 몇 평에 사느냐가 부의 척도였다. 이제는 다르다. 똑같은 아파트 구조라도 그 안을 무엇으로 채웠느냐에 따라 삶의 질과 공간의 품격은 천지 차이가 된다.
인테리어 견적서의 숫자에만 매몰되지 말자. 과도한 치장보다는 기본에 충실한 마감을 택하고, 남는 예산으로 삶을 지탱해 줄 좋은 가구를 고르는 안목이 필요하다. 화려한 마감재는 이사 갈 때 그 집에 두고 가야 하지만, 당신의 취향이 담긴 가구는 끝까지 당신과 함께 움직인다. 사라질 공사비 대신 내 곁에 남을 자산에 투자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공간 자본의 시작이다.
박래원 보블릭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