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성학에서 소리의 표정을 결정짓는 건 결국 '거리'의 문제다. 으뜸음에서 출발해 온음 두 개를 온전히 거쳐야 닿을 수 있는 음, 바로 3번째 음이 그 중요성을 담당하고 있다. 건반 위를 들여다보면 이 거리는 더욱 명확해진다. 으뜸음을 '도'라고 가정할 때 ‘도’에서 ‘레’ 사이, 그리고 '레'에서 '미' 사이. 각각 검은 건반 하나씩을 품고 있는 이 구간은 반음이 총 4개나 쌓여야 완성되는 아주 넉넉하고 풍성한 간격이다. 우리는 반음이 4개 쌓인 이 물리적인 거리를 '장3도(Major 3rd)'라 부른다.
이 '장3도'가 확보되는 순간, 모호했던 소리의 파동은 비로소 '장조(Major)'라는 분명한 정체성을 갖게 된다. 장 3도의 넓은 보폭은 소리에 화사한 햇살을 드리운다. 으뜸음이 소리의 중심을 잡고, 5도가 뼈대를 세우는 존재라면, 장 3도는 그 뼈대 위에 화사한 색채를 입히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즉, 이 넉넉한 3도가 있어야만 화음은 비로소 밝아지고, 풍성해지며, '메이저'다운 뚜렷한 성격을 띠게 된다.
미식에서도 재료 세가지의 조합이 서로 합을 이루어 풍성함을 이루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바로 ‘삼합(三合)’이라는 미식의 화음이다. 결정적인 ‘3도’를 더해 미각을 ‘장조’로 이끄는 맛있는 조합을 세 곳을 소개한다.
장흥삼합 : 흙내음이 완성한 육지와 바다의 결합

전라남도 장흥의 대표 미식인 ‘장흥삼합’은 장3도의 구성요소와 완벽히 일치한다. 바로 ‘한우, 키조개 관자, 표고버섯’으로 말이다. 득량만의 청정 바다, 탐진강의 비옥한 들판, 그리고 천관산의 깊은 숲이 한 불판 위에서 만나는 '장흥이라는 테루아(Terroir)’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장흥은 예로부터 '사람보다 소가 많은 고장'이다. 따뜻한 기후와 비옥한 초지에서 자란 장흥 한우는 육질이 부드럽고 마블링이 뛰어나기로 이름나있다. 묵직한 베이스를 담당하는 장흥 한우에 득량만 청정 해역에서 자란 키조개는 달큰한 감칠맛과 부드러움으로 한우의 기름진 맛을 감싸준다. 여기에 장흥의 참나무 숲에서 해풍과 이슬을 맞고 자란 표고가 쫄깃한 식감과 깊은 숲의 향을 더해 우아한 색채를 입히면서 장3도를 이루게 된다.
달궈진 불판 위에서 소위 말하는 ‘마블링’ 이 끝내주는 한우가 챠르르 익어간다. 누가 뭐래도 맛의 중심을 잡는 묵직한 ‘1도(으뜸음)’다. 그 옆에 짭조름한 바다의 맛 키조개 관자라는 온음이 기름짐 위에 해산물 감칠맛을 안정적으로 쌓는다. 위에 또다른 온음 ‘표고버섯’이 정점을 찍을 차례다. 장흥의 이슬을 먹고 자란 표고버섯이 불판에 올라오는 순간, 표고 특유의 흙내음과 향긋한 풍미는 고기와 해산물 사이를 안정적으로 붙들어 맨다. 입안에서 세 가지 재료가 섞이며 이들은 ‘장조’의 화사한 맛을 완성한다.
제주삼합: 훈연과 당도 깊은 산미가 빚은 장조

제주 서귀포 JW 메리어트 호텔의 ‘더 플라잉 호그(The Flying Fog)’는 가장 태초의 조리법인 ‘불’을 메인 컨셉으로 불이 가진 역사와 힘을 제주의 식재료에 덧입힌다. ‘빵’이라는 가장 기초적인 식재료를 삼합의 관점에서 재해석한 것이다. 메인 메뉴보다 돋보이는 식전 메뉴, 김우철 셰프의 빵, 버터, 귤 조합이 장3도 삼합의 주인공이다.
더 플라잉 호그의 빵은 순수한 밀과 소금만으로 반죽해 매일 구워내는데, 테이블에 나오기 직전 장작 오븐에서 한 번 더 구워 스모키한 향을 입힌다. 이것이 탄탄한 ‘1도’다. 여기에 곁들이는 버터는 매일 아침 신선한 생크림을 원심 분리해 유청을 걸러내고 지방만 추출해 만들어낸다. 신선하고 고소한 지방의 완전한 온음이다.
일반적인 식당이라면 여기서 끝났겠지만, 이곳은 ‘구운 귤’이라는 독창적인 ‘3도’를 더해 화음을 완성한다. ‘빵에 귤을 끼워 먹으라고?’ 제주야 귤을 구워먹고, 김치로 만들어 먹고, 귤밥도 종종 지어먹는 것까진 알고 있었으나 막상 껍질까지 오롯이 딸린 귤을 빵에 끼워 먹자니 사뭇 어색하다.
갓 만든 따끈한 빵 위에 위에 차가운 수제 버터를 바르고, 구운 귤을 통째로 빵 사이에 끼운다. ‘이게 맞나?’ 끝까지 의심하며 귤버거를 한 입 베어무는 순간 ‘유레카’! 그런 걱정을 무색하게 하듯, 혹여 노린 듯. 향긋하고 달달함이 터지는 매력적인 한입에 역대급 상상하지 못한 놀라움이 흘러나온다.

김우철 셰프는 제주 해녀들이 귤을 불에 구워 먹던 관습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당도가 가장 높은 남원과 효돈 농장의 귤을 선별해, 껍질째 우드파이어 오븐에 구워 풍미를 최대한 이끌어내는 것이 포인트다.
열을 가한 귤은 신맛이 줄고 단맛이 농축된다. 그 위에 뜨거운 귤의 과육을 터뜨려 올린다. 마지막으로 장작 오븐에서 함께 말려낸 ‘씨솔트(Sea Salt)’라는 원초적이면서 확실한 한방의 조미료가 더해지면 완전한 3가지로 만들어낸 원초적이고 명랑한 장3도가 된다.
입안 가득 퍼지는 스모키한 향과 버터의 부드러움, 그리고 구운 귤의 따뜻한 산미. 이 세 번째 요소인 ‘귤’이 없었다면 이 음식은 아무리 좋은 밀을 쓰고, 어떤 프리미엄 버터를 바른들 그저 평범한 빵과 버터였을 것이다. 구운 귤이라는 아이디어가 더해짐으로써 이 조합은 온몸으로 제주를 대표하는 프리미엄 리조트의 격조를 증명하게 된다. 제주식 삼합의 완성이다.
우니 육사시미 삼합: 녹진함 더한 원초적 미식

불에 익힌 고기가 문명의 맛이라면, 날것은 본능의 맛이다. 서울 논현동의 ‘투뿔 코리안하우스’는 이 원초적인 재료들을 가장 화려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조합해, 가장 선명한 ‘장3도’의 울림을 들려준다. 이곳의 인기 메뉴인 ‘우니 육사시미 삼합’은 최상급 1++ 한우 육사시미, 성게소(우니), 그리고 감태라는 세 가지 조합이 결합된 '장3도'다.
투명하지만 탄탄한 유리 접시를 꽉 메우는, 첫인상만으로도 든든한 우니 육사시미 삼합. 이 디쉬의 색감마저도 적, 황, 녹 정확히 구분된 3가지다.
삼합의 베이스를 담당하는 것은 단연 1++ 등급의 육사시미다. 육사시미는 치마살을 사용해 지방의 아름다운 결을 보여주고 있다. 이 견고한 베이스 위에 황금빛 성게소를 올리고, 감태의 섬세함으로 수분을 보듬으며 풍성한 결과물을 내비친다.
혀끝에 닿는 순간 서늘하면서도 찰진 텍스처가 느껴지는 붉은 살코기는 익히지 않은 단백질 특유의 탄력과 은은한 철분의 향을 뿜어내며 흔들리지 않는 강력한 으뜸음의 위치를 점령한다. 씹을수록 배어 나오는 고소한 지방의 맛은 묵직한 저음처럼 미각의 중심을 단단히 잡아준다.

여기에 바다의 크림이라 불리는 성게소의 녹진한 지방 맛과 특유의 달큰한 향이 소고기의 쫄깃한 저작감 사이사이를 파고들며 완전한 온음을 이룬다. 원초적인 날고기의 맛을 날것의 우니가 화사하고 부드럽게 감싸 안으며, 미각의 채도를 한껏 끌어올리는 것이다.
이 둘을 감싸는 건 감태다. 김보다 훨씬 부드럽고 섬세한 조직감을 가진 감태는 바다의 깊은 향을 머금고 육지와 바다의 재료를 한 묶음으로 묶어낸다. 감태의 쌉쌀함이 뒷맛을 깔끔하게 잡아주는 순간, 입안에서는 육사시미의 쫄깃함과 우니의 크리미함이 뒤섞여 폭발적인 감칠맛을 낸다.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 없어지는 순간의 희열을 도망 못가게 잡아두는 것이다. 이는 장3도를 넘어 장3 화음의 완전한 ‘해결’과도 닮아 있다.
김새봄 푸드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