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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 흘리는 게 제일 싫었는데”…'눕방' 마니아, 암벽에 매달리다 [고태강의 빌드업 클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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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 흘리는 게 제일 싫었는데”…'눕방' 마니아, 암벽에 매달리다 [고태강의 빌드업 클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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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대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땀 흘리는 걸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나의 생활신조는 소파와 한 몸이 되는 ‘눕방’이었다. 평일 퇴근 후나 주말에 감자칩 한 봉지를 뜯어 TV를 보는 게 인생의 낙이었다. 하지만 앞자리가 3으로 바뀌면서 체력이 바닥나는 느낌이 들었다. 이전처럼 똑같이 일해도 더 지쳤고, 피곤이 더해지면서 짜증만 늘어갔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일주일에 두 번 수업을 받았다. 1시간씩 운동하며 땀을 흘리는 건 생각보다 좋았다. 필라테스를 하고 나면 단단해져 있는 몸도 꽤 마음에 들었다.
    클라이밍으로 이끈 넷플릭스 ‘던 월’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 넷플릭스에서 다큐멘터리 ‘던 월(The Dawn Wall)’을 보게 됐다. 토미 콜드웰, 케빈 조거슨, 두 남자가 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있는 ‘엘 캐피탄’에서도 가장 가파른 구간인 ‘던 월’을 등반하는 내용이다. 특히 토미는 검지 손가락 한 마디를 잃었지만, 계속 등반하는 모습에 존경심까지 들었다. 가벼운 몸으로 휙휙 날아다니면서 바위를 잡고 이동하는 모습은 정말이지 경이로울 정도였다.



    그길로 클라이밍을 배우기 위해 암장을 찾았다. 집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KBS스포츠월드에 클라이밍 암장이 있었다. 2021년 1월부터 1주일에 2번 클라이밍을 배우기 시작했다. 자연에 있는 바위 대신 실내에는 화려한 색깔의 ‘홀드(인공돌)’가 있었다. 고무 재질의 꽉 끼는 클라이밍화는 어색하고, 신고 있을수록 발을 좀 쪼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홀드를 잡고, 그리고 밟아야 하는데 처음에는 이 홀드가 내 몸무게를 못 이기고 뜯어지진 않을지 불안했다. 옆이나 위로 움직이기 위해 다른 홀드를 사용해야 하는데 가만히 자세를 잡고 있는 것도 힘들었다. 20분만 지나도 전완근이 땡땡해졌고, 손바닥에는 굳은살이 박히기 시작했다.
    “몸은 가볍게, 마음은 단단하게”
    클라이밍은 결국 자기 몸의 무게를 견디는 스포츠다. 클라이밍을 배우다보니, 자기의 몸이 가벼워야 잘 움직일 수 있는 거였다. 어쩐지 던월에 나왔던 주인공들도 탄탄한 근육에 마른 몸이었다.


    당시 병가 중이었던 나는 살을 빼고 체력을 기르기 위해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1주일에 두 번씩 신사동에 있는 병원에 갔다 올 때면, 따릉이를 타고 강서구 화곡동까지 이동했다. 한강에 차게 불어오는 강바람을 몸으로 맞으면서 왜 자전거를 타는 분들이 고글과 모자로 중무장하는 지를 몸소 느꼈다.


    매일 우장산 둘레길이나 봉제산을 3시간 넘게 걸었다. 처음엔 헉헉 거리며 숨이 찰 정도로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호흡은 안정됐다. 체력이 점차 늘어나는 게 느껴졌다. 생각할 거리가 많아서 머리가 복잡할 때도 걷고 나면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체력도 이렇게 조금씩 늘어나긴 하는데 걱정하던 일도 잘되겠지, 어떻게든 풀리겠지 하는 마음도 생겼다. 이런 게 운동할 때 좋은 점이 아닐까 실감이 났다.



    그렇게 6kg 정도 감량하니 클라이밍이 한결 수월해졌다. 20분이었던 운동 시간도 1시간 정도로 늘었다. 지구력 벽에서 옆이나 위로 이동하는 것도 좋아졌다. 다리에 힘이 실리자 손에만 쏠리던 부담이 다리로도 분산됐다.

    처음으로 10a 코스(초급 난이도)를 완성했을 때 뛸 듯이 기뻤다. 10a 코스는 손으로 잡는 홀드 개수가 37개 정도였다. 지난주 같은 코스를 하다가 툭 떨어지고 땡땡 부은 팔을 주물러가며 ‘왜 난 실력이 늘지 않을까’ 좌절했지만, 이 모든 건 한 번의 완등을 위한 시간이었다. 어제의 내가 넘기지 못했던 홀드를 오늘의 내가 잡았을 때 성취감은 정말 달콤하고 오래 기억에 남았다.
    혼자 오르는 벽도 함께할 땐 더 오래 간다
    클라이밍은 혼자 벽을 오르는 운동이지만, 사실 함께일 때 더 오랫동안 벽을 탈 수 있다. 두 달간의 초급반 동기들과 일주일에 두 번씩 수업을 같이 듣다보니 친해졌다. 수업 후에도 같이 운동을 하며 함께 헷갈리는 자세를 점검하고, 파이팅을 외치면서 서로 응원을 해줬다. 일로 만나는 관계가 아니라, 운동으로 사람들과 친해지는 게 신선했다.


    수업 시간에는 제한된 홀드를 가지고 문제를 푸는 볼더링도 배웠다. 선생님은 지구력 벽에서 홀드 7~8개만 지정해주고 그 홀드만 사용해서 가도록 했다. 서로 볼더링 문제를 내서 풀어보기도 했다. 키가 작은 나는 홀드를 아주 가깝게 배치하고 조그만 홀드들만 넣어서 잡기 어려운 문제를 냈다. 각자의 개성과 취향이 담긴 문제들이 생겼다. 키가 크거나 힘이 좋은 분은 각자의 방식으로 완등에 성공했다. 각자의 강점을 활용해서 벽을 타는 것. 클라이밍의 매력 포인트 중 하나다.

    초급반을 졸업하고 클라이밍을 자습하고 있었는데, 클라이밍에 ‘리드’라는 종목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 길로 초급반 동기 3명과 함께 리드클라이밍도 신청했다. 리드 클라이밍은 줄을 메고 15m 벽을 오르는 형태인데, 다른 사람이 빌레이라는 걸 봐줘야 한다. 등반자가 끝까지 다 갔을 때 안전하게 땅으로 내려주는 역할과 등반자가 갑자기 추락했을 때 바닥을 치지 않도록 하는 중요한 역할이다.
    산과 함께하는 주말삶의 태도가 달라졌다
    함께 리드클라이밍 수업을 듣는 동기 중에 등산 전문가가 있었다. 덕분에 나의 클라이밍 세계는 산으로 확장됐다. 2021년부터 서울에 있는 산을 처음으로 올라가봤다. 맨 먼저 인왕산을 찾았다. 회사에서 받아서 묵혀만 뒀던 등산화를 처음 꺼냈다. 여름 날, 더운 날씨에도 인왕산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약간 오솔길 같은 느낌이 나는 길은 평탄하고, 돌은 듬성듬성 있어서 걷기엔 힘들진 않았다. 정상에 올라가니 서울 전경이 보였고, 마침 살짝 불어오는 바람에 기분이 상쾌해졌다. 그리고 하산 후 치킨과 맥주를 먹었는데 평소보다 더 맛있었다. 이런 맛에 등산하는구나 싶었다.



    내년 겨울에 제주도 한라산을 가자는 목표가 세워졌다. 한라산에 오르기 위해 관악산도 처음 가보고, 북한산도 탔다. 등산 전문가인 동기 덕분에 엄청 힘들진 않았다. 가장 힘든 부분을 미리 알려주고, 이 부분만 지나면 괜찮다고 미리 얘기해주는 게 심리적으로 도움이 됐다.

    그렇게 산을 오르다보니 멀티피치(여러 명이서 자연암벽을 오르는 등반)도 알게 됐다. 북한산을 등산하던 중에 백운대 맞은편에 엄청나게 큰 바위에 매달려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클라이머들의 성지 인수봉이었다. 저렇게 큰 바위에 오를 수 있다니, 정말이지 귀한 경험이 될 것 같았다. 저건 어딜 가야 배울 수 있는 건지 궁금하다는 질문에 동기는 “코오롱등산학교를 가면 배울 수 있어요”라고 했다.



    이 말 한마디가 날 멀티피치의 세계로 이끌었다. 주말이면 집에서 뒹굴 거리다 해가 질 때쯤이면 시간을 낭비했다는 생각에 허무했지만, 이제는 성취로 가득하다. 주말에는 등산을 가거나 자연암벽을 타러 다닌다. 평일에는 클라이밍 암장으로 향한다.

    힘들게 땀 흘리며 무언가를 해냈다는 감정은 인생에는 결코 지름길은 없다는 걸 깨닫게 했고, 힘들게 얻는 것만이 진짜 제대로 된 가치가 있다는 걸 바위 위에서 몸소 배웠다. 불평불만이 가득했던 마음에는 “그냥 하면 되지”하고 넘기는 단단한 맷집이 자리 잡았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을 어렴풋이나마 알게 된 요즘이다.

    고태강 우리자산운용 디지털커뮤니케이션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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