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반 주요 법무법인의 합병으로 본격화된 국내 대형 로펌 시대가 25년을 맞았습니다. 개인 송사 중심에서 기업자문, M&A, 경영권 분쟁, TMT 등 전문·세분화된 법률 서비스 체계로 전환되며, 대형 로펌들은 한국 경제 성장의 든든한 조력자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번 기획을 통해 주요 로펌의 탄생부터 성장기까지의 역사를 조명하며, 대한민국 리걸 마켓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조망합니다.

23년. 법무법인 화우가 뛰어온 역사다. 2003년 2월 출범한 화우는 국내 최상위 대형 로펌으로 분류되는 '빅6'(김앤장, 태평양, 광장, 세종, 율촌, 화우) 가운데 가장 젊다. 1990년대 말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 구조조정과 인수합병(M&A) 수요를 흡수해 기반을 다진 여타 대형 로펌들과는 달리, 명성 있는 로펌의 잇따른 결합과 현대 기업 법무 역량 축적으로 내실과 외연을 동시에 키웠다는 평가다.
화우의 최근 성장사를 대표하는 키워드도 '속도'다. 대형 로펌 간 각축전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지난해 화우는 역대 최대 매출인 2812억원(부가가치세 신고 기준)을 기록하며 3000억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전년 대비 12.5% 증가한 두 자릿수 성장률이다. 변호사 1인당 매출은 7억6000만원으로, 주요 로펌 중 최고 수준의 효율을 나타냈다. 2024년에는 연매출 2500억원을 돌파하며 성장률 20.1%라는 기록도 세웠다.

자문, 송무, 특허... 전례없는 '삼각연대'
화우의 태동은 1980년대 감지됐다. 미국 대형 로펌 베이커앤맥켄지에서 16년간 근무한 윤호일 변호사(사법시험 4회, 일리노이·워싱턴DC·뉴욕주 변호사)가 1989년 서울에 '우방(세방종합법률사무소)'을 세우면서다. 성장을 거듭한 우방은 1994년 우방종합법무법인, 1999년 법무법인 우방으로 발전했다. 한국인으로서 미국 대형 로펌 파트너가 된 첫 사례로 알려진 윤 변호사의 지휘 아래 우방은 기업 자문과 국제 업무에서 두각을 나타냈다.또 다른 태동은 4년 뒤 들려왔다. 법무법인 화백이 1993년 등장했다. 서울지법 부장판사 출신 노경래 변호사와 서울고법 판사 출신 강보현 변호사를 비롯해 김윤수, 김형표, 오상현, 조언 변호사 등 검찰과 법원 출신들이 주축을 이뤘다. 이후 양삼승 전 대법원장 비서실장과 윤관 전 대법원장, 천경송 전 대법관이 잇달아 합류하며 '송무 명가'로 자리매김했다. 변호사 수가 급증하면서 서초동에서 삼성동 아셈타워로 사무실을 옮겼다.

2000년대 국내 로펌들의 대형화 흐름 속에서 우방과 화백 사이에도 합병 논의가 일었다. 대학 시절부터 인연이 있던 윤 대표변호사와 노 대표변호사는 각자의 역량을 흡수하고 강화할 필요성에 공감하며 뜻을 모았다. 당시 우방은 변호사 40명, 화백은 60명 규모였고 양측은 기존 인력을 내보내지 않는 대등한 조건으로 통합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그렇게 2003년 법무법인 화우가 탄생했다. '화우'는 각 로펌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든 이름으로 '화목한 집안'이라는 뜻도 담았다. 거점은 화백이 입주했던 아셈타워가 됐다.
대형 로펌들과의 경쟁을 이어가던 화우는 2006년 2차 합병을 통해 다시 한 번 세를 불렸다. 1967년 설립돼 국내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로펌인 '김·신·유'를 통합하면서다. 김진억 변호사가 세운 김신유는 지적재산권(IP) 분야에 강점을 지녔고 다수 외국계 기업을 주요 고객으로 뒀다. 종합로펌 기반을 갖춘 화우는 이어 김신유 출신 변리사들을 대거 영입해 특허법인 화우를 출범시키며 조직을 확대했다.
리더십 정교화에 기업 접점 넓혀
화우는 국내에서도 경쟁력 있는 로펌들이 잇따라 합쳐진 독특한 구조라는 점에서 리더십 정비에 공을 들였다. 구성원들의 출신 로펌이 모두 달랐던 만큼 조직 내 업무 분장의 중요성이 컸기 때문이다. 설립 초기 4년간은 양 로펌에서 각 2명씩 윤호일, 노경래, 유인의, 강보현 변호사가 공동대표를 맡았다. 김신유 합병 직후인 2007년에는 처음으로 경영전담변호사(Managing Partner) 제도를 도입했고, 초대 MP에 대법원 조세조 재판연구관 출신 임승순 변호사가 올랐다.화백의 송무 DNA를 이식한 화우는 설립 초기부터 한국사에 길이 남을 헌법재판소 사건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며 이름을 세간에 각인시켰다. 2004년에는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국회에서 탄핵이 소추된 노무현 당시 대통령을 대리해 헌재에서 기각 결정을 이끌어내는 데 기여했다. 2008년에는 태아의 성별을 산모에게 알려주는 행위를 금지한 의료법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아냈다.

기업과의 접점을 넓히는 데도 주력했다. 2008년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 해외 첫 사무소를 열고 '타슈켄트시티 프로젝트' 등 중앙아시아에 진출한 국내 기업을 대상으로 금융·에너지·건설 분야 자문을 수행했다. 2009년에는 국내 로펌 최초로 사법연수원생과 법학전문대학원생을 위한 교육기구 '화우연수원'을 설립했고, 이런 교육 시도는 2012년 '사내변호사를 위한 법률실무강좌'로도 이어져 지금까지도 노하우 공유의 장으로 기능하고 있다.
2010년대를 전후해 법인 경영 체제도 확실한 기틀이 다져졌다. 2009년에는 의사결정 총책임자인 업무집행대표변호사 제도를 신설해 변동걸 변호사가 그 역할을 맡았고, MP와 협력하는 구조를 마련했다. 2010년에는 법인 단위의 신속한 의사결정을 위해 '유한' 법무법인으로 전환했다. 이후 2012년부터는 3년 단위의 '업무집행대표 1명, MP 2명' 체제가 정착했고, 이 구조는 2026년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잇따른 대형 소송... '대어'로 큰 2010년대
화우는 2010년대 들어 대형 기업·경제 사건에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삼성자동차 법정관리 당시 채권단이 2005년 삼성그룹을 상대로 제기한 4조7000억원대 소송에서 채권단을 대리해 2011년 위약금 6200억원 승소 판결을 받은 게 대표적이다. '단군 이래 최대 민사 소송'으로 불리기도 했다. 같은 해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장남 이맹희 씨를 대리해 이건희 삼성 회장 상대 수천억원 규모의 상속주식 반환청구 소송을 내 화제를 모았다.소송의 유형도 전방위로 넓어졌다. 2010년에는 KBS, MBC, SBS 등 지상파 3사를 대리해 케이블TV 사업자들을 상대로 공중파 프로그램의 저작인접권을 최초로 인정받았고, 2011년에는 환헤지 파생상품 '키코(KIKO)' 사태에서 은행 측을 대리해 잇따른 승소 판결을 이끌어냈다. 2015년에는 일본 도시바와 미국 샌디스크가 SK하이닉스를 상대로 제기한 낸드플래시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서 SK하이닉스를 대리해 화해 결정을 받아내기도 했다.

2005년 398억원에 불과했던 연 매출은 매년 성장세를 이어가며 2013년 처음으로 1000억원대(1039억원)를 돌파했고, 외연 확장에도 속도가 붙었다. 같은 해 '관세법인 화우'를 설립했고 2017년에는 '세무법인 화우'를 출범시켜 자문 분야를 대폭 넓혔다. 해외 진출도 이어져 2016~2017년 베트남 호치민과 하노이에 사무소를 열었고 2018년에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도 진출해 동남아 진출 기업 수요에 대응했다.
출범 초창기부터 강조했던 공익사업도 점차 단단한 틀을 갖췄다. 2012년 화우공익위원회를 발족한 데 이어 2014년에는 화우공익재단을 설립하고 초대 이사장으로 이홍훈 전 대법관을 임명했다. 국내 주요 로펌 가운데 재단법인을 설립한 것은 화우가 두 번째였다. 화우는 박영립 대표변호사가 단장을 맡은 한센인권변호단을 지원해 한센인들을 대리, 일본 정부를 상대로 보상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금융'의 화우, 초고속 성장으로 전방위 확장
특히 화우는 2024년 '금융통' 이명수 대표변호사 취임 이후 "금융 사건은 화우가 싹쓸이했다"는 말이 공공연히 돌 정도로 성장했다. 라임·옵티머스 사태 이후 시중은행과 증권사들이 판매한 펀드를 둘러싼 민형사 소송이 이어지자 판매사 측을 대거 대리하며 대응에 나섰고,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상품 관련 불완전판매 소송에서도 작년까지 투자자 청구 전부 기각 판결을 받아 주목을 받았다.

재계를 뒤흔든 사건에서도 활약이 이어졌다. 2021년부터 2024년까지 이어진 사모펀드(PEF) 한앤컴퍼니와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 간 경영권 분쟁에서는 한앤코를 대리해 의결권 행사, 계약이행금지가처분 등 주요 절차에서 승소하며 최종 승리를 견인했다. 이 밖에도 한미사이언스 경영권 분쟁(한미사이언스 대리), SM엔터테인먼트 경영권 분쟁(이수만 대리) 등에 참여했고, 삼성물산 부당합병 사건에서도 삼성물산 경영진을 대리해 최종 무죄를 이끌어냈다.
화우의 영토 확장은 공격적이다. 셀트리온을 대리해 불법파견 소송에서 1심 패소를 뒤집고 항소심과 지난해 대법원에서 연이어 승소하며 노동 분야에서 주목을 받았다. 메디톡스를 대리해 영업비밀 분쟁에 대응하고, '메디톡신' 식약처 품목허가 취소 소송에서도 승소하는 등 제약·바이오 분야에서도 존재감을 확고히 하고 있다.
가열되는 '빅6' 경쟁, 화우의 다음 목표는
화우가 마주한 최우선 과제는 양적 성장이다. 2013년 매출 1000억원을 돌파한 데 이어 2021년엔 2000억원을 넘겼지만, 작년 율촌(4080억원)을 비롯한 나머지 '빅6' 로펌들이 일제히 연매출 4000억원을 돌파하면서 격차 추격이 불가피해졌다.화우는 적극적인 인재 영입을 통해 돌파구를 찾고 있다. 지난해에만 타 로펌에서 파트너급 변호사 18명을 영입했고, 올해 1월 기준 전체 변호사 수는 367명이다. 대형 로펌 간 경쟁이 극한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화우의 다음 움직임이 '빅6' 지형을 어떻게 흔들지 법조계 이목이 쏠리고 있다.
박시온 기자 ushire90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