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서웠던 강추위가 지나간 뒤 어느새 봄을 준비할 시점이다. 하지만 피부는 겨울을 통과한 흔적을 그대로 안고 있다. 겨울 동안 차갑고 건조한 환경을 버텨내면서 장벽 기능이 약해지고, 수분 유지력은 떨어진 상태로 봄을 맞는다. 그래서 2월에는 피부 컨디션이 갑자기 무너진 것 같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거칠고 당기고, 이유 없이 가렵고, 미세 주름까지 동시에 나타나기 쉬운 시기다.
요즘 뷰티 업계에서 자주 들리는 키워드는 ‘슬로우 에이징’(Slow aging)과 ‘롱제비티 뷰티’(Longevity Beauty)다. 둘 다 그럴싸한 신조어이지만,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슬로우 에이징은 노화를 거꾸로 돌리겠다는 욕심 대신, 노화의 속도를 관리하자는 접근에 가깝다.
단기간에 드라마틱한 변화를 기대하기보다 자외선 차단, 항산화 관리, 피부 장벽 강화, 꾸준한 보습 같은 기본 루틴 통해 노화를 관리해 나가는 방식이다. 시술이나 고기능 화장품이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핵심은 어디까지나 일상에서 지속 가능한 관리에 있다.
롱제비티 뷰티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단순히 ‘어려 보이는 피부’가 아니라 피부 세포의 컨디션과 기능적 수명까지 함께 고려한다. 피부 마이크로바이옴 환경, 만성적인 미세 염증, 스트레스와 수면, 식습관과 같은 요소들이 모두 피부 상태와 연결돼 있다고 보는 전제한다. 다시 말해 화장대 위의 제품만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생활 전반이 함께 설계돼야 한다는 관점이다.
다소 거창하게 들리지만, 두 흐름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결론은 의외로 단순하다. 피부는 결국 기본을 꾸준히 지킨 사람에게 가장 안정적으로 반응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봄을 앞둔 지금이야말로 새로운 제품을 계속 추가하기보다, 지금 쓰고 있는 루틴이 과연 내 피부에 맞는지 점검해볼 타이밍이라고 생각한다.
뷰티 콘텐츠를 만드는 직업 특성상 정말 다양한 제품을 써본다. 새로운 콘셉트와 성분, 메시지가 끊임없이 쏟아진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제품을 거쳐 오면서 느낀 건 화려한 이야기보다 기본기가 탄탄한 제품과 루틴이 결국 오래 간다는 사실이다.
베이스 메이크업을 거의 매일 하는 편이라 저녁에는 반드시 이중 세안을 한다. 다만 계절에 따라 사용하는 제품의 제형은 조금씩 달라진다. 여름에는 유분감 있는 베이스 제품과 피지를 효율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오일 타입을 활용한다.
색조 메이크업은 대부분 유분 성분과 결합돼 있기 때문에 같은 성질의 제형으로 녹여내는 게 합리적이다. 반대로 겨울에는 세안 후에도 보습감이 어느 정도 남는 밀크 타입을 먼저 쓰고, 이후 가벼운 젤이나 파우더 워시로 한 번 더 정리한다. 세정력과 피부 손실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접근법이다.

세안 후에는 곧바로 크림을 바르기보다 토너로 피부결을 먼저 정리한다. 얼굴뿐 아니라 목과 데콜테까지 함께 관리하면서 1차 수분을 채운다. 피부가 충분히 촉촉한 상태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 흡수감과 체감 효과가 확실히 달라진다. 건조한 계절에는 한 번에 많이 바르기보다, 소량을 여러 번 나눠 덧바르는 방식이 더 도움이 된다.
이 단계에서 각질 정돈을 겸한 토너 패드를 활용하는 경우도 많다. 필링 성분이 과하지 않게 설계된 제품을 선택하면, 별도의 스크럽 없이도 피부결 관리가 가능하다. 토너 패드 사용 후 남은 에센스로 팔꿈치나 귀 뒤처럼 각질이 쌓이는 부분을 닦아 관리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중요한 건 성분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와 지속성이다.

그 다음 단계에서는 그 시점의 피부 고민에 맞는 기능성 제품을 고른다. 미백, 탄력, 진정, 보습, 트러블 관리 등 목적은 분명히 하는 게 좋다. 이런 관점에서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주목받는 성분 중 하나는 PDRN이다. 폴리데옥시리보뉴클레오타이드 계열 성분으로, 피부 장벽과 컨디션 개선 측면에서 연구가 이어지고 있는 소재다. 다만 어떤 성분이든 단기간에 눈에 띄는 변화를 기대하기보다는, 일정 기간 이상 꾸준히 사용했을 때 서서히 체감이 쌓이는 쪽에 가깝다.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건, 화장품은 의약품이 아니라는 점이다. 피부 턴오버 주기와 성분 작용 시간을 고려하면 최소 수 주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피부는 굉장히 정직해서 관리한 시간만큼만 반응한다. 바쁘다는 이유로 기본 단계를 생략하면서, 동시에 빠른 변화를 기대하는 건 솔직히 욕심에 가깝다.
겨울철에는 남성들에게도 아이크림을 사용할 것을 권하고 싶다. 일반적으로 20대 중반 이후부터 탄력 관련 지표는 서서히 감소하기 시작하고, 눈가는 구조적으로 피부가 얇아 주름이 먼저 드러난다. 사계절 사용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그게 어렵다면 가을과 겨울만이라도 집중 관리하는 편이 좋다.
마지막 단계인 크림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가볍게 넘긴다. 하지만 크림은 수분 증발을 막고 외부 자극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는 장벽 역할을 한다. 이 단계를 빼먹으면, 아무리 앞 단계를 열심히 해도 하루 종일 당김을 느끼기 쉽다. 결국 스킨케어는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라 생활 습관에 가까워져야 한다.
예를 들면 토양 관리와 비슷하다. 이미 메마른 땅에 물을 부으면 금방 다시 말라버리지만, 평소 관리가 된 토양은 같은 물에도 오래 촉촉함을 유지한다. 피부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날을 앞두고 단기간에 뭔가를 더하는 것보다, 매일 반복되는 루틴이 훨씬 큰 차이를 만든다.
가끔 화장품 하나만 추천해 달라는 질문을 받는다. 여러 제품을 사용할 필요 없는 올인원 제품도 나쁜 선택은 아니다. 다만 스킨케어가 아직 습관화되지 않은 단계에서의 ‘입문용’에 가깝다고 보는 게 현실적이다. 피부 관리는 결국 누적의 영역이고, 하나의 제품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는 기대는 다소 이상적이다.
슬로우 에이징과 롱제비티 뷰티라는 말은 새롭지만, 실천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오늘 저녁 세안 후 토너를 한 번 더 덧바르고, 크림까지 빠뜨리지 않는 것. 그 사소한 반복이 시간이 지나 피부의 인상을 만든다. 유행은 바뀌지만, 기본은 남는다. 오래 가는 피부의 비결은 결국 트렌드가 아니라 기본에 있다.
정호석 우송대 뷰티디자인경영학과 객원교수(뷰티 인플루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