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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벨리우스·한용운의 위로…"겨울 참아내고, 우리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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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벨리우스·한용운의 위로…"겨울 참아내고, 우리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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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 내내 양식을 모아둔 다람쥐들아,
    어디 숨었는지 모르는 참새들아,
    깊은 땅속을 파헤치고 들어간 아이들,
    세상을 누비고 느끼던 모든 작은 것들아,
    깊숙이 떨어져 내린 태양이 살아날 때까지,
    푸른 잎들이 다시 움틀 때까지, 참아내거라.
    우리 다시 만나자.


    한겨울의 산은 적막하다. 생명의 소리라고는 들리지 않는다. 들리는 것은 나뭇가지들을 부르르 떨게 만드는 황량한 바람소리뿐.


    숲과 호수의 나라 핀란드의 거장 시벨리우스가 귀로 들은 한겨울도 이와 같았을 것이다. 그가 33세 때 쓴 교향곡 1번의 느린 두 번째 악장에서는 현이 고적하게 주선율을 노래하는 사이로 플루트가 숲을 휘감는 듯한 바람 소리를 묘사한다.

    이로부터 6년 뒤인 1905년, 시벨리우스는 극음악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를 썼다. ‘파랑새’로 우리에게 친숙한 벨기에 작가 메테를링크의 1893년 희곡 상연 때 효과를 불어넣기 위해 연주할 목적으로 쓴 음악이다. 이 희곡을 바탕으로 시벨리우스와 프랑스인 포레가 극음악을 썼고 드뷔시가 오페라를, 쇤베르크가 교향시를 작곡했다.


    여러 나라의 작곡가를 매료시킨 데는 이 희곡이 가상의 나라를 배경으로 한 일종의 판타지인 것도 이유일 것이다. 지리적 배경을 삭제한 이 소재에 북유럽인이 붙인 곡에는 북유럽의 바람이, 남유럽인이 붙인 곡에는 남유럽의 햇살이 느껴진다. 숲에서 길을 잃었다가 왕손 골로의 신부가 된 멜리장드는 골로의 동생 펠레아스에게 끌리지만 둘의 사랑은 발각되고 펠레아스는 골로의 손에 죽는다. 극의 마지막에 멜리장드는 아기를 낳고 말한다.

    아뇨, 창은 닫지 말아주세요….
    태양이 바다의 바닥까지 가라앉을 때까지는….
    겨울인가요?
    아, 안돼, 추위가 두려워요. 이 거대한 추위….




    멜리장드는 작은 아기를 품어 안을, 자신의 팔을 들어 올릴 힘도 없었다. 그것이 멜리장드의 마지막이었다.

    시벨리우스가 쓴 ‘멜리장드의 죽음’은 애도의 노래처럼 비탄에 찬 나지막한 선율로 시작한다. 고조돼 현이 몰아치고 팀파니가 육중하게 부풀어 오를 때는 주인공을 둘러싼 세상의 한기가 듣는 사람의 뼛속까지 스며드는 듯하다.



    자연이 가장 잔인해지는 시기. 통계적으로는 북반구 어디서나 1월 말과 2월 초의 기온이 가장 낮다. 가장 힘없는 것들, 가장 작은 존재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모파상은 시 ‘눈 덮인 밤’에서 말한다. ‘작은 새들에게 끔찍한 밤!/ 찬 바람이 길을 따라 몰아치고/ 둥지 그늘에서 쉴 수 없는 새들은/ 얼어붙은 발로 잠을 잘 수가 없구나.’

    20세기 초 미국 여성 시인 세라 티즈데일도 ‘겨울밤’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내 창유리에 서리꽃 맺히고
    오늘 밤 세상은 매섭게 차갑다
    달은 잔인하고, 바람은
    양날의 검처럼 베어온다
    하느님, 불쌍히 여기소서
    떠도는 모든 집 없는 이들을
    하느님, 불쌍히 여기소서
    등불 켜진 눈길을 걷는 가난한 이들을
    내 방은 유월의 한 조각 같아
    포근하고 겹겹이 커튼 드리워졌지만
    어디선가, 집 없는 아이처럼
    내 마음은 추위 속에서 울고 있다


    영국의 한 학기가 닫히기 직전, 학부모로서 초교 연말 발표회를 보러 갔다. 교장 인사말로 행사는 시작됐고, 다음 순서로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에 맞춰 입을 떼지 못하는 사람은 이 공동체의 신입 멤버인 나와 가족뿐이었다. 처음 듣는 그 노래는 어둡고 침울한 가사로 시작됐다. 하지만 선율의 따뜻함이 어색함을 넘어 몸과 마음을 녹여주는 듯했다.



    ‘황량한 한겨울에/ 서릿바람 신음하고/ 대지는 쇠처럼 굳고/ 물은 돌처럼 얼었다

    눈이 내렸다, 눈 위에 눈/ 눈 위에 눈/ 황량한 한겨울에/ 오래전의 일이었다.’

    그 노래는 크리스티나 로제티의 ‘황량한 한겨울에(In the bleak midwinter)’에 관현악 모음곡 ‘행성’으로 유명한 작곡가 구스타브 홀스트가 곡을 붙인 것이다.

    여러 절이 어렵지 않은 멜로디로 반복되는 형태여서 끝부분에는 인쇄물에 적힌 가사를 보고 나도 따라 부를 수 있었다. 마지막 절은 구세주의 탄생을 찬미하며 마무리됐다.

    ‘내가 무엇을 드릴 수 있을까/ 가난한 이 몸으로/ 내가 목동이라면/ 어린 양을 드리리

    동방박사라면/ 내 몫을 다하리라/ 하지만 내가 드릴 수 있는 것은/ 오직 나의 마음.’


    음악사에서 한겨울의 묘사로 가장 거대한 기념비를 이룬 작품은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 나그네’(원제 겨울여행·Winterreise)일 것이다. 첫 곡 ‘밤인사’에서 주인공은 이렇게 읊조린다.

    ‘이방인으로 왔다가/ 이방인으로 떠난다/ 5월은 수많은 꽃으로/ 내게 잘 대해주었다/ 아가씨는 사랑을 속삭였고/ 그 어머니는 결혼 얘기까지 했지만/ 이제 세상은 어둡고/ 길은 눈으로 덮였다.’

    그렇게 시작된 방랑에서 주인공은 뜨거운 눈물이 얼음과 눈을 뚫고 들어가 녹여버리기를 갈망하고, 차가운 바람에 모자를 날려 보내기도 한다. 그의 운명은 어디로 흐를까.

    ‘찬란한 꽃들의 꿈을 꾸었다, 5월에 피는 꽃을/ 초록 들판 꿈을 꾸었다, 행복한 새들의 노랫소리를/ 그러다가 닭이 울 때 눈이 떠졌다(…)

    창문의 꽃잎은 누가 그렸을까/ 비웃는구나, 겨울에 꽃을 본 몽상가를.’

    창문에 낀 성에에서 꽃을 떠올리고 스스로를 비웃는 이 주인공에게도 봄은 돌아올 것이다. 언젠가는 성문 앞 우물 곁을 찾아 그곳에 선 보리수를 바라보며 한때 자신을 절망케 한 젊은 날의 사랑을, 얼마간은 비웃는 마음으로 바라볼지도 모른다.

    황량한 한겨울은 역사적 고난의 체험과 연결되기도 한다. 일제강점기에 쓰인 이육사의 시 ‘절정’이다.

    매운 계절(季節)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北方)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高原)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디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보니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이 시를 떠올릴 때면 영국 근대 작곡가 랠프 본 윌리엄스의 ‘토머스 탈리스 주제에 의한 환상곡’을 꺼내 듣곤 한다. 서릿발 같은 적막이 온몸을 감싸오는 느낌. 논리적으로 설명할 만한 근거는 없다.

    만해 한용운은 이육사의 ‘절정’과 비슷한 시기에 지은 한시 ‘설야(雪夜)’에서 옥중에서 맞은 추운 겨울밤을 기록한다.

    사방의 산이 감옥을 둘러싸고 눈은 바다 같은데
    이불은 쇠처럼 차갑고 꿈은 재처럼 희미하다
    쇠창살에도 오히려 가둘 수 없는 것 있으니
    밤에 들리는 종소리, 어디서 오는가


    겨울은 어둡고 깊다. 그러나 한밤에도 종소리는 들려 온다. 겨울도 분명 그 끝이 있다.

    유윤종 음악평론가·클래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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