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그룹 총수들은 4일 지방 투자와 청년 고용 확대를 당부한 이재명 대통령의 요청에 통 큰 투자로 화답했다. 이들 기업은 올해부터 5년간 270조원을 지방에 투자하고, 연내 5만1600명을 채용하기로 했다. 이에 이 대통령은 감사의 뜻을 전하며 “정부도 최선의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수도권 과밀화, 청년 고용난 등 국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민관이 손을 맞잡았다는 평가다.
◇올해만 지방에 66조원 투자

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은 이날 “경제계가 청년 일자리 창출과 지역 경제 활성화에 적극 힘을 보태겠다”며 총 270조원 가운데 올해 66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삼성, SK, 현대자동차, LG, 롯데, 포스코, 한화, HD현대, GS, 한진그룹 등 10대 그룹의 지난해 지방 투자액보다 16조원 늘어난 규모다.
구체적으로 각 기업은 반도체 설비 증설, 배터리 생산 및 연구개발(R&D) 역량 확대, 인공지능(AI) 전환, 탄소중립 인프라 구축 등 전략산업을 중심으로 대규모 투자를 단행할 계획이다. 한경협은 이번 지방 투자로 생산 유발 효과가 최대 525조원, 부가가치 유발 효과가 최대 221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날 한경협은 별도 자료를 통해 “계획된 지방 투자가 집행될 수 있도록 입지, 인허가 규제 등을 걷어내고 세제, 보조금 등을 지원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이 대통령은 간담회에서 지방 투자가 오히려 새로운 성장 기회가 될 수 있다며 기업의 지방 투자를 독려했다. 그 근거로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특별법 제정과 지방 우선 정책을 거론했다. 이 대통령은 “재정 배분이나 정책 결정 과정에서 서울에서 거리가 먼 지역을 가중해 지원하는 ‘가중 지원 제도’를 법제화하겠다”며 “길지 않은 시간 안에 지역 간 에너지 가격에도 큰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성장의 과실이 중소기업, 지방, 청년으로 확산돼야 한다고 강조하자 일부 기업은 중소 협력사와 R&D 기술을 공유해 관련 산업 생태계를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연내 5만1600명 고용
이날 간담회에서 이 대통령은 “정부가 하는 정책에 많이 협조하고 크게 기여해줬지만 조금만 더 마음을 써주십사 하는 부탁을 드린다”며 청년 채용 확대도 당부했다.
이에 기업들은 올해 5만1600명을 고용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지난해 전체 채용 규모보다 2500명, 지난해 수립한 올해 고용 계획보다 6500명 늘어난 수준이다. 기업별로는 삼성 1만2000명, SK그룹 8500명, LG그룹 3000명 이상, 포스코그룹 3300명, 한화그룹 5780명 등의 채용 계획을 제시했다.
기업들은 특히 올해 채용 인원의 66%인 3만4200명을 신입으로 선발해 청년층의 취업 문호를 넓히기로 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영업이익이 많이 개선돼 올해 더 채용할 수 있는 여력이 생겼다고 말했고, 이 대통령은 신규 채용 때 지역 청년을 우선 고려해달라고 당부했다. 류 회장은 “AI 로봇이 확산해 제조업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우려가 있다”며 “고용 효과가 높은 서비스산업을 키워 청년 일자리 문제에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총수들은 비공개 회의에서 이 대통령에게 기술 개발 관련 규제와 산업 현장의 개인정보 규제를 완화하고 데이터 활용 권한을 확대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이 대통령은 관계부처 장관에게 기업들의 애로 사항을 해소하라고 지시했다.
또 총수들은 청년 창업 지원 방안에 관해 심도 있는 의견을 내놨다. 창업 펀드를 조성해 스타트업을 지원하고, 지역 대학과 연계해 창업 생태계를 확장하는 방안이 다수 논의됐다. 사내벤처를 적극 활용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이와 함께 피지컬 AI와 AI 로봇 등 차세대 기술을 둘러싼 논의가 오갔다. 이번 간담회에서 미국과의 관세 협상, 노동 규제, 상법 개정안 등에 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형규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