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인공지능(AI) 전쟁이 갈수록 뜨겁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 빅테크가 일찌감치 선전포고한 가운데 최근 엔비디아까지 참전을 선언했다. 독자 노선을 걸어온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과 달리 엔비디아는 시가총액 세계 1위 제약사 일라이릴리와 연합전선을 구축했다는 점에서 업계의 관심이 남다르다.현재 신약 AI 주도권은 인실리코메디신, 리커전 등 미국 바이오테크가 쥐고 있다. 인실리코메디신은 표적 발굴부터 분자 설계, 임상시험 설계까지 신약 개발 과정의 대부분을 AI가 처리하는 신약 AI 플랫폼을 갖췄다. 게다가 이 플랫폼을 기반으로 발굴한 신약으로 사람 대상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글로벌 1호 AI 신약’의 주인공이 될 가능성이 현재로선 가장 높다.
글로벌 빅테크들의 잇단 참전
인실리코메디신의 신약 AI는 세계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폭넓게 활용 중이다. 글로벌 빅파마는 물론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도 이 회사의 플랫폼을 도입했다. 이 때문에 국내 신약 AI 기업들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는 형국이다.이런 와중에 엔비디아의 참전은 국내 신약 AI 업계에는 핵폭탄급 악재가 아닐 수 없다. 일라이릴리가 오랫동안 연구실에서 쌓아온 엄청난 규모의 약물 및 임상 데이터가 날개를 달아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데이터 가치는 엔비디아가 향후 5년간 인재 영입과 컴퓨팅 인프라 구축 등에 투입하겠다고 밝힌 10억달러 이상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AI는 신약 개발에 필수적인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전통적인 신약 개발 방식의 한계 때문이다. 기존 방식으로는 신약 개발에 10~15년이 걸리는 데다 개발비도 2조~3조원을 훌쩍 넘는다. 그런데도 성공 확률은 2~3%에도 못 미친다. 실패 리스크가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반면 AI는 약물 발굴 속도를 획기적으로 단축하는 데다 실패 확률까지 낮춰준다. 신약 AI 경쟁력이 곧 신약 경쟁력이라는 의미다.
공공 의료데이터 활용까지 막힌 韓
정부도 이런 변화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작년 말 혁신적인 AI 바이오 생태계를 구축해 AI 바이오 글로벌 허브로 도약하겠다는 국가 전략도 발표했다. 하지만 업계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공공 의료데이터 활용 문제도 아직 풀지 못하면서 구호만 남발한다는 이유에서다.건강보험공단이 보유한 공공 의료데이터 가운데 비식별화된 데이터는 민간 활용이 허용된 지 오래다. 문제는 까다로운 행정 절차다. 민간기업이 건보공단에 서류를 제출하고 심사를 거쳐 데이터를 활용하기까지는 일러도 3개월이 걸린다는 게 업계의 불만이다. 수년 넘게 걸리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특정 환자의 진료 데이터를 한꺼번에 활용하기 어려운 것도 걸림돌이다. 비식별 처리된 개별 진료 데이터만 활용할 수 있도록 엄격히 제한하고 있어서다. 환자의 장기적인 진료 기록을 한 번에 볼 수 없어 건보 데이터가 신약 개발 등 연구 목적에는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라는 게 업계의 하소연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공공 의료데이터를 갖고도 개인정보 보호라는 굴레에 갇혀 있다 보니 빚어지는 일이다. AI 바이오 글로벌 허브가 되겠다는 정부가 가장 먼저 풀어야 할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