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 밖의 시도가 물 흐르듯 편안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 일들이 되게 하기 위해 박창수 선생님이 깊은 밤마다 고민을 거듭하던 시간을 나는 곁에서 오래 지켜보았다. 개인의 집에서 열리던 음악회가 지금의 규모로 확장된 데에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걸었던 선생님의 결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나 역시 멀쩡한 직장을 내려놓고 하콘에 뛰어들었다. 그 선택 또한 지금의 하콘을 만드는 데 작은 힘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순간마다, 주위에서는 늘 이렇게 물었다.
<i>“꼭 그렇게까지 해야 해?”</i>
가장 파격적인, 스물네 시간의 공연
그중에서도 <24시간 프로젝트>는 하콘 역사상 가장 파격적인 프로젝트다. 말 그대로 24시간 동안 연달아 공연하는 것이니 세계적으로도 사례를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시도일 것이다. 2018년, 이 공연을 처음 올리던 해에 조심스레 계획을 꺼내던 박창수 선생님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i>“내가 작년에는 한 달간 매일 공연을 했는데, 올해는 그걸 하루에 몰아서 하면 어떨까?”
“몰아서…요?”
“24시간 동안 연주해 보면 어떨까…”</i>

느릿느릿한 말투로 마치 그냥 생각이나 한번 해봤다는 듯이 말을 꺼내셨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오랫동안 품어왔던 계획임이 틀림없다. 20대부터 아방가르드 음악가로서 실험적인 활동을 이어온 선생님께는 1998년 24시간 12분 동안 연주했던 이력이 있고, 2018년은 그로부터 정확히 20주년이 되는 해였기 때문이다.
다행히 반(反)정형적인 하콘의 관습에 익숙해진 우리는 사뭇 놀라면서도 이내 두 눈을 반짝였다. 24시간 동안 연주라니, 우리가 아니면 누가 시도할 수 있겠냐는 기대감이었다. 물론 이 프로젝트 뒤에 숨겨진 온갖 사투는 알지 못한 채였다.
24시간의 사투
24시간 프로젝트에서 가장 힘들었던 건 역시 잠과의 싸움이었다. 밀려오는 잠은 정말이지 인간의 힘으로 통제 불가능한 영역이었다. 피아니스트 박창수의 솔로 프로젝트로 시작한 첫해에는, 밤을 새워 공연을 관람할 이들을 위한 담요와 매트를 미리 준비해 두었다. 자유롭게 관람하다 잠이 들어도 괜찮다고 안내했는데, 결국 나는 내가 준비한 그 담요를 덮고 관객들 사이에서 잠들어버렸다. 눈을 뜨면 선생님이 연주를 이어가고 있었고, 무겁게 떨어지는 눈꺼풀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잠들기를 반복했다. 잠든 관객과 스태프를 배경으로 외로이 연주를 이어가는 피아니스트라니… 그것은 참으로 생경한 풍경이었다.
해를 거듭하며 공연의 성격이 확장되자 이전보다 훨씬 많은 체력이 필요해졌다. 첫해와 달리 이듬해부터는 다양한 연주자들이 합류하며 매 회차 출연진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24시간 프로젝트에는 ‘매 시각 새로운 무대가 시작되고, 50분 이내에 공연이 종료된다’라는 원칙이 있었고, 24개의 공연이 하나의 프로젝트를 이루는 만큼 시간 분배가 무척 중요했다. 한 공연이 끝나기도 전에 다음 팀을 맞이했고, 한 팀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 그 틈을 타 다음 팀 세팅이 곧바로 이어졌다. 이전 팀의 진행이 예상보다 길어질 때면, 다음 공연을 정시에 올리기 위해 불과 몇 분 안에 모든 준비를 마쳐야만 했다. 조명을 바꾸고, 마이크와 카메라를 옮기는 모든 과정은 스태프들의 일사불란한 움직임 속에 신속하게 처리되었다.

24시간 동안 이어진 사투는 개인의 힘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 스태프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서로를 격려하고 어깨를 두드렸다. 그렇게 템포를 맞추며 쌓아 올린 시간이 모여, ‘24시간’이라는 무모한 시도가 완성되었다. 그리고 나는 어느 순간, 이 프로젝트가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하콘이 존재하는 방식을 그대로 드러내는 시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연주자와 관객이 보여준 기적, 24시간 프로젝트의 현재
24시간 프로젝트를 하다 보면 가끔 받는 질문이 있다.
<i>“정말 24시간 동안 공연을 하나요?”
“새벽 4시 같은 시간대에도 공연이 있나요?”
“24시간을 다 지켜보는 관객이 정말 있나요?”</i>
답은 모두 ‘예스’다.
2020년이 되며 24시간 프로젝트는 피아니스트 박창수 개인의 즉흥연주 프로젝트(2018-2019)에서, 연주자들을 위한 것으로(2020- ) 변화했다. 팬데믹을 맞으며 무대를 잃은 연주자들에게 숨 쉴 무대를 주자는 의미였다. 선생님이 홀로 연주하시던 첫해와는 달리, 이듬해부터 “새벽 3시 연주이고요…” 하고 말을 꺼내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새벽 3시 말고 오후 3시는 안 되나요?”라고 되물어도 이상하지 않은 시간대였다. 하지만 연주자들은 이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1시간의 무대를 기꺼이 맡아 주었다. 그리고 각자가 최선을 다해 무대를 채웠다.


무엇보다 이 프로젝트를 지금까지 존재하게 한 건 관객들의 힘이 컸다. 밤을 새우며 공연을 보고, 동틀 무렵의 새벽 공기를 마시던 사람들과 24시간 내내 자리를 지킨 대단한 끈기의 관객들, 그리고 현장에 오지 못하지만, 스태프들을 위한 간식을 보내주던 따뜻한 마음들까지… 음악의 현장성은 이들 덕분에 온전히 살아 있었다.
지금의 24시간 프로젝트는 다시 한번 변화를 맞았다. 실력 있는 연주자들을 발굴하는 공식적인 자리로 자리 잡았고, 구성 방식도 12시간씩 이틀에 걸쳐 진행되는 형태로 확장되었다. 그동안 이 프로젝트의 의미를 스스로 되묻는 시간이 없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그때마다 나는 이 프로젝트가 만들어온 여정을 생각했다. 어렵고 힘든 시간을 견뎌내며 스스로 진화해 온 프로젝트는 이제 많은 이들이 기다리는 자리가 되었고, 수많은 젊은 연주자들이 이 무대에 서기를 꿈꾼다는 것을 말이다.

24시간 프로젝트의 타이틀은 사실 처음에는 ‘왜 하는데? 왜 하면 안 되는데?’였다. 24시간을 공연하겠다고 했을 때 선생님의 친구 중 한 사람은 “왜 하느냐”라고 물었고, 또 다른 친구는 그 말을 듣고 “왜 하면 안 되느냐”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그 물음과 답을 프로젝트의 타이틀로 그대로 담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 누구도 이걸 대체 왜 하느냐고 묻지 않는다.
하지 않으면 안될 이유만이, 우리에게 남아 있다.
강선애 더하우스콘서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