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상장 제도는 상장 관리 시스템을 전제로 설계됐다. 공시와 감사, 주주 감시가 작동하는 환경 안에서 기업을 관리하겠다는 판단이었다. 위험을 없앤 뒤 상장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위험을 제도 안으로 옮겨 관리하겠다는 접근이었다.
투자자들도 이를 받아들인 방식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VC가 기술특례 기업을 볼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문제가 있느냐”가 아니다. 대신 회사가 내부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지, 특정 변수 하나에 의존하지 않고 작동하는지를 본다. 불확실성은 전제지만, 통제 가능성은 필수 조건이다.
이런 기준에 맞추기 위해 기업들도 준비를 해왔다. 지분을 묶고, 의무 보유를 늘리고, 내부 규정을 정비하고 비즈니스 모델을 준비한다. 완벽해 보이기 위한 선택이라기보다, 상장 이후의 관리 환경을 감당할 수 있는 상태임을 보여 주기 위한 조치들이다.
하지만 문제는 상장예비심사 과정에서 나타난다. 이 단계에 들어서면 기술과 사업보다, 회사의 운영과 직접 연결되지 않는 요소가 판단의 중심으로 이동하는 현상들이 자주 발생한다. 회사 경영의 본질로 보기 어렵고, 실제로 회사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지 않는 영역까지 다시 들여다보는 방식이다. 이때 기술특례 상장은 ‘특례’라기보다, 상장 이전에 모든 가능성을 정리해야 하는 절차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이 지점에서 시장과 심사의 시선은 극명히 대비된다. 자본시장은 회사 외부에서 발생한 이슈 자체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시장이 확인하는 것은 그러한 요소들이 회사의 자금 흐름이나 사업, 의사결정에 실제 영향을 주고 있는지이다. 이런 연결고리가 보이지 않으면, 시장은 더 이상 반응하지 않는다. 단순한 외부 이슈는 가격 형성의 변수가 되지 않고, 극단적으로 이런 이슈에 시장은 관심을 두지 않는다.
반면 심사 과정에서 이러한 외부 요소가 회사와 어떻게 연결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 없이 강조되는 경우, 상장 심사는 현재의 회사를 평가하는 절차가 아니라 앞으로 있을지 모르는 가능성을 전제로 결정을 미루는 과정처럼 보이게 된다. 이때부터 기준은 흐려지고, 그 자리를 심사의 재량이 채우기 시작한다.
물론 상장예비심사에 일정한 재량은 필요하다. 다만 그 재량이 명확한 판단 기준을 대신하기 시작하면 문제가 된다. “지금 회사에 실제로 영향이 있는가”보다 “언젠가 문제가 될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해지는 순간, 심사는 끝없이 보수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결과는 개별 기업이 아니라, 시장 전체에 신호로 전달된다.
여기서 다시 기술특례 상장의 역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상장은 위험을 없애기 위한 제도가 아니다. 오히려 위험을 제도 안에서 관리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기술과 사업에 중대한 문제가 없고, 회사가 시장의 관리 체계를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 왜 이 기업을 상장이라는 관리 장치 안으로 들이지 않으려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해진다.
투자자들이 보는 것은 개별 기업의 통과 여부가 아니다. 어떤 기준으로 판단이 내려졌는지가 시장에 주는 메시지다. 기술특례 상장이 “관리 가능한 위험은 제도 안에서 다룬다”는 신호를 준다면 투자는 이어질 것이다. 반대로 “모든 가능성을 사전에 제거하지 않으면 상장은 불가하다”는 신호를 준다면, 시장은 가장 보수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기술특례 상장은 전략산업을 키우기 위한 제도적 선택이었다. 그 선택이 의미를 가지려면, 운용 역시 그 취지를 따라야 한다. 제도는 엄격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엄격함은 책임을 기업에 미리 떠넘겨서 거래소가 책임에서 자유로워지는 방식이 아니라, 어디까지를 상장 이전에 검토하고, 어디부터를 상장 이후의 관리로 맡길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그 기준이 명확해 보일 때, 기술특례 상장은 다시 제 역할을 하게 된다.
알케미스타파트너스 김형일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