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슈프리마에이치큐가 신설 문화 재단인 숨마문화재단에 35억원 상당의 자사주를 무상으로 출연하기로 한 공시를 정정하며 출연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주주가치 제고 측면에서 사회공헌 활동으로 기업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 이익을 늘리는 게 자사주 소각보다 낫다는 취지다.
아울러 슈프리마에이치큐는 잔여 자사주를 소각하는 등 소액주주 달래기에 나섰다. 하지만 주주들은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회사가 앞서 자사주를 계열사에 매각해 의결권을 강화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3차 상법 개정을 앞두고 자사주에 대한 관심이 커진 가운데 금융감독원은 정정 보고서를 엄중히 심사하겠다고 밝혔다.
슈프리마에이치큐 "자사주 무상 출연, 기업가치 제고 효과 기대"
4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달 16일 슈프리마에이치큐는 자사주 52만3591주(4.99%)를 신생 재단인 숨마문화재단에 무상 출연하겠다고 공시했다. 금감원은 19일 '기타 투자사항과 관련한 중요사항'이 누락됐다며 1차 정정명령을 부과했다.1차 정정명령 다음 날인 지난달 20일 슈프리마에이치큐는 무상 출연 사유를 추가 설명한 정정 공시를 제출했다. 숨마문화재단에 자사주를 넘겼다는 자기주식처분결과보고서도 곧바로 공시했다. 추가 정정명령이 부과되기 전 선제 조치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슈프리마에이치큐가 숨마문화재단에 넘긴 52만3591주는 지난달 15일 종가 기준 35억원어치다.
같은 달 22일 금감원은 2차 정정명령을 내렸다. 이번에도 투자 판단과 관련한 중요사항이 누락됐다고 지적했다. 이에 슈프리마에이치큐는 지난 2일 보고서를 정정해 공시했다. 1차 정정명령 후 다음 보고서는 이틀 만에 발표됐지만, 이번 보고서는 2차 정정명령이 부과된 후 약 열흘 만에 제출됐다.
핵심은 자사주 무상 출연의 정당성이다. 슈프리마에이치큐는 최근 공시를 통해 "상법 개정 논의 후 자사주 활용 방안을 검토했다"며 "자사주 무상 출연이 회사가 지속해 온 문화예술 분야 사회 공헌의 취지와 가장 부합한다고 판단해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자사주 소각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선 "(자사주가 소각되면) 의결권 있는 주식 수가 감소해 주주가치 제고 요인이 될 수 있다"면서도 "지속 가능한 사회공헌 활동을 통해 기업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향후 이익을 늘리는 것이 주주가치 제고에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재원 대표 배우자, 숨마문화재단 이사로 활동
최근 공시를 통해 슈프리마에이치큐의 최대주주 이재원 대표의 배우자가 숨마문화재단에 근무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지난달 16일 최초 공시된 주요상황보고서에는 숨마문화재단 관련 정보가 담기지 않았다. 1차 정정명령 후 슈프리마에이치큐는 숨마문화재단의 이사 1명이 대주주의 특수관계인이라고 밝혔다.이후 소액주주를 중심으로 해당 특수관계인이 이 대표의 배우자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슈프리마에이치큐는 최근 공시를 통해 숨마문화재단의 유모 이사가 대주주의 배우자라고 공시했다. 특히 유모 이사는 지난해 9월 자사주 61만1620주를 장외에서 인수한 슈프리마에이치큐 계열사 벵가디아의 대표와 이름, 생년월일이 같다. 슈프리마에이치큐 측은 최대주주 배우자 관련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밝혔다.
슈프리마에이치큐, 지난해 9월 계열사·특수관계인에 자사주 넘겨
슈프리마에이치큐는 사회공헌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주주들은 반발하고 나섰다. 회삿돈으로 매입한 자사주는 소각해 주주가치를 제고해야 하는데, 재단에 무상으로 넘겨 지배력을 강화한다는 지적이다.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지만, 처분 시 의결권이 되살아난다.앞선 사례도 있다. 지난해 9월 슈프리마에이치큐는 계열사와 특수관계인에 자사주를 처분해 의결권을 되살렸고, 지배력을 강화했다. 당시 계열사 벵가디아는 61만1620주, 신동목 슈프리마 부사장은 4만5871주를 장외에서 인수했다. 이 대표 측의 지분율은 41.67%에서 47.95%로 6.28%포인트 높아졌다. 당시 장부가보다 자사주 처분가가 낮아 회사에 15억원의 손실이 발생했지만, 이 대표의 지배력은 강해진 셈이다.
숨마문화재단에 넘어간 지분 4.99%까지 더하면 이 대표 측의 지분율은 52.94%로 절반을 넘게 된다.
슈프리마에이치큐는 이에 대해 "숨마문화재단 임원 중 슈프리마에이치큐 및 대주주와 특수관계에 해당하지 않는 임원으로부터 재단이 슈프리마에이치큐와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운영된다는 확인서를 수령했다"고 밝혔다. 이어 "슈프리마에이치큐 및 대주주와 특수관계인에 있는 이사(유모 이사)는 슈프리마에이치큐와 이해관계가 있는 안건에 대해 재단의 심의·의결 과정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확약서를 제출했다"고 설명했다.
슈프리마에이치큐 "무상 출연, 내부 검토 거쳐…절차상 문제 없어"
무상 출연 후 주주의 반발이 커지자 슈프리마에이치큐는 당근책을 내놨다. 무상 출연 후 남은 자사주 14만2140주(1.36%)를 소각하겠다고 밝혔다.슈프리마에이치큐는 2010년부터 자사주를 꾸준히 취득했다. 취득 당시에는 주가 안정과 주주가치 제고를 목적으로 내세웠다. 이후 임직원 포상을 위해 소량 처분했을 뿐, 자사주를 한 차례도 소각하지 않았다. 지난해 3분기 별도 기준 이익잉여금은 1793억원에 달하지만, 배당도 지급하지 않았다. 자사주 소각이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 이유다.
슈프리마에이치큐 관계자는 "추가 자사주 매입·소각 및 배당에 대해 현재 구체적으로 결정된 사항은 없다"며 "이번 자사주 무상 출연은 내부 검토를 거쳐 관련 법령에 따라 절차상 문제가 없다고 판단해 진행했다"고 말했다.
회사는 문제가 없다지만 주주들은 무상 출연 철회를 요구하며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한 주주는 "자사주 무상 출연 관련 이사회 의사결정 기록 공개, 지분 가치 희석에 따른 피해 보상 등을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슈프리마에이치큐에 발송하겠다"고 말했다.
3차 상법 개정을 앞두고 자사주 처분 방법에 대한 관심이 커 금감원도 보고서를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자사주 관련 내용은 중점적으로 보고 있다"며 "(슈프리마에이치큐의) 자사주 무상 출연 경위 등이 충실하게 기재됐는지 엄중하게 심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진영기 한경닷컴 기자 young7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