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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서 두 시간, 후지산이 빚은 시간을 마시다 [김성우의 사케 본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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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서 두 시간, 후지산이 빚은 시간을 마시다 [김성우의 사케 본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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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의 복잡한 빌딩 숲을 뒤로하고 서쪽으로 두 시간 남짓 달리면 공기부터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창밖으로는 일본의 상징이자 영산인 후지산이 거대한 위용을 드러내고, 그 발치에는 보석처럼 투명한 호수 가와구치코가 넓게 펼쳐진다. 이곳 가와구치코는 사계절 내내 풍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하지만, 특히 바람이 잦아든 날 호수 면에 거꾸로 비치는 후지산의 모습은 보는 이의 숨을 멎게 할 만큼 신비롭다.

    이 아름다운 호숫가 마을은 해발 850미터에 위치한 고지대이다. 한여름에도 선선한 기운이 돌고 겨울이면 매섭게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는데, 이 서늘한 기후야말로 맛있는 술이 익어가기에 더없이 좋은 조건이 된다. 이 호수 근처에서 무려 170년 넘게 후지산의 정기를 술병에 담아오고 있는 이데 양조장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알고 마시면 더 맛있는 니혼슈
    우선 니혼슈에 대한 이야기부터 짧게 하고 지나가자. 우리가 흔히 사케라고 부르는 단어는 사실 일본에서 모든 술을 통칭하는 일반적인 말이다. 그 중에서도 쌀로 빚은 맑은 전통주는 정확히 '니혼슈'라고 불러야 그 의미가 명확해진다. 니혼슈는 쌀과 물, 그리고 누룩이라는 단순한 재료로 만들어지지만 그 안에는 수백 년을 이어온 장인 정신이 응축되어 있다.


    니혼슈를 처음 접할 때 가장 헷갈리는 것이 바로 등급이다. 하지만 기준만 알면 의외로 이를 분류하는 방법을 익히는 것은 간단하다. 우선 양조 알코올을 넣었는지에 따라 이름이 달라진다. 오로지 쌀과 누룩, 물로만 빚은 순수한 술은 '준마이'라고 부른다. 반면 향을 더 풍부하게 하거나 맛을 깔끔하게 만들기 위해 아주 소량의 주정을 넣은 술은 보통 '준마이'라는 단어를 떼고 부른다.

    여기에 쌀을 얼마나 깎아냈느냐에 따라 한 번 더 이름이 붙게 된다. 쌀의 바깥쪽에는 단백질과 지방이 많아 이를 많이 깎아낼수록 술맛이 깨끗하고 향기로워진다. 쌀을 40% 이상 깎아내고 60% 이하만 남겨 빚으면 '긴조', 절반 이상인 50%를 깎아내고 그 핵심만 사용해 정성껏 만들면 최고급인 '다이긴조'라는 이름이 붙게 된다. 그러니까 '준마이 다이긴조'라고 쓰여 있다면, 쌀을 절반 넘게 깎아 만든 가장 순수하고 고급스러운 술이라고 이해하시면 된다.


    니혼슈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마치 정교한 시계 부품을 맞추는 일처럼 섬세하다. 먼저 엄선된 쌀을 깎는 정미 과정을 거친 뒤, 쌀을 씻고 물에 불려 증기로 쪄낸다. 이 찐 쌀의 일부에 누룩곰팡이를 번식시켜 '누룩'을 만드는 것이 양조의 시작이다.

    니혼슈의 발효는 독특하다. 누룩곰팡이가 쌀의 전분을 당으로 분해하는 작업과, 그 당을 효모가 먹고 알코올을 만들어내는 작업이 하나의 통 안에서 동시에 일어난다. 이 과정에서 쌀과 물속에 들어있는 미네랄과 단백질 성분들이 어우러지며 니혼슈 특유의 다채로운 맛과 향을 만들어낸다. 양조장의 장인들은 이 발효 통의 온도를 맞추기 위해 겨울철 추위 속에서도 밤잠을 설치며 술의 상태를 살핀다. 그렇게 수십 일의 시간이 흐르고 술을 짜내어 거르면 우리가 마시는 맑은 니혼슈가 탄생한다.
    후지산의 시간을 마시는 곳, 이데 양조장

    이데 양조장은 가와구치코 역에서 호수 방향으로 조금만 걷다 보면 만날 수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이곳의 시작은 170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에는 간장과 된장을 만드는 곳이었는데, 1850년경 제16대 가주인 이데 요고에몬은 후지산의 맑은 물과 이곳의 추운 기후가 술을 빚기에 최적이라는 점을 발견했다. 그때부터 주조업으로 전향해 현재 21대 가주에 이르기까지 가업을 이어오고 있다.





    이데 양조장 술맛의 비결은 단연 물에 있다. 이데 양조장은 니혼슈를 만들 때 후지산 정상에 내린 눈과 비가 현무암 층을 뚫고 지하로 스며들어 무려 80년에서 10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자연 여과를 거친 복류수를 사용한다. 인고의 시간을 거치며 불순물은 사라지고 적절한 미네랄만 남은 이 물은 술의 질감을 비단처럼 부드럽게 만들어준다. 우리가 오늘 마시는 술 한 잔에는 100년 전 후지산에 내렸던 눈이 담겨 있는 셈이다.


    이데 양조장은 특히 '저온 장기 발효'라는 방식을 고집한다. 해발 850미터의 추운 기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인데, 기온이 낮으면 효모가 천천히 활동하며 술의 향을 더욱 섬세하고 깊게 만들어준다. 또한 과거 간장을 빚던 가문답게 미생물을 다루는 솜씨가 남다르다. 양조장 곳곳에 배어있는 오랜 발효의 노하우는 현대적인 설비와 만나 이데 양조장만의 깨끗하면서도 힘 있는 주질을 완성한다.
    행운을 여는 술, 카이노카이운의 세계
    이데 양조장을 대표하는 브랜드 '카이노카이운(甲斐の開運)'은 야마나시현의 옛 이름인 '카이(甲斐)'의 행운을 연다(開運)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름처럼 마시는 이에게 복을 가져다줄 것 같은 이 술은 양조장 내부의 정갈한 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손님을 맞이한다.

    숍 안으로 들어서면 1.8리터의 커다란 병부터 선물하기 좋은 작은 병까지 그 종류가 상당하다. 특히 세계적인 주류 품평회인 IWC에서 수상한 경력이 있는 '다이유호 준마이' 등은 그 품질을 이미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술들이다. 이데 양조장의 술들은 전반적으로 입안에서 느껴지는 첫맛은 아주 부드럽고, 끝맛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떨어지는 것이 공통적인 특징이다.


    카이노카이운은 단순히 등급에 따라 맛이 다른 것을 넘어, 각 술마다 저마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어떤 술은 후지산의 거친 산세를 닮아 묵직하고 드라이하며, 어떤 술은 호숫가에 핀 꽃처럼 화사하고 부드럽다. 취향에 따라 골라 마시는 재미가 있는 브랜드다.
    페어링하면 열리는 새로운 세계
    이데 양조장의 니혼슈들은 각각의 라인마다 뚜렷한 개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페어링했을 때 잘 어울리는 음식들도 차이가 있다.

    카이노카이운의 준마이 다이긴조는 향이 화사하고 섬세해서 양념이 강하지 않은 음식과 궁합이 좋다. 우리가 평소에 즐겨 먹는 광어나 도미 같은 흰 살 생선회 한 점을 간장에 살짝 찍어 이 술과 곁들이면 술의 은은한 과실 향이 생선의 단맛을 기분 좋게 끌어올려 준다. 의외로 편의점에서 파는 신선한 리코타 치즈 샐러드나 가벼운 샌드위치와도 잘 어울리는데, 치즈의 고소함이 술의 산뜻한 산미와 만나 입안을 아주 깔끔하게 정리해 준다.



    끝맛이 약간 칼칼하고 드라이한 준마이 긴조는 기름진 음식의 느끼함을 잡아주는 데 탁월하다. 우리가 자주 먹는 프라이드치킨이나 돈가스, 혹은 고소하게 구운 고등어구이와 함께 마시면 입안에 남은 기름기를 술의 깔끔한 맛이 싹 씻어내 주어 다음 한 입을 더 맛있게 만들어준다.

    쌀 특유의 구수한 풍미와 감칠맛이 살아있는 준마이슈는 따뜻한 국물 요리와 찰떡궁합이다. 요즘처럼 추운 날씨에 편의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어묵탕이나 집에서 끓인 소고기무국, 혹은 짭조름한 간장 베이스의 조림 요리와 곁들이면 훌륭한 궁합을 발휘할 것이다. 이 술은 상온에서 마셔도 좋지만 살짝 데워 마시면 음식의 감칠맛과 술의 단맛이 입안에서 둥글게 섞이는 포근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데 양조장의 매실주(우메슈)는 사케를 베이스로 만들어 인위적인 단맛이 덜하고 산뜻하다. 식사를 마친 뒤 가벼운 크래커나 과일, 혹은 바닐라 아이스크림 한 스쿱에 이 매실주를 살짝 뿌려 먹으면 별다른 준비 없이도 근사한 디저트 타임을 가질 수 있다.



    이데 양조장은 단순히 술을 제조하는 공장이 아니다. 후지산이 선물한 물과 21대를 이어온 가족의 역사가 층층이 쌓인 박물관이자 지역 문화의 거점이다. 최근에는 위스키 증류소를 함께 운영하며 새로운 시대의 맛을 찾으려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야마나시현에 갈 일이 있다면 가와구치코 호숫가를 천천히 산책하고 난 뒤, 양조장 한쪽에서 후지산의 정기가 담긴 술 한 잔을 기울여보시길 권한다. 100년이라는 기나긴 시간을 지나 우리에게 온 그 투명한 물줄기가 전해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왜 우리가 이 한 잔의 술을 '문화적 결정체'라고 부르는지 자연스럽게 깨닫게 될 것이다. 다음 여행에서는 당신의 취향을 일깨워줄 후지산의 행운을 한 잔 따라보는 건 어떨까.

    김성우 법률사무소 솔라리스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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