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까지 가서 요가를 하면 뭐가 좋은가요?" (도둑이 제 발 저린다 하겠지만, 나에게는 이 질문이 이렇게 들린다 ? 굳이 요가라는 걸 하러 비행기까지 타고 5000km 떨어진 인도까지 갈 필요가 있나요? 당신은 정말 특이한 사람이군요!?)
지난해 요가를 위해 혼자 인도를 5번이나 갔다는 이야기를 하면 가장 자주 듣는 질문이다. 심지어 작년이 태어나서 첫 인도 방문이었다. 나도 한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매트는 집에 있고, 요가는 한국에서도 배울 수 있다. 내면의 수양을 위한 삿구루(Sadhguru, 이샤재단의 설립자)의 강연도 유튜브 클릭 하나면 볼 수 있는 편리한 시대다.
2023년 초, 이샤하타요가를 처음 접했을 때는 한국에서 꾸준히 수련을 하다가 아이들을 독립시킨 뒤 60대 쯤 되어서 인도를 가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굳이 비행기를 여러 번 갈아타고, 언어, 문화, 음식, 환경 모두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낯선 인도에, 관광도 아닌 요가 때문에 혼자서 갈 이유가 있을까.
첫 생각과 달리, 결국 3년 후 홀홀단신 남인도 타밀나두주의 작은 도시 코임바토르로 향했다. 정확히는 코임바토르 국제공항으로부터 택시로 1시간 반, 벨리앙기리 산기슭 아래 드넓은 평지에 자리한 이샤요가센터였다.
이샤요가센터는 인도 코임바토르를 중심으로 전 세계 300개 이상의 센터와 1700만 명 이상의 자원봉사자 네트워크를 가진 국제적 수행 공간이다. 매년 2회 열리는 삼야마(Samyama) 같은 심화 과정에는 회당 3000명 이상이 여러 국가에서 참여한다는 점에서도 그 영향력을 보여 준다.
이샤재단의 창시자 삿구루는 전 세계에 영향력을 가진 수행 지도자로, 깊이 있으면서도 실용적인 요가·명상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공유하고 있다. 공식 유튜브 구독자는 약 1260만명, 누적 조회수는 20억 건에 달할 정도다. 그가 만든 명상 앱 미라클 오브 마인드(Miracle of Mind)는 런칭 직후 15시간 만에 100만 다운로드를 돌파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이샤요가센터가 있는 코임바토르까지 가는 여정은 친절하지 않다. 직항이 없어 싱가포르에 밤 12시에 도착해 면세구역 영업이 종료한 공항에서 쪼그려 대기하다, 새벽 4시가 되어서야 좁은 인도 저가항공으로 갈아탔다. 에어컨을 남극의 바람처럼 차갑게 틀어주는 비행기를 타고 해뜰 무렵 인도에 도착하면, 다시 택시를 타고 매연 가득한 울퉁불퉁한 길을 달린다 (도심을 벗어나 센터에 도착하면 공기가 깨끗하다). '요가하러 가는 길이 소림사에 무술 배우러 가는 것처럼 이렇게 험난해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든다.
재미있는 건 이 과정이 이미 준비운동처럼 작용한다는 점이다. 일상의 리듬이 끊기고, 익숙한 얼굴들과 언어가 사라지고, 휴대폰 신호도 불안정해진다. 길가에 소들과 떠돌이 개들이 즐비하다. 장례식장처럼 검정색 의복이 즐비한 한국과 달리 곳곳에 알록달록한 총천연 색깔을 입고 있다. 자동으로 하던 생각과 반응이 더 이상 습관처럼 작동하지 않는다. 일상의 익숙함이 사라지면서, 주의력이 돌아오고 감각이 또렷해진다.

이샤요가센터 안(아쉬람)으로 들어가면 거대한 명상 공간과 상징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사진으로 많이 보았던 조형물도 실제로 보면 스케일이 다르다. 관광지가 아니라 수행 공간이라는 느낌이 먼저 온다. 그러면서 모든 것이 자연의 공간과 어우러지고 어떤 관광지보다 아름답다. 누군가는 이것을 '에너지'라고 부르고, 누군가는 '환경 설계'라고 부를 것이다. 어떤 표현이든, 사람의 주의를 자연스럽게 내면으로 향하게 하는 구조라는 점은 분명하다.
우리는 변화가 의지력에서 나온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구조가 행동을 만든다. 공부가 안 될 때 카페에 가서 하고, 집중이 필요할 때 휴대폰을 끄는 것도 환경을 통한 행동설계다. 운동선수가 합숙 훈련을 하고, 작가가 집필을 위해 시골 별장에 내려가는 이유도 같다. 장소가 달라지면 선택지가 줄고, 집중도가 올라간다.
사람은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아니다. 의지만으로 달라질 것이었으면 인류는 벌써 수천년 전에 슈퍼히어로가 되었을 거다. 입력하는 조건을 달리 하지 않으면, 마음을 수백번 먹더라도 결과값은 달라지지 않는다.
요가와 명상도 같은 원리다. 집은 편안하지만 동시에 산만하다. 같은 공간에서 ‘의지만으로’ 전혀 다른 상태로 들어가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거나 불가능에 가깝다. 반면 수행 중심으로 설계된 공간인 이샤요가센터에서는 하루의 구조가 단순하다. 소음의 종류가 다르고, 동선이 제한되며 주변 사람들의 관심 방향이 같다. 이것만으로도 주의의 밀도가 달라진다.
특히 명상 공간인 디야나링가(Dhyanalinga)에서는 이상하게 자세가 저절로 정리된다. 앉아서 눈을 감으면 허리가 펴지고, 숨이 편안하고 깊어진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가르쳐준 적이 없는데도 저절로 명상적 상태가 된다. 고객과 미팅룸에서 목소리가 낮아지는 것과 비슷하다. 공간의 분위기가 행동을 만들어준다.

나는 직업상 늘 말하고, 설명하고, 설득한다. 그런데 그곳에서는 말을 거의 안한다. 하루 종일 한마디도 안하는 때도 있다. 하기 싫거나 어려워서가 아니라, 말이 꼭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침묵으로 모든 것을 비울 때, 나의 존재가 더 충만해지는 느낌이었다. 아쉬람에서 한국에 돌아와서도, 더 적은 말과 중간의 침묵으로 훨씬 효과적으로 의사를 전달할 수 있게됐다.
요가의 방식도 달랐다. 한국에서의 요가는 잘 설계된 신체 운동에 가깝다. 유연성, 코어, 균형, 통증 완화, 몸매. 물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유용하다. 하지만 수천년간 내려온 정통요가에 변형을 가하지 않은 이샤하타요가는 결이 조금 달랐다.
이샤의 요가는 인도 전통 요가 중에서도 특정 동작이나 유행을 앞세우기보다, 수천 년간 내려온 하타요가를 변형 없이 체계화해 전수하는 드문 수행 시스템이다. 설립자인 삿구루는 요가를 종교나 신념이 아닌 ‘인간의 상태를 다루는 기술’로 정리해 전 세계에 동일한 기준으로 가르치고 있다.
또 그 중심에 있는 이샤요가센터는 수행 목적만을 위해 환경 전체가 설계된 공간이다. 그래서인지 아쉬람에서 요가를 할 때 동작 하나, 호흡 하나가 단순히 신체의 단련이 아니라 내면의 상태, 더 나아가 내 존재를 감싸는 환경과도 직접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더 또렷하게 느껴졌다.

새벽에 일어나 요가 수행을 마치면 단순히 기분이 좋아지는 정도가 아니라 두뇌가 작동하고 감정이 생겨나는 방식 자체가 달라진다. 불필요한 반응이 줄어들기 때문에, 목표하는 해결책에 도달하는 전체적인 속도는 오히려 빨라진다. 변호사 업무로 치면, 상대방이 뭐라고 도발하든 전체 구조를 제대로 파악해서 내게 필요하고 이로운 말만 하는 식이다.
수행을 거듭할 수록, 요가와 명상이 누워서 자는 것을 대신한 '쉼'이 아니라 '정렬'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 호흡, 주의력이 한 방향으로 정렬되면 에너지 누수가 줄어든다. 그래서 덜 피곤하고, 덜 흔들린다. 그리고 어떤 상황이라도 ? 심지어 남들이 보기에 고통스러울 거라 생각되는 상황도 ? 즐길 수 있게 된다.

물론 아쉬람 안에서 낭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찬물로 샤워해야 하고, 돌과 흙바닥을 맨발로 걸어다녀야 하며, 길에서 휴대폰을 하거나 사진을 찍을 수 없고, 음식도 손으로 먹어야 한다. 하루 일과가 늦어도 새벽 5시30분에 시작하고, 10시 전에는 불을 끄고 자야한다. 오전 10시와 오후 6시 이샤요가센터에서 무료로 제공되는 브런치와 저녁을 먹는 것을 빼고는 하루의 모든 시간이 요가와 명상에 할애된다.
그래서, 진짜 다를까?
결론을 단정적으로 말하면 이렇다. 기술은 어디서나 배울 수 있지만, 상태(state)는 환경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인도에 간다고 자동으로 깊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깊어질 조건은 훨씬 많이 제공된다. 방해 요소가 줄고, 같은 방향을 보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 또 건축물과 조형물, 길가에 심어진 나무 하나, 길의 모양과 거기 놓인 돌맹이까지 내면을 향하는 게 수월해지도록 설계돼 있다. 이러한 환경은 생각보다 큰 차이를 만든다. 이곳을 한번 경험하고 나면 한번만 갈 수 없게 되는 이유이다.

사람은 의지로만 변하는 존재가 아니라 환경과 주변 집단의 영향을 받는 존재다. 그렇기에 비단 요가와 명상 뿐 아니라, 내가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공간에서 어떤 사람들과 지내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환경이 나를 도와줄 때 내가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를 체험하고 난 후에는, 한국에 돌아와서도 나를 북돋는 장소와 사람들 곁에 있으려 노력한다. 인생에서 주어진 유한한 시간과 에너지를 굳이 불필요한 마찰로 소모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인도에서 돌아오는 길에 코임바토르 공항에 다시 가면, 처음 도착할 때와 달리 몸과 마음 모두 에너지가 꽉 차 있는 느낌이다. 한국에 돌아가서 해야 할 일은 산더미인데, 오히려 기대하게 된다. 맞이해야 하는 상황은 그대로지만, 외부를 대하는 내면의 자세가 달라져 있기 때문이다.
요가와 명상을 왜 하느냐는 질문에, 예전에는 "건강에 좋아서"라고 답했다. 지금은 이렇게 답한다. 요가와 명상은 나의 몸과 마음을 더이상 극복해야 할 '장애물'로 느끼지 않게 해주기 때문이라고.
글·사진=신선경 법무법인리우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