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본시장이 거대한 리레이팅 시기에 진입했다. 코스피지수는 지난해 초 2600선에서 출발해 마침내 심리적 저항선이던 5000포인트를 넘어 최근엔 장중 5300선까지 찍는 역사적 이정표를 세웠다. 증시가 가파르게 치솟으면 환희와 상대적 박탈감이 교차하기 마련이다. 해외발 악재로 급락할 때면 공포가 시장을 지배하기도 한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서 있는 좌표를 명확히 읽어내야 한다.이번 상승장의 1차 동력은 정부 주도의 밸류업 프로그램과 상법 개정을 통한 ‘거버넌스 정상화’다. 그동안 한국 증시를 옥죄어온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본질은 불투명한 경영 관행과 그에 따른 구조적 저평가였다. 하지만 이사의 충실 의무를 주주 전체로 확대하는 제도적 결단은 시장에 강력한 신호를 보냈다. 금융이 단순히 자금을 중개하는 단계를 넘어, 기업의 실질 가치를 주주와 공유하는 본연의 역할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한국 산업은 ‘피지컬 인공지능(AI)’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장착했다. 조선, 방위산업, 자동차 등 주력 산업은 이제 전통적인 제조를 넘어 AI와 로봇 기술이 결합한 ‘모빌리티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제조 기업에 적용되던 한 자릿수 주가수익비율(PER)의 굴레를 벗고, 테크 기업으로서 높은 멀티플을 부여받는 구조적 재평가가 시작됐다. 산업 분산 효과를 통한 ‘안티 프래질(anti fragile)’ 구조도 강점이다. 한국은 반도체, 자동차·배터리, 조선·방산·우주, 바이오 등 핵심 산업이 견고한 포트폴리오를 이루고 있다. 반도체가 숨을 고를 때 방산과 자동차가 지수를 지탱하는 유기적 순환 구조는 변동성을 낮춘다.
이번 주 들어 나타난 급락의 원인을 두고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 교체나 중국 투기자본 이탈 등 여러 진단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본질은 명확하다. 단기간에 가파르게 올랐기에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조정일 뿐이다. 영원한 우상향은 환상에 가깝다. 역사가 증명하듯 거대한 리레이팅 국면은 언제나 극심한 변동성을 통과해야 한다.
이는 위기가 아니라 오히려 시장이 견고해지는 건강한 신호다. 1980년대 미국 증시는 산업 재편의 산통 속에서 ‘블랙 먼데이’라는 폭락을 이겨냈고, 일본 역시 아베노믹스 초기 급등락을 반복하며 체질 개선에 성공했다. 상승장은 매끈한 직선이 아니라 공포와 조정이 뒤섞인 곡선 위에서 완성된다. 나무가 더 깊이 뿌리 내리기 위해 잠시 성장을 멈추듯, 시장 역시 다음 도약을 향한 ‘숨 고르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의 변동성 역시 거대한 체질 변화 과정에서 치르는 자연스러운 ‘통과의례’다. 모든 위대한 상승장은 조정을 거치며 더 단단해졌다. 하루의 공포에 휘둘려 시장을 떠나지 말고, 이 거대한 변화의 흐름에 끝까지 올라타 있는 것이 중요하다. 숫자에 일희일비하기보다, 우리 경제의 기저가 바뀌는 역사적 전환점에 몸을 실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