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료 문제에 정부가 관여하지 말라는 주장은 국가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이재명 정부 의료 혁신의 방향타를 쥔 정기현 의료혁신위원장은 3일 기자와 만나 의료 정책을 둘러싼 갈등을 ‘통치’라는 근본적인 관점에서 정의하며 이같이 밝혔다. 이는 의대 증원과 지역·필수의료 체계 개편 등 정부 주도의 의료 개혁을 ‘전문성 부족’이라 규정하며 반발해온 의사 단체의 논리를 반박한 것이다.
의료혁신위는 국무총리 직속 의료 정책 자문기구로 지난해 12월 설립됐다. 2022년 국립중앙의료원(NMC) 원장 퇴임 후 정책 현장을 떠나 진료에만 전념했던 정 위원장은 보건복지부의 요청을 받고 고심 끝에 위원장직을 수락했다. 정 위원장은 “NMC 원장을 하면서 노숙자,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환자 등 국가가 나서지 않으면 의료 체계가 닿지 않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실감했다”고 했다.
그가 보는 의정 갈등의 뿌리는 ‘불신’이다. 정 위원장은 “정부 의도에 대한 의심이 커진 상황에선 어떤 개혁안도 현장에서 힘을 얻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이 불신의 고리를 끊어낼 ‘제3의 주체’로 국민을 지목했다. 위원회 운영 방식이 전문가들만의 밀실 논의에서 벗어나 국민의 목소리를 직접 반영하는 ‘수평적·참여형’ 구조로 설계된 이유다.
이 같은 운영 원칙에 따라 위원회는 특정 의제를 미리 배제하기보다 사회적 논의를 통해 기준을 만들어가는 데 방점을 두고 있다. 정 위원장은 “탈모약 건강보험 적용 같은 의제도 충분히 논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며 “중요한 것은 어떤 의제가 올라왔을 때, 우리 사회가 납득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드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복지부 업무보고에서 언급한 ‘감기 등 경증질환 보장 축소를 통한 필수의료 수가 인상’ 방향의 건강보험 보상체계 개편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정 위원장은 “국민들이 건강보험을 신뢰하는 이유는 의료비 부담이 일상에서 크게 체감되지 않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감기 환자의 본인 부담을 크게 늘릴 경우, 정책 취지와 무관하게 즉각적인 불편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책의 방향이 타당하더라도, 국민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대한 고려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정 위원장은 의료 혁신의 핵심 선결 과제로 체계 내에 고착화된 ‘수익 구조의 왜곡’을 정조준했다. 그는 “현재 대형 병원들이 외래 환자 확보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경증 환자를 많이 볼수록 수익에 유리한 구조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정부가 나서 상급종합병원이 본연의 역할인 중증 환자 중심으로 작동하도록 과감한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의료 혁신은 일부 대형병원의 승리로만 끝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현장의 모순을 파고드는 정 위원장의 시각은 오랜 시간 지역 의사로 살아온 경험에 뿌리를 두고 있다. ‘서울 토박이’인 그는 의사로서의 시간 대부분을 전남 순천에서 보냈다. 정 위원장은 “서울에서 중앙의 시각으로만 보면 지역의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결국 수도권이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구조가 된다”고 했다.
위원회는 연말까지 의료 혁신 로드맵을 정리할 계획이다. 향후 국민 참여를 활성화하기 위해 3월부터는 온라인 플랫폼을 운영한다.
이민형 기자 mean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