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은행이 보유 중인 장부가 37조엔 상당의 상장지수펀드(ETF) 매각을 시작했다. 기준금리 인상 기조를 유지한 가운데 국채 매입을 줄이는 ‘양적 긴축’에 나선 데 이어 ETF 매각이라는 ‘질적 긴축’까지 시작한 것이다. 2010년대 들어 ‘양적·질적 완화’(QQE)로 불리는 대규모 금융 완화 정책을 편 일본이 금융 정상화로 가는 마지막 문을 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3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은행은 ETF 및 부동산투자신탁(REIT) 매각을 지난 1월 개시했다. 1월 매각액은 장부가 기준 ETF가 53억엔, REIT는 1억엔이었다. 1월 말 기준 일본은행이 보유한 장부가 기준 ETF는 37조1808억엔, REIT는 6547억엔 규모다. 시가 기준으로는 작년 9월 말 기준 ETF 83조2000억엔, REIT 8000억엔어치를 보유하고 있다.
일본은행은 작년 9월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장부가 기준 ETF를 연간 3300억엔, REIT는 50억엔 정도씩 처분하기로 결정했다. 주가 급락 같은 시장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시장 전체 매매대금에서 차지하는 ETF와 REIT 매각대금 비중을 각각 0.05% 정도로 잡았다. 당시 우에다 가즈오 총재는 “(전부 처분하는 데) 단순 계산으로 100년 이상 걸린다”며 “시장 혼란을 피하기 위해 조금씩 진행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했다.
2012년 말 재집권한 아베 신조 총리는 2013년 디플레이션 탈출을 위해 ‘차원이 다르다’는 의미의 이차원(異次元) 완화를 내걸고 일본은행을 통해 이른바 ‘바주카포 머니’를 쐈다. 무제한으로 국채를 매입해 장기 국채 금리 상승을 억제(YCC)하고,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했으며 ETF 매입까지 동원했다.
꿈쩍 않던 일본의 물가가 들썩이기 시작하자 일본은행은 금융 정상화의 길로 들어섰다. 2024년 3월 17년 만에 기준금리를 인상하며 2016년부터 이어온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폐기했다. 2024년 8월부터는 국채 매입 시 분기 단위로 월 매입액을 4000억엔씩 줄이는 양적 긴축을 시작했다. 이제 ETF 매각까지 시작하며 질적 긴축에 나섰다.
시장에선 일본은행이 언제, 어떻게 ETF를 처분할지 주목하고 있었다. 일본은행이 ETF 매각에 쉽게 나설 수 없었던 것은 주가 하락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닛케이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자 ‘ETF를 팔아도 되겠다’는 판단이 섰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이날도 닛케이지수는 한때 54,782까지 오르며 장중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도쿄=김일규 특파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