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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초 만에 온수 콸콸' 세계 홀린 기술…중국에 안방 뺏길 판 [김리안의 에네르기파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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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초 만에 온수 콸콸' 세계 홀린 기술…중국에 안방 뺏길 판 [김리안의 에네르기파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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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한국은 단순 전력 소비국을 넘어 전기화 설비를 공급하는 ‘생산형 전기국가’로의 도약을 결정짓는 중대한 분기점에 서 있다. 탄소중립을 넘어 우리 기술로 미래 산업 생태계를 재편하는 국가 생존 전략 ‘한국형 녹색전환(K-GX)’을 통해서다. K-GX의 핵심 시험대는 전체 에너지 소비의 절반에 육박하는 열에너지를 전기로 전환하는 히트펌프로 볼 수 있다.

    전체 에너지 소비의 48%를 차지하는 열에너지를 전기로 바꾸는 핵심 기술이라는 점에서다. 덴마크공과대는 화석연료 난방을 대체하는 히트펌프를 전기차와 함께 전기화의 양대 축으로 평가했다. 실제로 유럽과 북미에서는 히트펌프 시장이 연평균 11.8%씩 성장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문제는 한국의 현실이다. LG전자와 삼성전자가 유럽 시장 점유율을 각각 5%씩 차지하는 등 글로벌 무대에서 히트펌프 기술력을 이미 입증했지만, 최근 2년 새 중국산 저가 공세로 가격 압박이 커지고 있다. 반면 국내 내수는 사실상 공백 상태다. 해외에서 경쟁력을 인정받은 기술이 정작 국내 수요 부재로 제조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역설적 상황에 처해 있다.
    히트펌프도 중국산 공세 시작
    0.1초, 화장실 수도꼭지를 틀자 온수가 나온 건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였다. 최근 찾은 전북 김제 LG전자 모듈러 주택 ‘스마트코티지’. 방문 당일 바깥 기온은 영상 3도였지만 스마트코티지 실내에는 20도의 온기가 감돌았다. 건물 한쪽에 설치된 90kg짜리 히트펌프 실외기와 200리터 용량의 축열조 덕분이다. 히트펌프가 데운 물이 바닥 배관을 따라 흐르며 온돌 효과를 내고 있었다.

    히트펌프는 전기를 사용해 외부 공기의 열을 흡수한 뒤, 이를 냉매에 전달해 압축함으로써 고온의 열을 만든다. 이렇게 얻은 열로 물을 데워 난방과 급탕에 활용하는 방식이다. 보일러와 달리 연소 과정이 없어 직접 탄소배출량이 제로(0)다.


    히트펌프는 단순 난방기기를 넘어 에너지 시스템의 일부로 작동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박덕열 기후에너지환경부 수소열산업정책관(국장)은 “남는 전기를 열로 전환해 저장하는 히트펌프 축열조는 고가의 에너지저장장치(ESS)를 보완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했다.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완화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현실의 벽은 높다. 첫째는 가격이다. 실외기와 축열조 등 초기 비용이 약 1200만원으로, 100만원 수준의 가스보일러보다 10배 이상 비싸다. 누진제 기반의 전기요금 체계 역시 부담이다. 난방까지 전기로 해결할 경우 겨울철 전기요금이 폭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순간 가열이 어려운 히트펌프 특성상 대형 축열조 설치가 필수라는 점도 걸림돌이다. 국내 주거 형태의 80% 가까이가 공동주택인 상황에서, 축열조를 지하 기계실 등 공용 공간에 설치해야 한다. 그 결과 추가 하중과 함께 ‘잡아먹는 공간’이 발생한다는 의미다.

    중국은 이미 히트펌프 보급 단계를 넘어 제조·공급망까지 갖춘 산업화 단계로 접어들었다. 2018년 ‘석탄을 전기로 바꾼다’는 매개전(煤改?) 정책을 통해 히트펌프 설치비의 자부담 비율을 10% 수준으로 낮춘 결과다. 현재 중국 내 히트펌프 제조사만 70여 곳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내수 기반으로 기술력 높여야
    업계에서는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권민호 LG전자 상무는 "현재 한국 기업들이 만드는 히트펌프는 해외 수요에만 의존하는 구조"라며 “막대한 내수로 재고와 가격 변동을 흡수할 수 있는 중국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 북미 등 선진국 시장을 뚫을 만큼의 기술을 확보했지만, 정작 안마당인 내수가 비어 있어 공급망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토로다. 내수 시장이 없다 보니 국내 기업들이 생산기지를 한국에 둘 유인도 약하다. 현재 LG전자는 중국 톈진에, 삼성전자는 쑤저우에 히트펌프 생산 거점을 두고 있다.

    정부는 2035년까지 히트펌프 350만 대 보급을 목표로 설치비의 자부담 비율을 30~40% 수준으로 낮추고, 전용 전기요금제를 도입할 방침이다. 정부 관계자는 “별도 요금제가 설계될 경우 초기 설치 비용은 4년 내로 회수가 가능하다”며 “건물의 단열·기밀 성능을 높이는 패시브 설계를 병행하면 히트펌프 용량을 더욱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신축 아파트의 경우 공동공간에 축열조를 설치할 경우 용적률 상향 등의 인센티브도 검토하고 있다. 일부 기업들은 자체적으로 히트펌프 구독 서비스를 도입해 가격 부담을 낮출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단순한 보조금 확대를 넘어 정교한 ‘시장 방어 전략’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 전문가는 “난방효율(COP) 기준을 차등화해 외국산 히트펌프에 보조금이 무차별적으로 흘러들어가지 않도록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구온난화지수(GWP)가 높은 냉매 사용을 제한하는 ‘키갈리 개정서’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동욱 한국환경산업기술원 친환경생활처장은 “유럽 기준에 맞춘 친환경 냉매(R32) 전환을 정책적으로 앞당겼고, 국내 기업들도 그 기준에 맞춰 제품을 업그레이드하고 있다”고 말했다. 저가 중국산이 쉽게 넘지 못할 기술 장벽들을 구축하자는 취지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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