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광학은 빛의 흡수·방출 신호(스펙트럼)를 통해 물질의 성분과 상태를 분석하는데 핵심 기술로 생물학, 재료과학, 의학 등에 광범위하게 쓰인다. 그러나 잡음이 많고 여러 신호가 겹친 데이터는 숙련된 전문가가 참고 스펙트럼과 일일이 대조하는 수작업 해석에 의존해 왔다. KAIST 연구진이 이런 한계를 줄이기 위해 분광 데이터를 인공지능(AI)으로 자동 판독하는 ‘심층 분광해석’ 기술을 구현했다.
박상후 KAIST 원자력및양자공학과 교수 연구팀은 잡음·오염·결손이 많고 복잡하게 뒤섞인 분광 데이터를 전문가 없이도 실시간으로 해석할 수 있는 AI 기반 기술을 개발했다고 3일 밝혔다. 연구팀은 스펙트럼을 개별 수치의 집합이 아니라 하나의 ‘이미지’처럼 인식하도록 모델을 설계해, 전체 패턴을 학습시키는 방식으로 물질 정보를 추정하도록 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이 방식은 데이터에 잡음이 섞이거나 일부 구간이 손실된 상황에서도 물질 특성을 안정적으로 찾아내는 성능을 보였다. 또 예측 결과가 과학적으로 타당한지를 스스로 점검하는 기능을 갖춰, 현장에서 즉시 쓰이는 진단·제어용 분석의 신뢰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검증은 대기화학·플라즈마화학 분야에서 널리 쓰이는 흡수 분광 데이터로 진행됐다. 연구팀은 복잡하게 겹친 신호 속에서 오존과 질소산화물 등을 포함한 8종 화학물질의 농도를 높은 정확도로 예측했으며, 데이터 품질이 좋지 않은 조건에서도 성능이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KAIST는 이번 기술이 반도체 플라즈마 미세 공정에서의 실시간 진단을 고도화해 수율 향상에 기여하고, 핵융합 플라즈마의 안정적 제어에도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환경 감시(스마트시티)나 비접촉식 질병 진단 등 스펙트럼 기반 분석이 필요한 다양한 산업·응용 분야로 확장 가능성도 제시했다. 분광 데이터에 AI를 적용하려는 흐름은 글로벌 연구 현장에서도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적외선(IR)·근적외선(NIR)·핵자기공명(NMR) 등 다양한 스펙트럼 데이터에서 딥러닝을 활용해 잡음 제거, 분석 신뢰도 향상 등을 자동화하려는 연구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박 교수는 분광 데이터 해석의 진입장벽을 낮춰 현장에서 즉시 활용 가능한 정보로 전환하는 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에는 김종찬·허성철 박사과정이 공동 제1저자로 참여했으며,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센서스 앤 액추에이터스 B : 화학'에 지난달 12일 온라인 게재됐다.
최영총 기자 young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