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이번 대규모 담합 수사는 물가 안정을 거듭 강조해온 이재명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이 잇달아 카르텔 엄벌을 주문하자 검찰이 지난해 9월부터 5개월간 ‘서민경제 교란사범’ 집중 수사를 벌여 성과를 낸 것이다. 올 10월 폐지를 앞둔 검찰이 공정거래위원회가 미처 포착하지 못한 담합 혐의까지 밝혀내며 존재감을 드러냈다는 평가도 나온다.

◇檢 “물가 상승으로 국민 피해”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공정거래조사부(부장검사 나희석)는 대한제분, 사조동아원, 삼양사, 대선제분, 삼화제분, 한탑 등 법인 6곳과 소속 대표 등 임직원 14명을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고 2일 밝혔다. 이들은 2020년 1월부터 작년 10월까지 밀가루 가격의 변동 폭과 시기를 사전에 합의해 부당하게 경쟁을 제한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범행 기간 담합 액수가 5조9913억원 규모라고 봤다.검찰은 밀가루 담합으로 밀가루 가격은 물론 완제품 가격도 올라 소비자 피해가 발생했다고 봤다. 2023년 1월 기준 밀가루 가격은 2021년 대비 최대 42.4% 상승했고, 밀가루 소비자물가지수는 36.1% 올라 전체 물가상승률(17%)을 크게 웃돌았다. 수사 과정에서 “공 선생(공정위)에 들키면 문제가 생기니 연락을 자제하자”는 회사 내부 회의록도 확보했다.
이번 사건은 서울중앙지검이 작년 9월부터 진행한 서민경제 교란사범 집중 수사의 마지막 사례다. 검찰은 작년 11월 CJ제일제당과 삼양사 등 제당업체 세 곳을 3조2715억원 규모의 설탕 담합 혐의로 기소했다. 지난달에는 한국전력의 가스절연개폐장치 입찰에서 6776억원 규모 담합을 벌인 효성중공업과 현대일렉트릭 등 10개사도 재판에 넘겼다. 3개 영역의 담합 규모는 총 9조9404억원, 기소된 법인과 개인은 총 52명에 이른다.
◇李 “강경 대응” 주문에 수사 확대
검찰의 이번 대규모 담합 수사는 물가 안정을 지속적으로 강조해온 이 대통령의 강경 대응 주문이 기폭제가 됐다. 이 대통령은 작년 9월 국무회의에서 “식료품 물가가 지나치게 상승해 서민에게 부담이 되고 있다”며 관계 부처의 강도 높은 조치를 요구했고, 주병기 공정위원장에게는 “담합이 이뤄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검찰 수사로 이 대통령이 언급한 담합 가능성이 규명됐다. 검찰은 설탕과 밀가루 가격 담합 사건 모두 자체 첩보로 수사를 시작해 범위를 확대했다. 밀가루 사건은 작년 12월 제분사 5곳을 압수수색한 뒤 공정위에 고발요청권을 두 차례 행사해 한국제분협회 회원사 7곳으로 수사 범위를 넓혔다. 리니언시(자진 신고)로 제외된 한 곳을 빼고 사실상 업계 전체가 재판에 넘겨진 것이다.
검찰은 담합에 가담한 개인의 형사처벌 강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담합 범죄의 법정형은 3년 이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 벌금에 불과해 범죄 억지력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나 부장검사는 “설탕은 이번이 세 번째, 밀가루는 두 번째로 담합이 적발됐다”며 “공정위 과징금이나 법인 벌금으로는 뿌리 뽑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개인이 담합에 가담하면 10년 이하 징역 또는 100만달러(약 14억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한국보다 형량이 3배 이상, 벌금은 7배 이상 높다.
검찰 수사 결과가 공개된 뒤 이 대통령은 자신의 X 계정에 “검찰이 큰 성과를 냈다”며 “잘한 건 잘했다고 칭찬해 주길 바란다”는 글을 올렸다. 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법정형 상한 개정 등 제도 보완 방안과 담합 업체 부당이익 환수 방안, 물가 원상복구 방안 등을 마련하도록 지시했다.
박시온 기자 ushire90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