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기를 가져오는 정치인들
정치인의 최대 관심사는 선거다. 국익을 해치더라도 득표에 도움이 되는 일이 있다면 그대로 하는 것이 정치인에겐 합리적 행동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세금을 낭비한다는 비난을 받더라도 자기 지역구에 예산을 많이 끌어오는 정치인이 유능한 정치인이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포크배럴(pork barrel)’에 몰두한다. 포크배럴은 돼지 먹이를 담는 커다란 통을 뜻하는 말이다. 정치인들이 표를 얻기 위해 국민 세금으로 자기 지역구에 ‘고기(pork)’를 갖다주는 행태를 돼지들이 몰려들어 먹이를 먹는 모습에 비유한 것이다.
여기서 고기는 주로 예산이다. 수도 이전이나 신공항 건설 같은 대형 국책사업일 때도 있다. 이번에 일부 정치인은 반도체산업을 고기로 삼았다.고기를 한 지역에만 주면 다른 지역이 가만히 있지 않는다. 자기 지역에도 고기를 달라는 요구가 터져 나온다. 그래서 정치인들끼리 거래가 이뤄진다. 당신이 우리 지역으로 반도체 클러스터를 이전하는 법안에 찬성하면 나는 당신 지역구에 의대를 설립하는 법안에 찬성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이런 행태를 ‘로그롤링(logrolling)’이라고 한다. 로그롤링은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 통나무(log)를 굴린다(rolling)는 뜻이지만, 공공선택론에서는 협동이라는 좋은 의미가 아니라 ‘정치적 야합’이라는 부정적 의미로 쓰인다.
전국 각지에 난립한 지방 공항은 포크배럴과 로그롤링이 결합한 전형적 사례다. 나눠먹기식으로 여기저기 공항을 짓는 바람에 안 그래도 승객이 별로 없는 지방 공항의 경영 효율성이 더 낮아졌다. 지방 공항 10곳 중 지난해 흑자를 낸 곳은 청주공항과 대구공항뿐이다.
◇ 민주주의의 필연적 결과
한국이 ‘규제 공화국’이 된 것도 정치인과 공무원들의 사적 이익 추구와 관련이 있다. 정치인이 유권자의 표를 얻기 위해 내놓는 공약 중에는 ‘A를 보호하겠다’거나 ‘B가 어떤 일을 못 하게 막겠다’는 것이 많다. 누군가를 보호하고 무언가를 막는 것이 시장에선 모두 규제로 작용한다. 공무원에겐 규제가 곧 권력이다. 규제가 많아지는 만큼 공무원 조직과 인력, 예산이 늘어나고 권한이 커진다.재정적자와 국가채무가 쌓여 가는 것도 정치인과 공무원들이 사적 이익을 추구한 결과다. 민주주의 정치의 속성상 정부는 인기를 얻을 수 있다면 기꺼이 빚을 내고 돈을 푼다. 공공선택론 창시자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제임스 뷰캐넌은 정치인들이 유권자 표심에 얽매일 수밖에 없는 민주주의에서 만성적 재정적자는 필연이라며 이런 현상을 ‘적자 속의 민주주의(democracy in deficit)’라는 개념으로 분석했다.
◇ 경제 망치는 ‘정치 실패’
공공선택론은 정부가 문제의 해결사이기보다는 문제의 원인이거나 문제 그 자체일 수 있다는 점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시장 실패를 교정하겠다는 정부의 시장 개입은 정부 실패로 귀결되기 십상이다. 정책 결정이 정치적 이해득실에 휘둘린다는 점에서 정부 실패는 정치 실패라고 할 수도 있다. 경제적 효율성이나 타당성을 도외시한 정책이 민주주의나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포장되기도 한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정부가 시장보다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 ‘치명적 자만’이라고 경고했다. 갭 투자를 규제한 정부 고위 당국자가 알고 보니 갭 투자로 고가 아파트를 매입했고, 집값을 잡겠다며 대출을 규제한 여당 국회의원들이 서울 강남에 집을 소유하고 있는 등 정치인과 공무원이 순수하게 공익에 복무하지 않는다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 시장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정부는 더 큰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 공공선택론이 주는 교훈이다.유승호 경제교육연구소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