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브랜드를 상징하는 요소는 다양하다. 디자인, 품질, 역사 그리고 한눈에 알아보게 만드는 로고도 포함된다. 샤넬, 에르메스, 디올, 구찌, 루이비통, 펜디, 프라다, 까르띠에, 티파니 등의 패션과 주얼리 하우스뿐 아니라 메르세데스 벤츠, BMW, 애플 등 유명하고 확실한 로고를 지닌 브랜드의 영향력을 돌이켜보면 수긍이 된다.그런데 패션에서는 한 때 로고가 전면에 드러나는 옷이나 가죽 액세서리를 고급스럽지 못하다고 여겼다. ‘로고 매니아’ 라는 표현으로 취향을 폄훼하는 경향도 있었다. 로고 자체의 디자인 문제가 아닌, 브랜드를 너무 드러내는 것에 대한 일종의 반감이었다.
럭셔리 브랜드가 물밀듯이 소개되던 시절에는 각 브랜드 로고의 역할이 컸다. 어디서나 알아볼 수 있는 로고는 브랜드의 인지도를 올리는 일등공신이었다. 메두사 로고, CC 로고, GG로고, V 로고, F 로고 등등. 그런데 로고의 긍정적인 효과는 ‘럭셔리 브랜드= 상류층’ 이라는 공식을 쌓아가면서 오히려 부정적으로 변해갔다. 로고를 통해 부를 과시하고 취향을 대신한다는 이미지가 덧씌워진 것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로고로 장식한 옷과 액세서리는 눈에 띄게 사라졌다.

필자는 오랜 시간 럭셔리 브랜드를 취재하면서 ‘로고’가 갖는 힘이 남다르다는 것을 자주 느꼈다. 강력한 힘을 증명한 로고 중 하나가 루이비통의 모노그램이다. 모노그램은 아이코닉한 문양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그럼에도 루이비통을 떠올리면 자연스레 모노그램이 연상될 만큼 상징적이다.
알려진 대로 모노그램의 출발은 ‘위조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창립자 루이비통의 아들인 조르주 비통이 엄청난 인기를 끌던 트렁크를 모방한 제품이 쏟아지자 이를 방지하고자 1896년에 만든 문양이었다. 모노그램 패턴은 창립자 루이비통의 이니셜인 L과 V, 그리고 당시 유럽에서 유행하던 일본풍의 영향을 받은 꽃과 별 모양의 네가지 요소가 반복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모노그램 제품을 사용해 본 사람들은 알지만 모노그램은 가죽이 아니다. 면 소재 위에 PVC(폴리염화비닐) 코팅을 입혀 제작한 캔버스이다. 대다수 모노그램 제품 본체는 이처럼 캔버스로 되어 있고, 손잡이와 부속 장식은 천연 가죽으로 덮인 경우가 많다. “최상의 럭셔리를 지향한다면서 캔버스라니…” 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모노그램의 특별함은 캔버스에서 찾을 수 있다. 캔버스는 가죽에 비해 사용하기에 덜 까다롭다. 루이 비통은 여행 가방으로 시작한 브랜드이므로 ‘실용성’은 고급스러움만큼이나 필수적인 요소이다. 대신 트렁크의 모서리에 금색 테를 두르고, 손잡이는 살구 빛 천연 가죽으로 마무리하는 등의 디테일을 통해 고급스러움을 놓치지 않았다.

브랜드를 대표하는 무늬로만 존재할 뻔했던 모노그램이 ‘아이콘’으로 등극한 결정적인 계기는 아티스트와의 협업이다. 루이비통은 그 어느 브랜드보다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일찍 시작했고 도전적이었다. 많은 이들은 무라카미 다카시와 쿠사마 야요이와 협업한 제품을 떠올리겠지만 1996년에 이미 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 마놀로 블라닉, 헬무트 랭 등과 협업 제품을 내놓았다.
이 제품을 출시하는 행사에 참석한 나는 꽤 놀랐고 의아했다. 디자이너들이 내놓은 제품은 실험적이었지만 흥미로웠다. 마놀로 블라닉의 슈 트렁크,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디자인한 엉덩이에 걸치게 만든 버슬 백 등을 보며 “제품도 작품이 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으로 발전했다.
모노그램이 아티스트와 협업하여 시장에서도 호응을 이끌어낸 것은 미국의 그래피티 아티스트 스티븐 스프라우스와의 협업한 ‘모노그램 그래피티’ 제품부터였다. 스티븐 스프라우스 특유의 대담하고 자유로운 스타일로 제품 위에 새겨진 ‘Louis Vuitton’이라는 글자는 모노그램을 한층 더 스타일리시하게 바꿔 놓았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무라카미 다카시와 쿠사마 야요이와의 협업 제품은 ‘예술과 상업성이 공존할 수 있다’는 모범적인 사례로 남았다.
이 작업을 진두지휘했던, 지금은 작고한 전 루이비통 CEO 이브 카르셀은 이렇게 회고했다. “2001년은 뉴욕 911 테러로 전세계는 우울했고, 마크 제이콥스(당시의 루이 비통 아티스틱 디렉터)와 나는 생동감 있는 분위기를 선사하고 싶었다. 물론 함께 일할 아티스트는 전세계적인 신뢰와 인정을 받는 사람이어야 했다.”
이후 많은 브랜드에서 예술가와의 협업이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고, 반짝할 줄 알았던 예술가와의 협업은 2025년에 무라카미 다카시와 협업 20주년을 기념하는 에디션이 나오면서 저력을 입증했다. 나는 이러한 성공을 가능하게 한 이유의 하나로 모노그램이 예술가의 상상력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그야말로 캔버스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루이비통의 앞선 도전을 취재하면서 궁금했던 것의 하나는 '일등 브랜드이기에 가능한 일인가', '아니면 도전을 감행하기에 일등이 되었는가'였다. 결론은 두 가지가 협력하여 가능하다는 것이다.

모노그램의 끊임없는 변주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외부와의 협업이 아닌 자체적으로 발전을 위한 노력도 지속하고 있다. 올해는 모노그램이 탄생 130주년을 맞는 해이다. 이를 기념하여 여러가지 행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그중 하나로 서울의 루이비통 도산 스토어에서 색다른 행사가 열렸다. 도산 스토어는 호텔 컨셉트’로 단장되었고, 호텔의 각 객실을 다섯 가지의 모노그램 아이코닉 백인 키폴(1930년), 스피디(1930년), 노에(1932년), 알마(1992년), 네버풀(2007년)의 테마로 꾸몄다.
소프트한 여행가방의 대명사인 키폴과 샴페인병을 넣기 위해 고안된 노에, 쇼핑을 위한 최적의 동반자인 네버풀을 주제로한 공간에서는 실용성과 고급스러움을 모두 잡은 모노그램의 모습을 확실히 느낄 수 있다. 특히 이번 행사에서는 세가지의 모노그램 애니버서리 에디션을 선보였는데, 그 중 모노그램 오리진은 1896년 초창기의 패턴을 복각하여 리넨과 면 혼방 자카드 소재를 사용하여 빈티지하면서도 부드러운 파스텔 톤으로 선보인 것이 특징이다. 130주년의 무게가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현대적인 감성’을 갖추고 다시 태어난 것이다.
패션 하우스에게 아이코닉 문양은 상황에 따라 득이 되기도 실이 되기도 한다. 오리지널 아이코닉 문양을 자주 제품에 사용하면 변화에 더디고 트렌디하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럼에도 럭셔리 브랜드가 매해 내놓은 제품의 상당 부분은 아이코닉 문양이나 제품의 리메이크인 경우가 있다. 이는 ‘그만한 것이 없다’ 라는 체념이 아닌, 대개 출시 이후 적게는 몇 십 년 길게는 100년이 지난 것임에도 세월을 지탱해올 정도로 완성형 디자인이라는 자부심의 발로라고 볼 수 있다. 더불어 ‘예전 것이지만 새것 같은’ 분위기를 탑재하고 있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럭셔리 브랜드가 고공행진을 하며 새로운 세대를 소비자로 흡수하던 시기에 몇몇 럭셔리 브랜드는 ‘역사’와 ‘유산’을 내세우는 것을 주저했다. 시간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자칫 새로운 소비자인 MZ세대에게 고루하다고 비춰질까봐서였다. 그런데 오해는 금물! MZ 세대가 지루하다고 여기는 역사는 ‘박제된 역사’다. 여전히 현대와 교감하는 역사에는 되레 흥미와 신뢰를 느끼는 법이다. 럭셔리 브랜드가 부침 없이 각 시대의 트렌드를 적절히 가미하며 ‘원형’을 지켜오는 힘은 새로운 세대를 끌어당기는 매력적인 요소이다. 모노그램이 여전히 인기를 끄는 이유를 여기에서도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