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 양천구의 한 아파트를 매수하려던 A씨는 최근 당황스러운 제안을 받았습니다. 집주인(매도인)이 아직 계약 기간이 남은 임차인에게 위로금을 주겠다며 이사를 설득하고 있는데, 임차인이 이사 갈 곳이 없다며 버티고 있으니 매수자인 A씨도 위로금 1000만원을 보태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임차인 이사 문제는 보통은 집을 파는 사람이 해결할 문제지만, '토지거래허가구역'인 이곳에서 거래 허가를 받으려면 임차인의 퇴거가 필수였기에 A씨는 결국 지갑을 열기로 했습니다.
실수요자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시행된 '토지거래허가제'가 아파트 거래 풍경을 바꾸고 있습니다. 임차인 퇴거를 위해 매도자가 지급하던 '위로금'이 매도자를 넘어 매수자에게까지 전가되는 단계로 접어들었기 때문입니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매수자가 거래 성사를 위해 위로금을 떠안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과거에 매도자가 임차인에게 위로금을 제시하는 선에서 협상이 이뤄지던 것에서 한발 나아간 것입니다.
매물이 귀한 지역을 중심으로 매도자가 협상에서 물러서지 않으면서, 반드시 집을 사고 싶은 매수자가 임차인과 직접 협상 테이블에 앉는 구도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송파구의 한 공인 중개 관계자는 "요즘은 매수자가 먼저 '이사비는 제가 드릴 테니, 집주인한테 가격은 올리지 말아달라'고 제안하는 경우도 있다"며 "매수자가 사실상 퇴거 비용까지 부담하는 거래가 이제 낯설지 않다"고 했습니다.
'이사비'는 법적으로 정해진 항목은 아닙니다. 극히 예외적인 사례였던 이사비가 널리 퍼지게 된 것은 2020년 임대차 3법 도입으로 임차인에게 계약갱신청구권이라는 권리가 생기면서부터입니다. 임차인은 임대차 3법 도입 이후 기존의 임대차 계약 기간인 2년에 더해 '2년 더 살겠다'고 요구할 수 있게 됐습니다. 집주인이 직접 들어와 살겠다고 하면 임차인을 내보낼 수 있지만, 이를 증명하고 설득하는 과정에서 '합의금' 성격의 이사비가 관행처럼 생겨난 것입니다.
임차인에게 건네는 위로금은 적게는 수백만원에서부터 많게는 수천만원까지, 동네와 상황에 따라 다양합니다. 이 비용은 매수자나 매도자 모두 공식적인 부동산 거래 비용으로 처리하지 못해 지하경제 성격을 띠는 비공식 비용입니다.
여기에 서울 전 지역과 경기도 전 지역이 토허제로 묶이면서 상황은 더욱 복잡하게 변했습니다. '임차인이 퇴거하느냐'가 거래의 성패를 결정짓는 핵심 변수로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계약갱신청구권'과 '토허제'라는 두 규제가 만나면서, 임차인과의 합의금이 사실상 필수 비용처럼 굳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토허제에서는 거래 허가가 나온 이후 4개월 이내에 매수자가 매수한 집에 입주해야 합니다. 만약 매수자가 이 기간 안에 입주하지 못하면 '거래 허가 취소'라는 날벼락을 맞을 수도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매도 계약 이후 매도자와 임차인 간에 갈등이 생길 경우 매수자가 울며 겨자 먹기로 위로금을 대신 지급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최근 한 부동산 커뮤니티에는 "매도자가 위로금을 지급하지 않는다고 해서 임차인이 퇴거하지 않는다고 한다. 임차인 퇴거 일정에 맞춰 생애최초 대출 실행을 계획했는데, 임차인이 퇴거하지 않을 경우 대출 조건이 변하는 등 리스크가 있다. 저라도 위로금을 지급해야 할까요?"라는 고민 글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물론 '나갈 수 없다'고 버티는 임차인에게도 사정은 있습니다. 당장 집을 떠나야 하는 임차인이 거액의 이사비를 요구하는 것을 마냥 '몽니'라고 부를 수만도 없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서울시 성동구에 사는 한 30대 워킹맘인 B씨는 최근 매도자와 매수자로부터 '제발 이사를 가 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받고 있습니다. 양측 모두 위로금을 지급하겠다고도 했습니다. 위로금은 양측에서 1000만원씩 부담해 2000만원으로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B씨도 "도저히 이사할 방법이 없는데 어쩌라는 거냐"고 말합니다.
인근 단지 물건을 모두 찾아봐도 △전혀 수리가 되지 않아 도저히 살고 싶지 않은 집 △수리 상태는 나쁘지 않지만, 반전세라서 월세를 추가로 100만원씩 부담해야 하는 집 △수리가 잘 되어 있지만, 억 단위로 전세금을 더 내줘야 하는 집밖에 선택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B씨는 "아직 모아놓은 돈이 충분하지 않아, 이참에 집을 사자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위로금이고 뭐고 그냥 여기서 더 살고 싶은 마음뿐"이라고 했습니다.
아파트 정보 제공 앱 아파트실거래가에 따르면, 실제로 전날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 물량은 2만1474건으로 집계됐습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2만7870건)에 비해 23.0% 줄어든 것입니다. 한 달 전(2만2677건)과 비교해도 5.4% 줄어든 것으로, 전세 매물은 꾸준히 사라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결국 매도자와 매수자, 임차인까지 토허제 안에서 난처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전문가들은 토허제가 실수요자를 보호하겠다는 취지와 달리 거래 과정에서 새로운 비용과 갈등을 양산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계약갱신청구권이 생긴 이후 임차인을 내보내기 많이 어려워진 상황"이라며 "여기에 최근 집값도 많이 올랐고, 중개수수료 등 이사 비용도 많이 올라서 임차인에게 지급하는 이사비는 나눠 내자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최근에는 집을 사는 사람들이 모두 '실거주'를 하려는 사람이다 보니 매수인이 임차인에게 '위로금'을 지급하게 되는 것"이라며 "결국 상황에 따라 매도자와 매수자, 임차인 중 가장 협상력이 약한 쪽에 비용이 전가되는 구조"라고 덧붙였습니다.
이슬기 한경닷컴 기자 seulk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