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양가와 추가 분담금 등을 정하는 재건축·재개발 사업의 수립 단계에서 단지 내 모든 조합원의 자산 가격 등을 공시하지 않아도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는 첫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관리처분계획 수립을 앞둔 조합의 업무 부담이 줄어 사업 추진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지난해 12월 11일 A재개발정비사업조합과 조합원 B씨 간 관리처분계획 관련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이번 소송은 2018년 A재개발조합이 의결한 관리처분계획을 두고 조합원 B씨가 “실질적인 의결권이 침해됐다”며 문제를 제기하며 불거졌다. B씨는 “조합이 관리처분계획 의결 총회를 앞두고 보낸 안내문에 수신자 개인의 자산 내역만 적혀 있고 다른 조합원의 자산 정보가 빠져 있어 위법하게 의결됐다”고 주장했다. 다른 조합원 자산 평가액을 알 수 없어 자신의 자산이 공정하게 평가됐는지 비교·확인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1심은 조합 손을 들어줬다. “옛 도시정비법은 분양대상자별 종전자산 가액이나 분담금 추산액을 ‘통지’ 방식으로만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조합원 전원의 정보를 통지하지 않은 관리처분계획 결의에도 문제가 없다고 봤다. 2심은 “조합원 전원에 관한 정보를 통지하지 않은 채 이뤄진 관리처분계획 의결에는 실질적인 의결권을 침해한 중대한 하자가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1심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도시정비법이 분양대상자별이라는 표현과 함께 각 조합원에게 통지하도록 규정한 점을 종합하면 통지 대상은 통지받는 조합원 본인의 분양예정자산 추산액과 종전자산 명세·가격으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밝혔다. 원심이 ‘조합원 전원 자료’를 전제로 의결권 침해를 인정한 것은 법리 오해라는 지적이다.
조성권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는 “2심 판결 이후 정비사업 현장에서는 다른 조합 관리처분계획도 무효가 돼 사업이 멈추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했다”며 “대법원이 수천 명에 달할 수 있는 전체 조합원의 권리관계를 모두 통지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하면서 관련 사업 추진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희원 기자 top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