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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차기 Fed(미국 중앙은행) 의장으로 낙점한 케빈 워시 전 Fed 이사(사진)를 두고 시장이 대혼란에 빠졌습니다. 워시가 트럼프가 원하는 낮은 금리를 가져다줄 비둘기인지, 아니면 Fed의 '돈 찍어내기'를 멈추고 곳간을 잠글 매인지 아직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소형주 위주의 주식 하락, 채권 금리 상승, 금·은 폭락, 비트코인 하락까지. 시장의 '긴축 발작' 우려가 나타난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보다 명확한 비둘기로 보였던 나머지 세 명의 후보와 비교하면 워시는 시장이 기대한 '쉬운 돈(easy-money)'을 풀어줄 것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JP모건자산운용은 "시장은 그가 대차대조표를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점에 반응하고 있다"며 "이는 위험자산에 매우 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 와중에 비트코인은 31일(현지시간) 한때 7만7000달러대까지 떨어져 작년 4월 관세 발표 이후 최저치를 찍었습니다. 이더리움은 2400달러대까지 후퇴했습니다. 사실 워시는 암호화폐에 대해 그렇게 부정적인 입장은 아닙니다. 피터 틸, 마크 안드리슨 같은 실리콘밸리 거물들과도 가까운 그는 암호화폐 자산운용사 비트와이즈에 투자한 이력이 있고, 지난 2021년엔 비트코인에 대해 "(과잉 유동성의 시대에) 40세 미만 젊은 층에겐 비트코인이 새로운 금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유동성에 민감한 암호화폐는 워시가 Fed 의장이 되면 양적 긴축을 시행할 수 있다는 관측에 하락하고 있습니다. 월가의 한 채권 투자자는 "블랙록의 릭 리더 채권 CIO가 지명되면 암호화폐 친화적인 블랙록의 스탠스가 힘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도 있었는데, 워시의 지명으로 이런 기대가 물거품이 된 것도 크립토 시장의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워시는 인플레이션 통제를 중시하고 Fed의 양적완화(QE)를 비판해왔던, 전통적인 의미에서 대표적인 매파입니다. 하지만 최근엔 파월 의장 체제의 Fed가 인플레이션의 원인을 오판해 잘못된 고금리를 유지해왔다며, 정책금리를 더 빨리 내려야 한다는 비둘기파적인 주장도 펼쳤지요. 여기에서 시장의 혼란이 비롯되는데요.
워시는 정말 매파일까요? 그렇다면 트럼프는 왜 워시를 낙점했을까요? 언뜻 보기에 모순적인 것 같은 워시의 생각과, 그가 그리는 차기 Fed의 청사진을 그의 기고문과 인터뷰를 통해 알아봅니다.
케빈 워시는 누구
워시는 스탠퍼드대 공공정책학과,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모건스탠리에서 근무하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때인 2002년 국가경제위원회(NEC) 소속으로 대통령 경제정책 특별보좌관이 됐습니다. 그리고 그 해 에스티로더 가문 3세 제인 로더와 결혼, 트럼프의 와튼스쿨 동문이자 60년 지기인 로널드 로더의 사위가 됐습니다. 세계 유대인 회의 회장이기도 한 로더는 트럼프와 공화당의 오랜 후원자로, 트럼프에게 그린란드 매입을 제안한 인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워시는 2006년 35세의 나이로 Fed 역사상 최연소 이사가 됐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리먼브라더스 파산 수습에 관여했고 Fed가 자산을 직접 매입하는 양적 완화에 대해서도 '위기 상황에선 필요악'이라며 지지했습니다.
하지만 2010년 Fed가 경기 부양을 위한 미 국채와 주택저당증권(MBS) 매입에 나서자 워시는 양적 완화 회의론자로 돌아섰습니다. 결국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것이라고 봤기 때문입니다. 워시는 지난해 7월 후버연구소와의 인터뷰에서 2011년 임기를 7년이나 남겨두고 이사를 사임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워시는 2016년 트럼프의 첫 대선 승리 직후 자문 그룹에 들어갔고, Fed 의장 자리를 두고 파월과 경합했지만 트럼프는 당시 47세였던 워시가 "너무 젊어 보인다"며 탈락시켰습니다. 그리고 트럼프는 당시 므누신 재무장관의 조언에 따라 파월을 선택했는데, 이 선택을 후회한다고 수없이 얘기했죠. 결국 돌고돌아 이번에 워시를 택한 셈입니다.
"대차대조표 축소가 금리 인하 열쇠"

워시 주장의 핵심은 "Fed의 돈줄(곳간)을 죄고, 정책금리는 내린다"는 언뜻 보면 역설적인 조합에 있습니다.
이는 인플레이션의 발생 원인에 대한 그의 생각에서 비롯됩니다. 그는 "인플레이션은 정부가 돈을 너무 많이 쓰고 너무 많이 찍어낼 때 발생한다"고 강조해왔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코로나로 인한 공급망 문제 때문에' '경제가 너무 성장하고 임금이 너무 높아져서' 인플레이션이 생긴다고 주장해온 파월 체제의 Fed는 인플레이션 원인에 대한 판단부터 틀렸다는 겁니다.
워시는 정부가 이렇게 방만한 지출을 할 수 있게 조력자 역할을 한 게 Fed라고 저격합니다. "Fed가 위기가 아닐 때도 국채를 대량으로 매입해주니 의회와 정부는 빚을 내 지출하는 것에 대한 비용을 느끼지 못하게 됐다"는 겁니다. 따라서 Fed가 돈 찍어내기를 멈추고 현재 6조 달러가 넘는 대차대조표를 줄이는 양적 긴축(QT)을 해야 인플레이션이 잡히고, 오히려 금리 인하를 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입니다.
워시가 지난해 11월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Fed의 망가진 리더십'이란 제목의 칼럼에서 "월스트리트의 돈은 지나치게 쉽고, 메인스트리트의 신용은 지나치게 빡빡하다"며 "과거 위기 시대에 대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Fed의 비대한 대차대조표는 크게 줄일 수 있다. 그 여력은 가계와 중소·중견기업을 지원하는 더 낮은 금리로 재배치될 수 있다"고 적은 것도 이런 논리입니다. 지금의 비대한 대차대조표는 월가와 자산시장엔 유동성을 공급하며 인플레이션을 부추기고 있는데, Fed가 그 근본 원인은 바로잡지 않은 채 자기가 저지른 실수를 보상하기 위해 너무 높게 정책금리를 유지하면서 실물 경제와 주택 시장을 압박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런 워시의 논리대로면 양적 긴축과 정책금리 인하는 상충하는 조합이 아닙니다. 대차대조표를 줄여 인플레이션의 뿌리를 제거하면 금리를 내려도 물가가 다시 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더욱이 그는 "인공지능(AI)이 생산성을 높이고 미국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강력한 디스인플레이션 요인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런 생산성 향상에 따른 인플레이션 하락은 트럼프가 요구하는 즉각적인 금리 인하의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또 워시는 관세로 인한 물가 상승도 일시적인 요인으로 보고 넘겨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어차피 인플레이션의 핵심 원인은 정부 지출과 그것을 가능하게 한 Fed의 양적 완화, 통화 공급이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JP모건은 "워시가 취임하면 올해는 금리 인하를 주장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평가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워시가 반드시 '매'라고 단정하긴 어렵습니다.
'긴축 발작' 예고하는 시장
Fed가 인플레이션을 오히려 자극하는 "돈 인쇄기"가 됐다는 워시의 저격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분석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K자 경제 구조가 심화되는 현상 뒤엔 이렇게 제한 없이 풀린 유동성이 자산을 보유한 계층엔 더 큰 부를 가져다주는 반면, 화폐 가치를 타락시켜 자산과 소득이 적은 계층과 젊은 층의 사다리를 끊어버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많습니다. 양적 긴축을 통해 과잉 유동성을 거둬들이고, 대신 정책 금리는 낮춘다는 처방은 양극화를 완화할 정공법이 될 수 있습니다.문제는 실행 과정입니다. 유동성 확대, 재정 팽창 등 '쉬운 돈'에 중독된 시장은 워시 체제 Fed가 양적 긴축을 시행하면 '긴축 발작'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미 워시 지명 소식만으로 주식 시장이 하락하고, 금과 은 가격이 1980년 이후 최대폭 폭락했던 것처럼요.
그동안 실물 자산과 주식 가격 상승 뒤엔 앞으로 Fed와 정부가 돈을 더 풀어 화폐가치가 떨어질 것이란 기대가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워시가 QT를 시행하면 시장은 이를 사실상의 금리 인상으로 받아들여 자산 가격이 하락할 수 있습니다. 에버코어 ISI는 “워시 인선은 달러 약세에 비대칭적으로 기울어 있던 포지션을 일부 줄이고 ‘화폐가치 훼손(debasement)’ 트레이드를 약화시킬 수 있다”며 금·은 가격 급락 배경으로 이를 지목했습니다.
물론 워시는 금리 인하로 이를 상쇄하려고 할 것입니다. 여기서 문제는 FOMC 위원들을 50bp 이상의 금리 인하에 동참시킬 수 있느냐는 점입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6월까지 경제 지표가 견조하게 유지된다면 (50bp 이상) 대폭 인하에 대한 지지가 약해질 수 있다"며 "특히 보우먼 이사는 1월 동결 결정에 반대하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파월은 실패, 신뢰 회복하면 금리 알아서 내려간다"
자산 규모 축소는 장기금리 상승 요인이라는 반론도 나옵니다. 실제 JP모건은 워시 지명 소식 이후 단기금리보다 장기금리가 더 오른 것을 지적했는데요. 월가는 트럼프 행정부가 장기금리를 내리기 위해 장기국채 대신 단기국채 발행을 늘리고, Fed가 단기채를 사주는 방식으로 장기금리 억제 공조를 펼칠 것을 예상해왔습니다. 양적 완화에 부정적인 워시는 이런 공조 가능성을 낮춥니다.2018~2024년 Fed에서 파월 의장의 수석 고문을 지낸 존 파우스트 존스홉킨스대 교수도 "QT는 장기금리를 상승시킨다"고 주장합니다. Fed가 대차대조표를 줄이려면 보유한 장기국채와 MBS를 시장에 다시 팔거나 재투자를 중단해야 하는데, 그러면 민간 은행이 그 추가 공급을 떠안으면서 민간 포트폴리오의 유동성이 낮아지고 기간 프리미엄이 높아져 장기 금리가 오를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이런 각종 반론에도 워시는 Fed가 몸집을 줄이고 인플레이션 이론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레짐 체인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파월의 Fed는 실패했다"며 그 이유로 금리 정책의 실패와 시장 신뢰(credibility) 상실을 꼽았습니다. 그는 폴 볼커 전 의장의 조언을 인용하며 "중앙은행의 임무는 금리를 맞추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시장이 믿게 만드는 것"인데 현재 Fed는 이 두 가지 모두를 놓쳤다고 지적합니다.
금리보다 대차대조표 정책, 기후·다양성 이슈 같은 본질이 아닌 것들에 관여하면서 시장 신뢰를 잃었기 때문에 장기 금리를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는 건데요. 따라서 이런 부분을 축소하고 Fed를 개혁해 신뢰를 회복하면 그것만으로도 "금리를 시장이 알아서 낮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워시의 '작은 Fed'론
시장과 트럼프는 받아들일 준비 됐나
결국 대차대조표를 축소하는 대신 정책금리 인하, 금융 규제 완화를 주장한다는 점에서 워시는 단순한 매파라기보단 '작은 Fed'를 지향하는 인물입니다. 이를 통해 그가 그리는 Fed 신뢰 회복 → 금리 하락이라는 야심찬 계획이 성공할지, 시장의 긴축 발작을 초래해 트럼프의 분노(?)를 살 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JP모건은 "대차대조표 축소는 장기 금리에 상승 압력을 가할 것이며, 이는 모기지 금리를 낮추려는 행정부의 의지와 배치될 것"이라고 분석합니다.시장과 트럼프는 받아들일 준비 됐나
분열된 FOMC를 그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갈 수 있을지도 관건입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FOMC 위원 교체 폭이 크지 않다면 워시는 상당한 저항에 직면할 수 있다"고 봅니다.
현재 확실한 건 워시 지명으로 '더 쉬운 돈'이 더 많이 풀리길 기대했던 월가의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입니다. 과잉 유동성의 시대에 익숙했던 시장은 워시의 '정공법'을 기다려줄 인내심이 없어 보입니다. 월가 일부에선 중간 선거를 앞둔 트럼프의 인내심도 그렇게 깊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늘 앞서가는 시장의 긴축 발작에 트럼프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앞으로 관전 포인트가 될 것 같습니다.
뉴욕=빈난새 특파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