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법원 형사14-1부(고법판사 박혜선·오영상·임종효)는 30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양 전 대법원장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양 전 대법원장에게 적용된 47개 혐의 중 2개가 유죄로 판단됐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박병대 전 대법관(12기)에게도 같은 형이 선고됐다.
2024년 1월 1심에서 이들은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재판 개입 혐의 일부에 대해 1심과 다른 결론을 내렸다. 일선 법원의 한정위헌 취지 위헌제청결정과 옛 통합진보당 국회의원들의 지위 확인 행정소송 항소심에 부당하게 개입했다고 판단했다.
2015년 4월 서울남부지방법원 민사재판부가 원고의 신청을 받아들여 사립학교교직원연금법에 대한 한정위헌 결정을 구하는 위헌심판을 제청했는데, 법원행정처의 압력으로 이를 취소한 사실이 검찰 수사를 통해 드러났다. 양 전 대법원장이 박 전 대법관, 이규진 당시 양형위원회 심판위원 등과 공모해 사건을 맡은 염기창 재판장에게 위헌심판 제청 결정을 취소하라고 압력을 행사한 혐의가 2심에서 유죄로 인정된 것이다. 재판부는 “(위헌제청) 결정문에 대한 전산상 검색 제외 조치를 위해 공문 발송 협조를 요청한 행위는 형식적, 외형적으로 일반적 직무권한에 속하는 사항에 관해 직권을 행사한 모습을 갖췄다고 판단된다”면서도 “그 실질은 재판에 개입하거나 영향을 미쳐 법관의 재판상 독립을 침해하는 것이므로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법원행정처 심의관들에게 통진당 행정소송을 정무적으로 활용할 방안 등을 검토하게 하고 담당 재판부에 행정처의 입장을 전달한 혐의도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이민걸(당시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이 항소심 재판장에게 1심 판결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소를 각하한 1심과 달리 본안 판단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 기재된 문건을 전달한 행위 역시 법관의 재판상 독립 침해로 직권남용”이라고 봤다. 그러면서 “양 전 대법원장은 이 전 기조실장의 재판 관여 행위를 묵시적으로나마 승인했다”며 공모 관계를 인정했다.
2심의 판단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의 구성 요건 해석에서 1심과 차이가 난다. 1심은 사법행정권자에게 재판의 핵심 영역에 개입할 권한이 애초에 없으므로 직권남용죄가 성립할 수 없다고 봤다. ‘지위를 이용한 불법행위’일 수는 있지만 형법상 직권남용이 아니라는 논리다.
하지만 2심은 이런 1심의 법리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사법행정권자의 행위가 외형으로는 업무 수행에 필요한 정보의 제공·협조 요청인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 실질이 진행 중인 재판에 개입하거나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면 ‘정당한 권한 이외의 행위’로 직권남용에 해당한다는 법리다. 1심 논리대로라면 재판 개입과 같은 ‘위법·부당한 행위를 할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으므로 원칙적으로 어떤 사안에서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가 성립하지 않게 돼 오히려 재판의 독립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모순에 빠진다고 밝혔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은 “직권남용죄에 대한 확립된 법리에 반하는 판단”이라며 상고 방침을 밝혔다.
장서우/정희원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