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에서의 올해 일정을 모두 취소했다.” 최근 인도 출신 거장 주빈 메타의 선포에 세계가 술렁였다. 메타는 인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정부의 팔레스타인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많은 동료가 못 본 체하지만, 나는 동의할 수 없다”는 그의 말에서 씁쓸함이 묻어났다.그동안 여러 음악가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목소리를 냈지만, 메타의 보이콧이 주는 충격은 차원이 다르다. 그처럼 이스라엘 사회와 깊은 유대를 쌓아온 비유대인 음악가는 드물기 때문이다. 메타의 결단은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한때 ‘이스라엘의 자랑’이던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을 떠올리게 한다.
두 사람의 인연은 1956년 이탈리아 키지아나 지휘 아카데미에서 시작됐다. 당시 열세 살 소년이던 바렌보임과 여섯 살 위인 메타는 첫 만남 이후 평생의 ‘마음의 벗’이 됐다. 두 사람의 우정을 더욱 끈끈하게 한 계기는 이스라엘과의 연대였다. 메타는 자신을 ‘인도의 유대인’으로 부르며 국가적 위기 때마다 이스라엘 곁을 지켰다.
그는 1967년 6일 전쟁 때는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이스라엘로 날아가 매일 공연을 열었다. 바렌보임과 그의 약혼자이던 첼리스트 재클린 뒤 프레도 함께였다.
하지만 두 거장의 진정한 가치는 이스라엘이 아랍 세계에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신념을 실천했다는 데 있다. 메타는 아랍 세계와의 공존을 위한 연주회에 열의를 보였다. 1982년 메타와 이스라엘 필이 레바논 남부에서 한 공연이 대표적이다. 레바논에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던 시기, 이스라엘군이 커피 농장 한가운데 마련한 무대에 아랍인들이 모였다. 놀랍게도 공연이 끝나자 청중이 무대로 뛰어 올라와 연주자들을 껴안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로부터 6개월 뒤 이스라엘은 레바논을 침공했고, 메타는 정치 지도자들이 선의를 무너뜨렸다며 분개했다. 그는 2009년 이스라엘 내 아랍인 음악 교육 프로그램인 ‘Mifneh(변화)’를 설립했다. 메타가 “이스라엘 필에 아랍인 단원이 생기는 것이 꿈”이라고 발언해온 것과 연장선상에 있다.
메타가 이스라엘 곁에 남아 조용히 변화를 추구했다면, 바렌보임은 거침없는 행보로 이스라엘 눈 밖에 났다. 그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영토 점령을 비판해 온 대표적 인사다. 2004년 울프상 시상식에서 바렌보임은 이스라엘 독립 선언을 인용하며 이렇게 말했다. “끊임없는 고통과 무자비한 박해의 역사를 지닌 유대 민족이 어떻게 이웃 민족의 권리와 고통에 무관심할 수 있습니까?”
1999년에는 영문학자 에드워드 사이드와 함께 이스라엘·아랍 연합 악단인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를 창설했다. 2011년에는 한층 더 대담한 시도가 있었다. 바렌보임이 꾸린 ‘가자를 위한 오케스트라’가 가자지구에서 연주회를 연 것이다. 이스라엘의 가자 봉쇄에 항의하는 의미가 다분한 ‘평화를 위한 연주회’였다. 4년 전 가자 공연을 계획했다가 국경에서 제지당한 경험을 바탕으로 유엔과 비밀리에 조율이 이뤄졌고, 곡절 끝에 공연이 성사될 수 있었다.
메타는 올해 90세를 맞는다. 메타의 선언대로라면 이번 생일은 그가 ‘가족’이라고 불러온 이스라엘 필과 함께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레바논 남부에서 연 공연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아랍인과 유대인이 서로 껴안는 그 모습을 다시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는 긍정적인 사람입니다. 그런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오늘날 그의 꿈은 그 어느 때보다 요원해 보인다. 메타는 언젠가 다시 중동의 미래를 긍정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