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Fitch)가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기존과 같은 ‘AA-’, 등급 전망을 ‘안정적’으로 유지했다. 피치는 한국 경제가 견조한 대외건전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재정적자 확대와 인구 고령화에 따른 구조적 도전 과제를 위험 요인으로 지목했다.
30일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피치는 이날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장기 외화 발행자 디폴트 등급·IDR)을 ‘AA-’로 재확인하고, 등급 전망을 ‘안정적’으로 평가했다고 발표했다. ‘AA-’는 피치의 등급 체계에서 위에서 네 번째로 높은 순위로, 영국·벨기에·대만 등과 같은 등급이다.
피치는 국가신용등급을 이같이 결정한 배경으로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제시했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지난해 1.0%에서 2.0%로 반등할 것으로 전망된다. 민간 소비 회복과 반도체 중심의 수출 호조도 성장을 견인할 것으로 분석된다. 피치는 "한국은행이 2024년 10월 이후 기준금리를 100bp(1.0%포인트) 인하한데다 소비자 심리가 회복하고 있어 내수를 뒷받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중국의 수요 위축으로 반도체를 제외한 일반 수출 증가세는 다소 둔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정치적 불확실성 해소도 긍정적인 요인으로 꼽았다. 피치는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선포와 이어진 대통령 탄핵 소추 등으로 정치적 변동성이 컸으나, 6월 이재명 대통령 당선으로 불확실성이 해소됐다"며 "현 정부가 국회 과반 의석을 확보해 정책 추진 동력을 갖췄다"고 평가했다.
반면 피치는 한국의 잠재성장률 추정치에 대해선 생산가능인구 감소를 반영해 기존 2.1%에서 1.9%로 하향 조정했다. 한국 정부가 올초 경제 성장전략에서 "현재 추세가 이어진다면 2030년대에는 1%, 2040년대에는 0%대까지 잠재성장률이 하락할 수 있다"고 밝힌 점도 언급했다. 다만 정부가 인공지능(AI) 및 첨단 산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통해 생산성 향상을 꾀하고 있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재정 상황에 대해서는 경계감을 드러냈다. 피치는 올해 한국의 통합재정수지 적자가 GDP 대비 2.0%를 기록하고, 국가채무비율은 50.6%까지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피치는 "재정 투자 확대를 통한 잠재 GDP 성장률 증가 없이 정부 부채가 지속해서 증가할 경우 신용 등급에 부담을 줄 수 있다"라고도 강조했다.
가계부채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지만 관리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다고 진단했다. 피치는 "한국의 가계부채는 선진국 대비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라면서도 "가계부채비율은 하락세를 보이면서 지난해 3분기 GDP 대비 90%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피치는 향후 신용등급 하방 요인으로 재정적자 확대나 우발채무 현실화로 인한 국가채무비율의 급격한 상승, 한반도 지정학적 리스크 확대를 꼽았다. 반면 고령화에 따른 지출 소요를 통제해 중기 국가채무비율을 하향 경로로 안착시키거나, 지정학적 위험이 완화하면 등급 상향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