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간 <얼굴 만들기>는 미용 산업의 일부로 소비되는 오늘날의 성형수술이 아닌 ‘얼굴을 만든다’는 행위의 의미를 되묻는다. 의학사 전문가인 저자 린지 피츠해리스는 무너진 삶과 존엄을 회복하는 의료의 역할에 주목하며 성형외과의 기원을 끈기있게 추적한다.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호전은 수많은 병사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상당수는 심각한 신체 손상을 입은 채 전장에서 돌아왔고, 그중에서도 얼굴에 입은 상처는 육체를 넘어 정신과 정체성까지 파괴하는 상흔으로 남았다. 이를 다룬 <얼굴 만들기>는 1%의 허구가 없는 논픽션이다. 책은 ‘현대 성형수술의 아버지’로 불리는 외과의사 해럴드 길리스의 삶을 중심으로 속도감 있게 이야기를 펼쳐낸다. 케임브리지에서 교육받은 뉴질랜드 출신 의사 길리스는 1915년 전장에서 얼굴이 심각하게 훼손된 병사들과 만나 헌신의 여정을 시작한다. 성형수술이라는 개념조차 없었지만 섬세한 손기술과 집요한 문제 의식을 가진 길리스는, 병사들의 인생을 되살리기 위한 온 힘을 기울였다. 길리스는 실패와 실험을 거듭하며 새로운 재건 수술법을 개발했고 이를 체계화 해 현대 성형외과의 기틀을 마련해 나간다.<얼굴 만들기>라는 제목만 보고 가벼운 에피소드집을 떠올린다면, 책은 3분만에 독자의 예상을 뒤엎을 것이다. 환자들의 얼굴에 새겨진, 전쟁의 참상을 기록한 사진들은 숨을 멎게 할 만큼 충격적이다. 저자의 탄탄한 서사 구성과 긴장감을 갖춘 필력 덕분에 두꺼운 논픽션 특유의 지루함을 느낄 틈은 거의 없다.
저자는 수술 기록과 논문, 병사들의 편지와 일기, 의료진의 메모 등을 바탕으로 당시 현장을 생생하게 복원한다. 피와 고름, 악취가 가득한 병동과 끝없이 이어지는 수술의 나날이 이어지지만 동시에 환자의 마음까지 돌보려 했던 길리스의 인간적인 태도도 놓치지 않는다. “우리의 성형 계획이 잘못된다면 의지가 강하지 않은 환자는 거의 절망 상태로 빠져들 것이다”(151쪽), “길리스의 성격이 퀸스 병원의 명성과 성공을 이끈 원동력이었다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225쪽)는 대목은 그의 의료 철학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길리스가 이끈 의료진의 구성 역시 이 책의 중요한 축이다. 외과의사와 내과의사, 치과의사, 방사선 전문의는 물론 화가와 조각가, 가면 제작자, 사진사까지 참여한 ‘드림팀’은 과학과 예술을 결합해 망가진 얼굴을 정교하게 복원해냈다. 이는 단순한 치료를 넘어, 파괴된 정체성과 단절된 사회적 관계를 봉합하는 작업이었다. 사이언스지가 “의학의 실천은 예술에 있다는 것을 우아하게 드러낸다”고 평가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들의 시도는 이후 전쟁 의학과 재건 수술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꿨다. 얼굴 재건 수술은 단순한 외과적 처치를 넘어 사회 복귀를 위한 필수 조건으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전쟁 이후 민간 의료 영역으로도 확산됐다. 오늘날 사고·질병·선천적 기형 치료에 적용되는 성형외과 기술 상당수가 이 시기의 실험과 축적에서 출발했다는 점에서 길리스와 그의 팀이 남긴 유산은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이 책이 깊은 울림을 주는 또 다른 이유는 환자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구현한 데 있다. 1917년 파스샹달 전투에서 코를 잃고 구조된 스물 두 살 병사는 40차례에 이르는 재수술 끝에 일상으로 복귀한다. 그는 병원에서 일하며 새 삶을 시작하고 사랑도 만나게 된다. 1916년 솜 전투에서 얼굴 절반이 날아간 병사는 고통스러운 수술 과정에서 약혼자와 이별하지만, 새로운 인연을 통해 다시 삶을 이어간다. 천신만고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책이 말하는 치유는 신체 회복에 머물지 않고 마음과 존엄의 회복으로 확장된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저자는 성공 사례만큼이나 길리스의 실패 기록도 낱낱이 고한다. 환자의 죽음과 의료진의 좌절을 뼈아프게 묘사하며 고통을 회피하지 않는 정직한 기록 위에 헌신과 연대의 가치를 쌓아 올린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 책을 두고 “생존, 부활, 구원에 대한 심오한 이야기로 제1차 세계대전의 희생과 고통을 기린 감동적인 헌사”라고 평가했다. 전쟁사와 의학사, 그리고 인간 회복력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읽어볼만한 책이다.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